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스트극장이라는 드라마를 보면,
아니면 더 옛날 TV문학관이라는 프로를 보면,
머리에 벙거지 모자를 쓴 사람이 깊은 밤 버스를 타고 고향을 찾거나 떠난다.
파란빛이 도는 검은 새벽이었다.
이른 아침 비가 많이도 내렸다.
버스 창가로 빗방울을 송곳처럼 꽂혀들어오는데, 유리가 있는 줄 알면서도 움찔거릴 정도였다.
한강은 제대로 생명을 가진 것처럼 콸콸거리면 흙빛 강물을 흘러보내고 있었고,
불빛은 물빛과 섞여 꿈틀거렸다.
비가 억수같이 내리는 아침은 생명으로 여기지 않았던 것들이 여기저기서 솟구치고 있었는데,
난 그 어느때보다 가라앉은 마치 죽은 사람처럼 최대한 얇은 호흡만으로 그 버스의 창밖을 보고 있었다.
뒤집혔다.
세상의 주인이 나라고 우기며,
나를 위해 세상은 도는 것이라며,
가끔은 그래야 하는 것이라고 호기를 부리며, 몸에 힘을 넣었더랬다.
그래야 살아갈 수 있는 거지.
부모님이 계시는 집으로 가는 아침 버스 창 밖을 내다보며...
내 몸에 힘이 모조리 빠져나가 저들의 기운이 되었을 것이라 생각하며...
저들이 공격적 생명을 가진 것은, 내게서 빠진 것들이라 그럴 것이다...
나의 생명력이라는 것이 내 안의 생명이 강해서가 아니라 그건 마치 말라 죽게 생긴 나무가 경쟁적으로 새잎을 돋아내듯이...
수가 빤히 들여다보이는 판이었는지도 몰라.
호기를 부리고 있는 것들은 실제로 그랬다.
집에 도착할 시간이 되자, 비와 강물과 빛은 다시 세상의 한 켠으로 돌아가 그저 세상으로 다시 셋팅이 되었다.
그리고 난 집에 도착하여...
그들에게서 생명력을 인도받은 나는 팔딱거리는 생명력을 파릇한 모습인 듯 이리저리 움직였다.
집에서 견딜 수 있는 시간은
어느 때는 일주일까지가 되기도 하고
어느 때는 사흘이 되기도 했는데
오늘은 반나절이었다.
가야해요!
그렇게 금방 갈 걸 왜 왔는데... 정신만 없게...
그래도 온거잖아요.
밤11시 심야버스를 타고 서울로 올라오는데 한풀 꺽인 비가 버스 창으로 흘러 내린다.
너도 나도 모두 한풀 꺾여버린 깊은 밤,
어느 날 베스트극장인지 티비문학관인지에서 본 벙거지 모자에 물들인 군복차림의 어떤 남자가 버스를 타고 창밖을 보던 모습과
내가 너무나 닮은 것 같아 나를 내려다보았다.
심야버스는 사람을 극에 치닫게 만드는 것!
어쩌면 난 그저 극에 서 있는 듯이 느끼고 싶어서 굳이 심야버스를 탄 것일 지 모른다.
이른 아침 버스에 내리 꽂히는 빗줄기와 반짝이는 물빛 섞인 불빛에서 내가 마치 그 에너지를 옮겨준 듯이 느끼려 낮게 숨을 쉬며,
내 것이라고 말했던 것처럼.
다 죽은 듯 잠든 서울을 혼자 눈뜨고 길바닥에 뒹굴고 있을 어느 힘자락들을 끌어 모으려 했는지도 몰라.
심야버스를 타고 서울에 온 여자!
그 여자의 희망은 무엇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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