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두대간 중 청옥두타산을 다녀왔다.
지난해 안나푸로나 베이스 캠프는 열외라고 생각한다면 거의 2년만의 산행다운 산행이었다.
코스: 댓재-골재-두타산(1355)-청옥산(1403)- 신선봉-상화사-무릉반석
총산행시간:2007/09/08 새벽 4시 30분-2007/09/08 오후 1시30 하산 (총 9시간)
기타: 청옥-신성봉구간 경사가 무지하게 심한 자갈산길... 위험
밤 11시 서울을 출발하는 버스를 탔다.
혼란 속에서 잠시 벗어나는 것이다.
금요일 새로운 과제거리때문에 스트레스가 심해질 무렵 결정했다. 일단 떠나자.
힘들기 싫은데... 고생하기 싫다는 나의 마음을 과감히 무시했다.
버스에서 2시간 정도 눈을 붙인 후 새벽4시에 산행준비를 시작했다.
이번 산행의 출발는 댓골이다.
사방은 어둠,
그리고 대단한 바람과 함께 찬 공기로 꽉 차 있어 등산화를 묶는 손이 덜덜 떨려서 몇 번이나 다시 묶어야 했었다.
지난 주가 여름이었다는 것은 까맣게 잊고 겨울의 어느 날인 줄 알았다.
새벽은 춥다.
산을 오르기 시작하는데, 랜턴... 출발전 집을 아무리 뒤져도 찾을 수없어 그냥 왔는데 이건 장난이 아니다.
남의 불빛에 의지해 나의 걸음을 옮긴다는 것.
그것은 내가 어둠을 눈에 익혀 발의 감에 따라 움직이는 것만큼이나 힘들고 어지러운 일이었다.
헤드렌턴 가진 사람의 앞에 서면,
불빛을 가로막은 내 몸때문에 검고 짙은 그림자가 땅에 밀착되어 난 땅을 볼 수 없다. 나 때문에 생긴 짙은 그림자!
헤드랜턴 가진 사람의 뒤에 서면,
그 사람이 비춘 땅의 모습을 기억해두었다가 몇 걸음 뒤를 쫓아가게 된다. 그의 걸음이 놓여던 자리로만 걸어가는 나!
오랜만의 산행에, 어둠 속에서 너무 많은 에너지를 소모한 탓에, 내 몸이 잠을 자야 할 시간에 움직인 탓에,
가슴은 터질 듯히 쿵닥거리고...
유난히 튀어나와 등산화를 신을 때마다 고생을 시키던 발목 복숭아뼈에 통증이 오기 시작하고...
몇 달 전 깁스를 했던 나의 왼쪽 발목 또한...
전날 내린 비때문에 산길은 몇 걸음마다 있는 진창때문에... 투덜거릴 일만 있다.
심장은 마치 탈출이라도 할 듯이 쿵쾅거리는데...
이 산행을 마칠 수 있을까?
중간 탈출로에 대한 생각을 하면서 물안개가 하얗게 끼인 숲길을 올랐다.
세상에! 이런 세상에! 발견.
해가 뜨고 첫 눈에 띄인 꽃. 이 세상에 투명꽃이란게 있었네.
투명 비닐같은 꽃잎을 가진 초롱꽃(?)이 연보랏빛을 머금고 아침 안개를 머금고 촉촉히 피어 있었다.
맙소사!
감탄을 몇 번이나 하고도 발을 뗄 수 없을 정도로 아름다웠던 꽃.
형체를 가질 수 없는 운명을 타고 난 어느 생명이 어느 누군가의 뒷도움으로 잠시 꽃으로 머무는 듯.
몇 미터 멀리서는 보이지 않을 것 같이 투명한 모습을 내게 보여주었다.
원래 세상의 물건이 아니었던 듯...아주 잠시만 피어있을 것 같았다.
골재를 지나고, 두타산 정상에 올라서니 아침 7시가 조금 넘어 컵라면으로 아침을 때우고 커피 한 잔을 마셨다.
아침 안개와 구름때문에 사방은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30분 후 다시 출발,
청옥산으로 발을 옮겨 옮겨... 가파르다. 미끄럽다. 결국 한 번 넘어지고...
각자의 이유로 불편했던 양쪽 발목에 힘이 주어지지 않는다.
무릎 보호대를 꺼내 차면서 양쪽 발목에 주어지는 힘을 덜어주기를 기대하며 선두와 많이 쳐진 걸음을 바삐 옮겨본다.
좀 지나자 두타와 청옥 사이의 능선이라 그런지 제법 평화로운 길이 이어진다.
