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읽히는대로 詩

[성기완] 46 빈손

by 발비(發飛) 2007. 1. 27.

46 빈손

 

성기완

 

당신을 원하지 않기로 한 바로 그 순간 나는 떠돌이가 돼 그것을 놓았는데 다른 무얼 원할까 그 무엇도 가지기가 싫은 나의 빈 손, 잊자 잊자 혀를 깨물며 눈을 감고 돌아눕기를 밥먹듯, 벌집처럼 조밀하던 기억의 격자는 끝내 허물어져 뜬구름, 이것이 내가 원하던 바로 그것이긴 한데 다시 생각해보면 어떻게 이렇게 잊혀지고 말 수가 있을까 바로 그 때문에 슬픔은 해구보다 더 깊어져 나는 내 빈 손을 바라보다 지문처럼 휘도는 소용돌이를 따라 망각의 우물로 더 깊이 잠수하며 중얼거려 잊자 잊자

 

잊자 잊자

보고 싶다 보고 싶다

무엇이 다르지.

 

뚝 떨어지면, 몸에서 멀어지면 마음에서도 멀어진다는 그 얼토당토 않은 말을 한 이는 누구인거지.

차라리 코 앞에 있으면 내공이나 쌓지.

이건 멀어지면 멀어질 수록 잊을까 두려워 되새기고 되새기고 더욱  선명해지는 것.

한동안 쌓아놓은 내공은 잠시 긴 숨에 와르르 무너지고 만다.

돌아온 집에는 마치 그가 다녀간 듯 그의 냄새만 가득하다.

 

난 아직 깊은 잠을 자지 못하는데. 불면,

그 어느 하루를 책임지겠다던 약속도 남았는데, 불면의 밤이면 약속이 되새기는데...

약속은 이미 깨져버린건가. 아님 약속을 품고 부화시켜야 할 건가.

 

아마도 영원히 눈 앞에서 사라져 버릴, 죽어도 보지 못하는 사람으로 사라져 버릴,

그래도 하나도 안타까울 것이 없는 사람이,

정말 죽을 때까지 보지 않아도 될 그런 사람이 왜 걸리는 건지.

 

오늘은 밤새 그물코를 터야겠다.

내가 가진 그물코가 너무 촘촘해 그를 보낼 수 없었던 거라는.

내 그물코를 싹뚝싹뚝 잘라내어 무엇이든 내 안에 걸리는 것 없이 모두 빠져나가게.

가위 든 손을 움직이며 그를 욕하자. 왜 그러는건데, 뭐가 문제인데, 어쩌란 말이냐고,

 

이쯤이면 나쁜놈! '신'이라는 나쁜놈!  '신'이라는 존재가 '나'라는 인간을 약올리는 것은 무슨 이유인데...

그렇다고 내가 너에게 갈 것 같으냐. 난 너를 싫어해, 넌 항상 나를 무릎 꿇게 해. 이젠 하지 않을래.

차라리 그물을 몽땅 잘라버리겠어.

 

모든 것이 빠져나가버린, 아무것도 잡을  수 없는 빈손이 되어버린,

잊자 잊자 잊었다. 잊었는데

나의 손에는 아무 것도 담을 수도 없는 집을 마음도 없는

그저 텅 빈 손으로  쥘락 펼락만 하면 빈 손만 바라볼 밖에.... 빈 것에 텅 빈 것에 검게 드리는 그림자.

아무도 없는 빈 방에서 보고 싶다 한 마디 소리내어 말하고  벽을 통해 다시 들리는 그 소리.

정말 극도로 싫은 이 느낌! 미친 짓!

 

더 깊이 침잠해야 한다.

더 깊이 파고 들어가야 한다.

공기 부족 산소 부족 물 부족 ... 부족. 질식 직전에도 보고싶다 말하나 보자.

 

그리는 삶이 몇 번이나 있었냐고.

자라지 못한 영혼도 있다는,

누군가를 그리워하는 사람은 결국 자라지 못하는 영혼이라는,

그리울 것 없는 그런 영혼은, 영혼이 다 자라 무얼 보며 살고 싶은건가.

다 자란 영혼은, 완벽한 영혼은 무얼 생각하며 사는걸까?

 

끝내 중얼거리다 제 풀에 지치는.....

빈 손을 툭툭 털고 마는... 빈 손으로 얼굴을 부비고 마는.

단내와 함께 반짝이는 별이 내 빈 손 안에서 반짝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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