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읽히는대로 詩

[오규원] 분식점에서

by 발비(發飛) 2007. 2. 5.

   분식점에서

 

   오규원

 

   바닥에게는 낮은 창문도

   희망이고

 

   몸이 무거운 나무에게는 떨어지는

   잎 하나도 기쁨이다

 

   층계 위에 오래 앉아 있는 나는

   내려가는 것이 희망이고

 

   엊저녁에 산부인과에 가서 낙태수술을  하고 지금은 분식집에서 라면을 먹고 앉아 있는 아이와, 어제까지 몰랐던 여자와 아침까지 자고 지금은 분식집에서 라면을 먹고 있는 아이와,

   그러고도 아직 사랑에 굶주린

 

   이 아이들의 공복으로 배가 접혀오는 내 머리 위의 도시에 그늘을 펴고 있는 라일락의 꿈이 당신의 꽃을 피우는 일이라고 쉽게 짐작하겠지만 그러나 사실을 말하면 라일락의 꿈은

   시든 꽃을 흔들어버릴 4월의 바람이고

   바람도 아니 부는 4월의 봄은

   꽃피는 절망이다

 

 

세상에서 세상을 바라보던 사람이 세상에서 떨어져나갔다.

세상에서 떨어져나간 사람이 세상을 보면 세상은 달라보이려나.

밑바닥이며, 떼우는 곳이며, 잠깐 지나는 곳인 분식점을 세상 전부를 보듯 봤다.

분식점 외에 다른 곳에서 세상을 볼 필요도 없다는 듯

그 곳에서 세상을 봐버린 시인의 눈,

시인의 눈이 세상에서 떨어져나갔다.

 

세상은 시인에겐 작은 점. 짧은 순간. 지나쳐도 아쉬울 것 없었다.

아쉬울 것 없는 듯

......

남 얘기하듯 세상을 읊조리다 시인이 세상에서 떨어져나갔다.

세상과 가장 가까이 살면서도 가장 떨어진 듯 속임수를 쓰고 살던 시인이 정말 세상에서 떨어져 나갔다.

 

오규원 시인이 돌아가셨다했다.

내가 좋아하는 오규원 시인의 '한 잎의 여자'

 

나는 한 여자를 사랑했네. 물푸레나무 한 잎같이 쬐그만 여자, 그 한 잎의 여자를 사랑했네. 물푸레나무 그 한 잎의 솜털, 그 한 잎의 맑음, 그 한 잎의 영혼, 그 한 잎의 눈, 그리고 바람이 불면 보일듯 보일 듯한 그 한 잎의 순결과 자유를 사랑했네.

 

정말로 나는 한 여자를 사랑했네. 여자만을 가진 여자, 여자 아닌 것은 아무 것도 안 가진 여자, 여자 아니면 아무 것도 아닌 여자, 슬픔같은 여자, 병신같은 여자, 시집같은 여자, 그러나 누구나 영원히 가질 수 없는 여자, 그래서 불행한 여자.

그러나 영원히 나 혼자 가지는 여자, 물푸레나무 그림자같은 여자.

 

난 '한 잎의 여자'를 읽으며, 내가 되고 싶기도 하고, 되기 싫기도 한 이 여자.

내가 이미 이 여자 인 듯 싶기도 하고, 절대 이 여자가 될 수 없는 듯 싶기도 하고.

이 시를 읽으며 난 어떤 여자지? 하며  오락가락 정서적 불안정체로 만들었던 시인.

 

그가 세상에서 떨어져 나가면서 남겼다는 4행시란다.

떨어져나가면서.....

 

한적한 오후다.

불타는 오후다.

더 잃을 것이 없는 오후다.

 

나는 나무 속에서 자본다

 

세상인,

작은 점인,

간혹 그의 눈에 내가 띄기도 하고, 내 눈에 그가 띄기도 했던, 시인 혹은 나

둘 중 하나... 시인이 세상에서 떨어져나갔다.

시인도 세상도 작은 점이라 완전연소가 쉬웠을까?  모두 다 암것도 없는 완전연소.

 

시인.

세상에서 떨어져 나가 본 세상은 어떤 세상인가요?

말해줘요.

언제나처럼 읊어줘요.

한 편의 시로 보내줘요.

 

간혹 그의 눈에 띄인 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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