06/ 05/ 31
기차표를 예매하러 여행자의 거리인 빠하르간지에서 델리역까지 걸어서 10분 정도를 갔다.
아침 8시부터 예매를 시작한다기에 일찍 나선 길에 나보다 더 일찍 나선 인도 장사꾼들의 호객이 시작된다.
새벽시장의 모습은 전날 장사의 뒷끝과 오늘 새로운 장사의 자리가 함께 한다.(장사꾼에게 배낭을 묶을 쇠사슬을 샀다)
깊은 밤에 도착한 나는 이 아침이 인도를 처음 만나는 것이나 다름없다.
인도 냄새, 고인 물, 쓰레기더미, 공중화장실... 나는 냄새를 헤치고 델리역으로 갔다.
역 구내는 부랑인들의 숙소였다.
인도에는 사람이 많다더니 거지가 많다더니 이곳에 넘쳐나도록 모여있다.
그들은 옷도 신발도 없다.
나를 포함한 수많은 사람들이 지나 다니는 길바닥에서 그 사람들은 잠을 자고 깨고 있었다.
여행자의 특권은 머물지 않을 것이므로 갖는 우월함.
떠나는 자들은 지키는 자들의 우위에 선다.
저들보다 잘 사는 나라에서 온 사람이라서가 아니라 어쩌면 그들과 같은 모습으로 살았을 내가,
살던 곳을 떠나 잠시 먹고 사는 일에서 벗어난 것이다.
길바닥에서 잠자고 있는 그들이 나와 별다르지 않다는 느낌이었다.
하지만 내 감성적인 생각은 한 순간 반전이 되고 말았다.
델리 역 광장을 나와 빠하르간지로 돌아가려는 길목에서 나도 모르게 잠시 방심한 사이에 내 몸에서 나오기 시작한 구역질,
그들에게서 풍기는 냄새, 나로서는 감당하기 힘든 역한 냄새와 사방에 버려진 오물냄새에 더는 참을 수 없는 구역질이 시작되었다.
민망한 노릇이었다.
구역질이 난 순간 방금 전 생각했던 나와는 달리 그들과 완전 분리됨을 느낀다.
역에 빼곡히 모여있던 인도사람들이 역광장 한 가운데서 쉼없이 구역질을 하고 있는 나를 에워싸고 구경거리로 삼는다.
무엇을 생각할까?
정말 창피해서 멈추고 싶다. 사방이 뱅글뱅글 도는 듯 모여든 사람 뿐이다. 나의 구역질은 멈출 줄을 몰랐다.
그때 난 빌었다.
이 구역질이 인도여행의 처음이자 마지막이기를 말이다.
그곳을 빠져나와 빈속이라서 그럴 것이라고 들른 골든카페에서,
첫 인도음식으로 아침거리를 마주하고서도 구역질은 계속 되었다.
골든카페는 우리나라 여행자들 사이에 그래도 한국적이라고 가이드북에도 소개된 음식점인데,
모두들 괜찮다고 하는 집이다.
하지만 카페든 레스토랑이든 우리가 생각하는 그런 곳이 아니다.
테이블에는 비닐시트지가 붙어있고, 수저나 손이나 팔조차도 얹어놓고 싶지 않았다.
추가동과 칠리빠니르, 그리고 김치찌개를 시켰다.
추가동은 닭고기에 깐풍기처럼 생긴 음식이고,
칠리빠니르는 두부모양의 치즈를 기름에 튀겨 소스와 곁들여 먹는 음식이다.
그리고 김치찌개? 이건 아니다.
절대해선 안 되는 것, 그 음식들을 보고서도 구역질을 했다.
옆에서 그 음식을 먹고 있는 사람들이 있어 더욱 민망했는데, 나로서는 어찌 조절이 안 되는... 이 사실
정말 그렇게 하고 싶지 않았다.
-지금 너에게
나 왜 이러니?
다른 사람들은 구역질을 안하는데....
그런 사람 없나하고 둘러봐도 꽥꽥거리는 인간은 나 뿐이야.
속으로 좀 참으면 안되는거야?
꼭 이렇게 티를 내야 하나?
이런 날 보고 있다면, 넌 뭐라고 할까?
너가 보지 않는 것이 다행이라고 그 와중에 생각했다.
고통스러울 때 너가 없어서 다행이라고 생각하다니...
지옥같은 식사시간이 끝나고 델리 유람에 나섰다. 기온이 43도라던가.
전철을 탔다.
델리의 전철은 한국에서 만든 것이란다. 뿌듯함이지.
플라스틱 토큰처럼 생긴 델리의 전철표를 사고 전철을 타려면 경찰에게 몸 검문과 짐 검문을 받아야 한다.
전철역이 군사기밀지역이라서 사진촬영도 안된단다.
이 곳이 인도에서 피난지가 될 것이라는 생각을 했다. 전철에서 에어컨이 나왔단 말이지.
우선 대통령궁, 붉은 건물이 길하나를 사이에 두고 대칭으로 서 있다.
현재의 대통령이 살고 있는 대통령궁으로 들어가면 외국인방문허가서를 받아야 한다기에...
그저 궁이 보이는 잔디밭 그늘에 앉아 잠시 쉬었다.
건너편 나무그늘 아래에 인도 경찰 세사람이 도시락을 먹고 있다.
괜히 그들의 도시락이 궁금해져서 슬그머니 그들의 곁으로 가 보았다.
짜파티라는 밀떡에 커리소스를 찍어먹고 있었다. 그들은 웃으며 나에게 그들의 점심식사를 권했다.
커리소스라면 또 그 냄새이다.
난 한 점을 떼어 정말 예의상 소스에 한 번, 역시 으윽이다.