그때는 뛰기도 하며, 걷기도 하며, 나무와 부대끼기도 하며,
이유는 여러가지: 해가 떠서, 끼니를 떼워서, 길이 평화로와서, 몸이 산을 기억하기 시작해서.
필을 받았다고 해야 하나, 정말 아무 생각도 없이 걸음을 옮기는 것에만 백퍼센트 집중한 시간이었다.
그 길이 끝난 뒤, 두타산 정상에서의 내 발!
이제 하산길.
삼화사에서 청옥산까지의 길은 정말 악! 하는 죽음의 코스이다.
자갈이 섞인 내리막길, 나무뿌리들이 드러난 산행로, 그 위에 채 마르지 않은 빗물, 간간히 루프코스도 있다.
다치면 안되니까 아주 잘 내려가야 한다는 생각뿐이었다.
한 고비를 내려올 때마다 그동안 참았던 숨을 돌리며, 순간 생각에 빠진다. 난 지금 아무 생각이 없다는... 생각에...
등산로에서 잠시 비껴서 구름이 걷히면서 모습을 드러낸 두타산을 보았다.
깎아지른 절벽, 그 사이에 흐르는 폭포들. 넘치지도 모자라지도 않는 나무와 바위들의 조화... 참 좋더라. 시원하더라.
잠시 쉬는 사이에 마치 내가 바위의 한 끝인 듯이 몸을 바위와 함께 내려 놓았다.
함께 산을 올랐던 일행이 찍은 사진이 딱 마음에 든다.
참 많이 편안했었다! 내 마음은 저 곳에서 아무 생각없이 평화로웠다.
산을 올라갈 때는 많이 힘들어도 쉬지 않고 오른다.
쉬지 않고 헉헉거리며 산을 오를 때는 신기한 나무, 꽃들이 더 많이 눈에 띈다.
힘든 와중에도 그것들에게 눈길을 주게되고 손길을 주게 된다. 참 이쁘다는 말도 잊지 않고 들려준다.
하산길은 나무나 꽃을 보는 것이 아니라 산을 보게 된다. 멀리 보게 된다.
꽃이 예뻐보이기보다는 그저 저 먼데 있는 산을 좋다하며 보게 된다.
하산길에는 세세한 것에 눈이 가지 않는다.
청옥산 정상에서 하산을 시작한지 3시간 정도 지나,
길 비껴 50미터쯤에 있는 신성봉을 올라 바위 위에 잠시 누워 나무들 사이로 하늘을 보고 누웠다.
하늘을 보고 누워 바위에 편안히 놓인 내 발을 한 번 찍어보았다. 잘 쉬고 있다.
언제 전쟁처럼 산을 올랐고, 발바닥에 모든 신경을 쏟고 산을 내려오고 있었는지.
아무 생각없이 잠시 평화로웠던 시간. 이 맛인가? 맛의 기억이 새록하다.
열심히 내려간다.
이제 무릉계곡이 시작된다.
소리부터 시작했었다. 계곡의 물소리가 멀리서 들리기 시작하더니, 점점 더 가깝게 그리고 물줄기가 나타났다.
계곡을 건너는 재미, 왼쪽에서 오른쪽으로 한 번 건너면 다음에는 오른쪽에서 왼쪽으로 건넌다.
계곡산행은 하산길 내내 오른 쪽과 왼쪽을 번갈라가며 계곡을 건너게 된다.
우리도 살아갈 때 그런데...
이쪽에서 나를 한 번 건너게 하고 저쪽에서 나를 한 번 건너게 하고... 방향이 엇갈려 다른 것 상황처럼 보이지만 항상 그자리를 맴돈다.
삶이라는 계곡을 이쪽 저쪽 건너는 것을 뿐이다. 별 거 없다.
그저 왔다갔다하는 동안에 내 손을 잡아주기도 하고, 어깨가 부딪히기도 하는 그런 만남들일 뿐이다.
절대절명의 그런 순간이 아니다. 그저 계곡을 중심으로 이리저리 건너는 것을 반복할 뿐이다.
뭐 그런 생각을 하면서 계곡의 다리를 건넜다.
궁리를 한 것을 보면... 편했나보지? 인간이란...
난 하늘문으로 올랐다. 이름이 하늘문이다.
하늘로 통하는 문이 여기 있다는 소리에 하늘문 언저리에라도 가볼까 싶어서 오르기 시작했는데...
하늘문으로 가는 길에는 끝없이 이어지는 천국의 계단(?)이 있었다.
가파르기가, 계단의 수가 참 나!
숨을 끊고 이어서 쉴 시간도 없게 만드는, 하늘문으로 이어지는 천국의 계단이었다.
