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읽고보는대로 책 & 그림

[이태준] 무서록無序錄

by 발비(發飛) 2006. 12. 3.

'문장강화'로 유명한 이태준의 '무서록'이라는 수필집을 읽고 있다.

범우문고에서 나오는 2800원짜리 문고판.  

이 책은 1941년 그가 37살에 간행한 수필집이다. 1941년!

그 중에서 한 편을 그대로 옮겨 놓는다.

 

-이성간의 우정(友情)-

 

  같은 아는 정도라면 남자를 만나는 것보다 여자를 만나는 것이 우리 남성은 늘 더 신선하다. 왜 그런지 설명을 길게 할 필요는 없지만 얼른 생각나는 것은 동성끼리는 서로 너무나 같기 때문인 듯하다. 다른 데가 너무 없다. 입는 것도 같고, 말소리도 같고, 걸음걸이도 같고, 붙이는 수작도 거의 한 인쇄물이요, 나중에 그의 감정이 은근히 이성을 그리는 것까지 같아버린다. 동일물의 복수, 그것은 늘 단조하다.

  남자에게 있어 여자처럼 최대 그리고 최적의 상이물(相異物)은 없다. 같은 조선 복색이되 우리 남자에게 있어 여자 의복은 완전히 이국복(異國服)이다. 우리가 팔 하나 끼어 볼 수 없도록 완전한 이국복이다. 같은 조선어이되 우리 남자에게 있어 여자들의 말소리는 또 한 먼 거리의 이국어(異國語)다. 뜻만 서로 통할 뿐. 우리 넥타이를 맨 성대에서는 죽어도 나오지 않는 소리다, 우리가 처음 이성을 알 때, 그 이성에게 같은 농도의 이국감을, 어느 외국인에게서 느꼈을 것인가.

  우리에게 여성은 완전한 이국(異國)이다. 사막에 흑인과 사자만이 사는 그런 이국이 아니다, 훨씬 아름다운, 기름진, 향기로운 화원의 절도인 것이다. 오롯한 동경의 낙토인 것이다. 이 절도(絶島)에의 동경을 견디다 못 해 서툰 수영법으로 바다에 뛰어드는 '로빈슨 크루소'들이 시정(市井)에 얼마나 많은가.

 

  다른 것끼리가 늘 즐겁다. 돌멩이라도 다른 것끼리는 어느 모서리로든지 마찰이 된다. 마찰에서 열이 생기고 불이 일고 타고 하는 것은 물리학으로만 진리가 아니다, 이성끼리는 쉽사리 열이 생길 수 있다. 쉽사리 탄다. 동성끼리는 돌이던 것이 이성끼리는 석탄이 될 수 있다. 남자끼리의 십년 정보다 이성끼리의 일 년 정이 더 도수를 올릴 수 있는 것은 석탄화작용에서일 것이다. 타는 것이 맹목적이기 쉽다. 아무리 우정이라 할지라도 불이 일기 전까지이지 한번 한끝이 타기 시작하면 우정은 그야말로 오유(烏有)가 되고만다. 그는 내 누이야요. 그는 내 오빠로 정한 이야요. 하고 곧잘 우정인 것을 공인을 얻으려고 노력까지 하다가도, 어느 틈에 실화(失火)를 해서 우애(友愛)는 그만 화재를 당하고 보험을 들었다 타오듯 하는 것은 부부이기가 일수(一手)임을 나는 허다하게 구경한다

  우정이란 정(情)보다도 의리의 것이다. 부자가의 천륜보다도 더 강할 수 있는 것이 우정이다. 인류의 도덕 가운데 가장 아름답고 완고할 수 있는 것이 우정이다. 이런 굉장한 것을 부작용이 그렇게 많은 청춘 남녀끼리 건축해나가기에는 너무나 벅찰 것이 사실이다

  한 우정을 구성하기에 남자와 여자는 적당한 대수(對手)들이 아니다. 우정보다는 연정에 천연적으로 적재들이다, 주택을 위해 마련된 재목으로 사원을 짓는 것은 곤란일 것이다.