표정을 어찌 지어야하나... 맛나게 먹고 있는 저 사람들 옆에서 또 구역질을 할 수는 없는데... 참고 참았더니 참아졌다.
그저 짜파티만 먹는 것이 훨씬 나았다.
그런데 그 경찰들이 커리소스를 내밀면서 찍어먹으란다.
난 아니라고... 짜파티만 먹는 것이 더 맛있다며 과장되이 먹어보였다.
설마 그럴리가 하는 표정으로 보는 그들, 그들의 표정에 동의하는 나의 마음.
이해할 수 없다는 표정으로 저들끼리 뭐라고 주고 받으면서 웃는다. 정말 웃을 일이지.
그들이 나를 이해할 수 없다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우리나라 사람도 음식을 나누는 것이 정으로 알고 있는데,
그들이 나누어준 음식을 가지고 까탈을 부리고 있으니 정 떨어지는 모양새를 한 인간임이 분명하다.
그래도 그들에게 얻어먹은 한 조각의 짜파티 덕분에 정말 더운 날 허기는 면할 수 있었다.
인도사람들과는 첫만남이었던 그 경찰들을 뒤로 하고, 대통령궁과 인디아게이트 사이에서 약간 빗나간 국립박물관으로 갔다.
국립박물관에 들어가려다 그것도 그만 두었다.
아이들과 노느라고......
아주 말끔하고 잘 생긴 15살 엘라이저와 아주 이쁘고 세련된 14살 여자아이 사피아,
박물관에서 운영하는 우리로 말하면 문화센터같은 곳에서 지점토만들기를 하고 나오는 길이란다.
부처님을 만들었단다. 금색칠까지 했다.
아이들은 나더러 어디에서 왔냐 어디에서 잠을 자냐... 뭐 그런 것들을 물었고,
한국에서 왔다고, '빠하르간지'에 묵고 있다고 말했더니,
한국이라는 곳에는 별 관심이 없고, '빠하르간지' 그 더러운 곳에서 묵지 말고 코넷플레이스에 가면 깨끗한 호텔이 많단다.
나를 구제해야겠다는 표정으로 자기들은 빠하르간지에 한번도 가 본 적이 없다며, 빨리 나오란다.
말로만 듣던 인도부잣집아이들인갑다.
그 아이들과의 이야기하는 것이 재미있어서 박물관 앞에서만 한참을 놀았다.
이 두 아이들을 보면서 고생하지 않은 것들은 어디에서건 티가 없구나 싶더라.
너무 더웠다.
썬크림을 발랐으나 모두 땀으로 흘러내린지 오래다.
난 인도에 도착한 지 하루 만에 난 썬크림을 바르는 것을 포기하고 말았다.
얼굴이 타는 것에 신경을 끄고 나니, 이제 실감이 난다. 누군가가 나를 이 곳으로 휙 내던진 것임을... 더워!
인도게이트 옆으로 난 작은 개울에 아이들이 홀랑 벗은 몸으로 놀고 있었고, 그 옆 잔디밭에는 탬버린을 치면서 노래를 하는 아이들이 있었고, 그 사이 사이로 엠피3를 가지고 음악을 듣는 머리에 무스를 바르고 청바지를 입은 인도의 제비들이 포진하고 있다.
그들이 모두 그 곳과 잘 어울렸다.
-다시 지금 너에게
하루를 델리에서 돌아다녔지.
어제처럼 오늘도 아무 감흥이 없는 것이... 난 왜 이러니? 나 왜 이러니?
이런 덤덤함이 언제 내 몸에서 사라지는거니... 언제나 나의 감각들은 되돌아오는 것일까?
혹 너가 있다면 난 움직일까... 싶었다.
옆에서 어떻게든 뭉개고 들어오려는 인도녀석들조차 내겐 두려움이 되지 않는다.
무엇에 이렇게... 된... 거니?
난 벌써 잊었다.
아무것도 생각나지 않았다.
2006/05/31[메모]
추가동, 김치찌개, 칠리 빠니르.
기차예매.(델리-자이뿌르, 아그라-바라나시)
인도의 대통령 궁을 경호하는 경찰들의 점심식사에 끼어... 처음으로 먹어본 그들의 도시락.
-못 먹었음. 짜파티만 찢어 먹다가 포기.
-델리 국립박물관 앞에서 만난 인도아이들.
사피아Saphia. 엘라이저Elizer.(더러운 곳이라서 빠하르간지는 절대 가지 않은 아이들, 한마디로 말로만 듣던 인도부자집 자제들 )
프란티나Pranita. (오빠를 기다리다, 오빠와 함께 4번 뒤를 돌아다보고 감)
대통령 궁앞에서 탬버린을 치며 노래하는 아이들.
인디아게이트 앞에서 목욕하는 아이들
밤 10:30분 델리-아그라로 출발
나는 노예가 되고 싶지 않는 것처럼 주인도 되고 싶지 않다.-링컨(문장사전)
다시 쓴다. 나는 노예가 되고 싶지 않다.
지금 만나는 사람은 나의 틈사이로 스치는 순간 사람이 아닌 내 몸에 맞춰질 것이다.
또 다시 쓴다.
난 노예처럼 끌려다는 삶도 원하지 않지만, 나 자신만으로 꽉 찬 삶도 원하지 않는다. 나와 너가 함께 주인인 삶을 바란다.
첫 인도기차. 빨간 남방을 입은 쿨리. 공영짐꾼. 객실 안은 온통 검은 색, 사실 검은 색이 아닌데 검은 색이라고 생각해버린다. 3단 침대. 자리 없는 사람들. 엉덩이를 비집고 들어오는 사람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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