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읽히는대로 詩

[문인수] 인도소풍, 말라붙은 손

by 발비(發飛) 2007. 1. 17.

 

-문인수 시인-

 

 

  

 

인도소풍, 말라붙은 손

문인수

 

땔감으로 쓰는, 건디기라는 쇠똥덩어리가 있습니다.

쇠똥에 찰흙과 지푸라기 같은 걸 잘 섞은 다음

커다란 쟁반 만하게 주물러 널어 말려 쓰는데요,

이 일은 주로 여인네들이 합니다. 그러니 이 쇠똥덩어리 마다엔 어김없이

눈 깊어 안타까운 그늘,

그 무표정한 얼굴의 야윈 손자국이 낭자하게 말라붙어 있지요.

현지의 어느 작은 마을 호텔 앞에서 그날 새벽

할 일 없는 한 사내와 손짓 발짓

상통하며 이 건디기불을 피워 봤는데요, 나는 문득

함께 못 온 아내에게 미안했습니다. 돈 번다고 혼자 고생만 하는

늙은 아내의 월급 봉투에도 물론 이런 손자국

무수히 말라붙어 있는 거라 생각하면서, 매운 연기를 피해

이리 저리 고개 돌리며 자꾸 이 사내와 함께 찔끔거렸습니다.

 

 

인도소풍, 기차를 누다

문인수

 

저녁에서 아침까지 가는 장거리 기차였습니다. 화장실에 가서 쪼그리고 앉으니, 발 디딘 데가 옛날의 '통시부틀'같았습니다. 아 그렇게 쪼그리고 앉아 있어봤자 사흘째 뒤가 막혀서, 한반도 사정처럼 땅덩이 모양처럼 뒤가 꽉 막혀서 오금쟁이만 잔뜩 저려왔습니다. 에라, 와그닥닥 닥닥 기차만, 기차소리만 대륙적으로, 대륙진출적으로 한바탕 누고 나왔습니다.

 

 

멋진 얼굴을 가지셨다.

문인수 시인은 말하자면......

그러지 말고 26년전 그의 시집 '세상 모든 길은 집으로 간다'의 표제작인 시를 한 번 두드려본다.

 

 

세상 모든 길은 집으로 간다

-달빛, 그 노숙의 날개

 

길이 막히거든 노숙을 해봐라

달빛 아래

나무의 낯선낯선 이파리들이 눈앞을 저어 가면서 가장 먼 별들이 귓전으로 가슴으로 스며 내래면서 풀벌레 소리들 무수히 번져 에워싸면서

그대 겨드랑이에다가 하염없이 짜넣는

그 달빛이 무엇이 되는지

팔 벌리고 누우면 허수아비 같고

돌아누우면 좀 춥고

몸 웅크리면 섬같이 되어서

날고 싶을 것이다

달빛 차래

그 어디로 길이 열리는지

먼 타관으로 가서 노숙을 해봐라

 

이 시는 그가 1990년에 발표한 시집에 있다.

그는 '세상 모든 길은 집으로 간다'의 거의 시들의 무대는 길 위이다.

바다, 산, 강의 곁에서 그는 시를 썼다.

떠 있으면서 그가 어느 시에서 표현하듯이 끈 한가닥을 물고 있는 듯이 몸은 집을 향하고 발은 길 위에 두었다. 마치 김삿갓처럼.

위의 '인도 소풍'이라는 시를 고르게 된 것은

평생을 세상을 떠돌아다닌 시인의 세상보는 노하우를 캐고 싶은 마음이었다.

이 시에서 그의 표현을 빌리자면,

젊은 시절 국내에서 떠돌던 그가 이제 범대륙적으로 떠돌고 있다.

 

나도 갔었다.

내가 다녀온 인도.

내가 본 인도.

내가 느낀 인도.

그것과 나이 많이 먹은 노시인의 인도는 무엇이 다른지.... 결국 이렇게 달랐다.

 

그가 사진에서 편안한 웃음을 웃는다.

그는 이제 세상을 보면

이것이 무엇인지... 왜 시인 자신이 그 곳에서 그것을 하고 있는지 스스로 가늠이 되나보다.

