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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절거림

어느 날의 길

by 발비(發飛) 2007. 8. 14.

1.

합정동-(종로환승)- 대학로- 광화문교보- 합정동(버스로 이동)

세번째 단계에서... 

버스는  종로2가에서 내려야 익숙한 길인데 내릴 때를 놓쳐서 광화문에서 U턴 하고 세종문화회관 앞에서 내림.

넓은 길 건너 교보빌딩이 보이는데,

지하도로 들어가는 순간 똑바로 걷기만 하면 되는 그 앞이라는 개념이 사라져 버리고 잠시 공황증세,

정신을 가다듬고... 표지판을 확인하고 교보로 무사 안착.

----이 때만해도 뭐 별 거 없었음. 이까짓 것, 수도 없이 겪는 일이지.

 

2.

퇴근 후 약속장소는 망원역 다음 우체국 근처 어디.

만나기로 한 분이 일러주는 마을 버스 정류장에서 마을 버스 9번을 기다렸다.

오지 않는다. 8번만 세 대가 지나가고... 그제서야 옆에 서계시던 할머니께 여쭤보았다.

"여기 아니야. 저리 내려가서 어디가며 있을텐데.."

그래서 저리로 내려가고 또 내려갔는데, 9번버스 정류장은 찾을 길이 없더라는... 그래서 택시를 탔다.

"망원역 옆의 망원우체국요."

택시가 방향을 잡고 한참을 가는데 방향이 아까 내가 서있었던 그 방향이라 기사님께 물었다.

"제가 길건너에서 타야했던건가요?"

"아.. 제가 착각했네요. 잘못 왔어요. 돌아가야해요."

잠시 침묵, 기사님이 아예 미터기를 꺾어버린다. 미안한 마음이 들기 시작하더라는...

빙빙 돌아 처음 탔던 길까지 다시 돌아, 망원역 앞에 오니 9번 마을 버스가 보인다.

"저기 저 버스따라 가면 돼요. 원래 저거 타려고 했던거거든요? "

앞에 가는 9번 버스가 좌회전을 하고도 설 생각을 하지 않더니 한참 뒤 버스가 선다. 그럼 그 곳이 망원역 다음 정류장이어야 하는데 ....

그런데 여기가 아니란다. 뒤돌아서 계속 계속 걸어서야 드디어 약속장소 도착

 ----이 때만해도 뭐 별 거 없었음. 이까짓 것!

 

3.

만남 뒤,

집에 가야하는데, 처음에는 택시를 타려고 했었다.

집을 어떻게 설명해야 할 지 알 수가 없었는데, 어디에서 어디로... 그건 너무 복잡한 문제일 뿐더러

중요한 것은 내가 어디에 서 있는지를 모르니 더욱 난감.

그래서 내린 결단이 걸어서 가는 것이었다.(이건 나만 해결하면 되니까...)

어디 큰 길 쪽으로 가면 아는 길이 분명히 나올 것이라 믿으며, 언제나처럼 난 걷는다.

모르는 길을 걷는 것, 그거 좋은 거거든...

일부러 길을 잃는다는 것, 그것도 좋은 것이거든...

(무작적 걷는 것을 좋아한다. 그런데 그것은 그 곳의 공기가 익숙할 때여야 하는 거였다. 여긴 아니었어.)

가도 가도 모르는 길이다. 대체 얼마나 걸어야 내게 익숙한 길을 만날 수 있을까!

결국은 보았던 어느 건물이 나왔고... 집에 왔다.

온몸이 젖어있었다.

샤워를 하러 목욕탕에서 젖은 얼굴을 보는 순간...

 ----이 때는 달랐다!

 

길치들에게는 집밖을 나선다는 것은 긴 숨을 들이쉬고 내쉬어야 하는 행사같은 것이다.

이사같은 것을 절대 하지 않는 것은 그것도 길때문이다.

언제나 그랬다. 이사를 한 뒤 주말이 되어도 밖으로 나가지 않고, 그저 집안에서만 있는 것.

또 그것은 어느 시점이 되면 저절로 동서남북이 보이고, 보이지 않는 길도 추측할 수 있는 상태가 온다는 것도 알기 때문이다.

아직은 내게 이 곳은 낯설다.

좀 더 익숙해지면 한밤중 어디에 떨어뜨려놓아도 땀을 비오듯 흘리며 무서움에 떨어야 하는 일은 사라질 것이다.

 

길을 찾지 못함은 원점회귀본능이 강하다는 것과 상통하는 것 같다.

강하게 붙잡으면 붙잡을 수록 자신을 향해 가는 길은 멀고도 복잡하다. 혹 자신을 잃어버릴까 싶어 떠나지 않게 된다.

 

옆집에 놀러가 본 적도, 친구집에 놀러가 본 적도 별로 없다.   

나를 떠나면 나를 찾을 길이 없을 것 같아. 미안하지만 나의 집으로 너가 와줘라. 

이건 유난히 친구들을 집으로 오게 했던 나의 속마음이었을 것이다.

 

하루동안 길때문에 정신을 차리지 못하던 나는 이제 그 하루가 지나고.... 길이 아니라 나라는 집, 에 대한 생각에 빠져있다. 

언제 어디에서도 찾을 수 있었으면 좋겠다.

저 멀리 떨어뜨려놓아도, 잠시 잊어버려도, 한참 다른 삶으로 살더라도,

금방 알아볼 수 있었으면 좋겠다. 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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