그런데 이 계단을 끝없이 올라가다 올라가다... 정말 끝도 없이 올라가다 끝이 보이지 않아 지나가는 사람에게 물었다.
"하늘문이 어디예요?"
"이미 지나셨는데요.. 이 길은 관음사라는 암자로 가는 길인데요."
하늘문인지도 모르고 하늘문을 지나 난 이미 하늘? 이란 말인가? 그래서 관음보살면전으로 가는길이란 말이지.. 안된다 싶었다.
다시 턴.
내려오는 길에 지나쳤던 하늘문이다.
그럼 하늘문을 자유로이 오가는 난? 그래서 이 세상 무적응자였단 말인가? 이해가 되는 공식이다.
잠시 헛소리, 헛생각....
하늘문에서 내려가는 계단내내 난 또 숨을 쉴 수 없었다. 정말 하늘문으로 갈까봐. 무서워서!
무릉반석까지 왔다.
몇 년 전 어느 초겨울 아주 많이 아팠던 적이 있었다.
먹지도 마시지도 걷지도 못할만큼 그저 누군가에게 의지해 걸을 수 밖에 없었던 어느 날에,
무릉반석 너른 바위 위에 앉아 한참을 있었었다.
그 시간 함께 했던, 바위 사이에다 뿌리를 내리고 살아가는 소나무가 지금도 그 자리에 있었다.
초겨울의 스산함과 빛바랜 초록으로 많이 말라보였던,
저 소나무를 감아안고 찍은 사진, 두 말라깽이가 껴안고 있는 모습이란....
그 때 그 소나무와는 달리 잎도 풍성해보이고,
마치 대결구도처럼 느껴지던 바위와도 사이가 좋아보이고,
멀리 있어 소리만 들려주는 듯 했던 계곡물도 이번에는 좀 가까이 있는 듯 보여 맘이 놓였다.
난 그 때 이 소나무에게
'막막한 사막에 버려진 숨도 쉬지 못하는 아이같다. 살아는 있는 것일까' 했었다.
이번에 보니 살아 있었던 것이 분명했고, 지금은 좀 더 자라기까지 했다.
웃음이 나왔다.
저 소나무도 나도 둘 다 살이 찌고, 좀 싱싱해지고, 옆에 것들과 좀 더 친한 모습으로 살아가고....
안아주고 싶었지만, 왠지 맘이 이상해 가까이 가지도 못하고 멀리서 카메라줌으로만 끌어 당겨보았다.
9시간 산행내내 고생한 내 발을 무릉계곡물에 잠시 담궈, 쉬게 해 준다.
나도 모르게 발가락이 꼼지락거리며 제 자리를 잡는 것이 이제까지는 등산화를 위한 삶이었다는 듯...
발가락들이 제멋대로 꼼지락거리는데 어찌 그리 시원한지....
이번 산행에서 있었던 피로는 이 족욕으로 끝냈다.
시간이나 에너지가 소모되어야 할 일이 생겼다.
그럼 토요일, 일요일 내내 일을 해야하나 생각했었다.
그러다 방향을 정반대로 틀었다.
지지난주, 지난 주 내내 생각했던 살아가는 방법에 관한, 좀 더 발전적인.. 그 때 떠올렸던 산행...
갑자기 결정했다. 산으로 가자. 산을 가자. 그냥 아무 생각말고 산으로 가자.
사용하지 않던 근육을 사용한 관계로 몸이 난리도 아니지만....역시 좋았다.
나무에 몸을 기대어 있었던 시간이 역시 좋았다.
인간은 인간에게서는 절대 치유받지 못할 상처를 가지고 있다.
인간에게로 향하려는 몸을 반듯이 세우는 것이 필요한 때이다.
곧은 나무처럼 똑바로 서서... 누구에게도 기울지 말고... 누구에게도 쏠리지 말고... 그냥 그렇게 가만히 ...
서 있는 것이 사는 것이다.
산이 그 자리에 서 있는 것으로 저 소나무를 키워가듯,
나도 모르게 내가 누군가를 키울 수도 있을 것이다.
가만히 꼼짝않고 서 있는 것이 이번 산행을 통해 내게 주는 나의 과제이다.
'見聞錄' 카테고리의 다른 글
[인도2] 나는 노예가 되고 싶지 않는 것처럼 주인도 되고 싶지 않다. (0) | 2007.09.11 |
---|---|
[인도1] 비행기를 타다, 그건 떠나다 (0) | 2007.09.10 |
[신미식] 신미식 사진전- Human in love (0) | 2007.07.05 |
여행에 관한 기억 (0) | 2007.06.09 |
오늘이 오면 (0) | 2007.04.22 |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