 

인도의 몇 몇 도시를 제외하고는 모두가 지독한 농촌이다.

집을 다 짓고 사는 곳을 별로 보지 못했다. 대충 벽이 완성되면 집도 완성이다.

그 벽에 소똥들이 동그랗게 붙어있다.

광장시장의 노점에 파는 두툼한 빈대떡 같이 생긴 소똥들이 그 벽에 빼곡히 붙어있다.

난 처음에 소똥인지 몰랐다.

여자들은 소똥을 손을 탁탁 두드려가며 동그랗게 만들어 벽에다 부친다.

그리고 적당히 잘 마르면 연료로 쓴다. 이때 연료는 난방용이 아니라 조리용이다.

이 광경을 보고 나이 많은 시인은 평생 떠돌아다니느라 자신이 돌보지 않았을 나이 많은 아내를 생각한다.

떠도는 자신을 대신하여 아이들과 생계를 꾸렸을 아내를 생각한다.

 

인도기차는 참 매력적인 공간이다.

일단은 우리가 배웠듯이 신분간의 격차가 있는 기차칸 때문이다.

(이제 인도는 전통적 신분이 아니라 경제적 신분이다)

얼마전까지 있었던 우리나라의 무궁화호 기차에 특실과 일반실처럼 나뉘어진 것이라고 보면 되는데,

그 가격차이가 배 이상이 차이가 나기 때문에 경제적 차이가 확연하다는 것이다.

A1,A2,A3(여기까지 일등칸) SL, 2 ,P(여기는 이등칸) 나뉘어진 기차칸,

그리고 그 안의 사람의 모습들이 인간등급 전시장같다.

인간의 경제적 등급에 따라 어떤 옷을 입고, 어떤 말을 하고, 어떤 음식을 먹고, 어떤 물건을 쓰는 지 참 묘한 경험을 하게 된다.

그리고 그 등급의 길이 만큼이나 기차가 길다. 정말 기차가 정말 길다.

그러니 그 곳 화장실에 앉아있으면 기차의 흔들림 심하다.

뭔가 붙잡을 손잡이도 없이, 좀 낯선 시스템의 변기에 앉아 있는 낯섬이 나이 드신 시인의 입장에서 본다면 무엇보다 힘이 들었을 것이다.

그 곳에 앉아 시인은 세상을 만난다. 범대륙적인 세상을 생각한다. 보람찬 듯이 목에 힘을 준다.

변을 보는 것은 실패하였지만, 대륙의 방향으로 향하는 기차에서 볼 일을 보고 앉았다.

덜커덕거리는 소리를 들으며 어쩌면 징키스칸의 말 위에 탄 듯 하다고 느꼈을런지도 모를 일이다.

 

이 두 편의 시를 읽으며,

문인수 시인의 젊은 시를 몇 편을 찾아 읽었다.

그 때 그의 시는 짠함이 많았는데... 이제 풋 하고 웃음이 난다.

웃으라고, 웃는 이야기로 쓴 시들이 분명 아니다.

그런데 마치 내가 그 분의 나이를 대신 먹은 듯,

나도 어느 날 그 분처럼 나이가 먹어 세상을 볼 때, 그렇게 그렇게 세상이 모두 나에게 엮이는 그런 날이 있었으면 하는 맘이 드니, 그 생각만으로 부풀어 올라 웃음이 난다.

기대가 된다.

 

여행을 가기 전에는 맘이 들뜬다.

들뜬 맘으로 가방은 아직도 준비하지 않았지만, 마음 준비를 하는 차원에서 문인수 시인의 시를 골랐다.

 

짧은 여행이지만, 그 분처럼 내가 만날 것들을

내 삶에 씨실과 날실 차이에 부드러운 털처럼 끼워 넣었으면 하는 바램이다.

내 옷 모양은 변하지 않을테지만, 내가 본 것들이 내 삶이라는 옷에 좀 더 부드러운 촉감을 보탤 수 있는 시간이 되길 하는 바램이다.

그 분의 이야기를 하면서 나도 모르게 나 자신이 그 분에게 한 수를 배웠을 거라고 생각한다.

노시인의 눈길....이 익숙하고, 낯설고, 편하고, 신선하고... 사진에서의 시인의 모습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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