 구태여 이성간에 우정을 맺을 필요가 없다. 절로 맺어지면 모르거니와 매력이 있다해서 우정을 계획할 것은 아니다. 매력이 있는데 우정으로 사귀는 것은 가면이다. 우정은 연정의 유충(幼蟲)은 아니다, 연정 이전 상태가 우정이라면 흔히 그런 경우가 많지만은, 그것은 우정의 유린이다. 우정도 정이요, 연정도 정이다, 종이 한 겹을 나와서는 우정과 연정은 그냥 포옹해버릴 수 있는 동혈형(同血型)이다. 사실 동성간의, 더욱 여성간의 우정이란, 생리적으로 불화일 뿐, 감정적으로는 거의 부부인 것이 많다. 그러기에 특히 정에 예리한 그들은 친하던 동무가 이성과 연애를 하거나, 결혼을 하면 감정상 여간 큰 타격을 받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벌써 우정의 경계선을 돌파한 이후인 증거다. 그러기에 동성연애란 명사까지 생긴다. 우정에 있어 연정은 영구한 적이다.

 

  결혼으로 말미암아 파괴되는 우정은 여성간의 우정 뿐 아니다. 남성간에는 별무한 편이나 남자와 여자간에는 더욱 노골적인 편이다. 여자끼리는 결혼 당시에만 결혼 안 하는 한편이 슬퍼할 뿐, 교양 정도에 따라서는 이내 그 우정은 부활할 수 있고, 도리어 과거의 우정에서 불순했던 것을 청산해서 우정은 영구히 우정으로 정화되는 좋은 찬스가 되기도 한다. 그러나 이성간의 우정은 한편이 결혼 후에 부활되거나 나아가 정화 되는 것이란 극히 희귀하다.

  그러니까 이성간에는 애초부터 연정의 흔색이 없이 순백한 우정이란 발생되기가 어려울 것이다. 아직 우리 사회 상태는 어떤 처소에서나 동성끼리 접촉하기가 더 편리하다. 편리한데서 굳이 고개를 돌려 불편한 이성교제를 맺는 것부터 그 불편리에 대가 될 만한 무엇이 있기 때문이다. 그것은 이성간에 본질적으로 있는 매력이다. 매력은 곧 미(美)다. 인체에서 육체적으로나 심령적으로나 미를 발견함은 우정의 단서가 되기보다는 연정의 단서가 되기에 더 적절하다. 그런데 연애관계는 우정관계보다 훨씬 채색적이다. 인기(人氣)와 물론(物論)이 높아진다. 거기서 대담한 사람끼리는 연애라는 최단거리를 취하고 소심한 사람끼리는 최장거리의 우정코스로 몰리는 듯하다.

  아무튼 이성간에 평범한 지면(知面)정도라면 몰라, 우정이라고까지 특히 지목할 만한 관계라면, 그것은 일종 연정의 기형아로밖에는 볼 수 없을 듯 하다. 기형아이기때문에 이성간의 우정은 늘 감상성이 붙는다. 늘 일보 전에 비밀지대를 바라보는 듯한, 남은 한 페이지를 읽다 그치고 덮어놓은 듯한, 의부진(意不盡)한데가 남는다. 우정 건축에 부적한 원료들이기 때문이다. 그 일보 전의 비밀지대, 못다 읽고 덮는 듯한 최후의 페이지, 그것은 피차의 인격보다도 오히려 환경의 지배를 더 받을 것이다. 한 부모를 가진 한 피의 남매간이 아닌 이상, 제삼자의 시력이 불급하는 환경에 단둘이 오래 있어보라. 그 우정은 부부이상엣 것에라도, 있기만 한다면 돌진하고 남을 것이다.

 

  현대생활은 이성간의 교제가 날로 빈번해진다. 부녀자가 동쪽에서 나타난다고 눈을 서쪽으로 돌이킬 수 없는 시대다. 그 대신 본질적으로 우정 원료가 아닌 남녀끼리 우정을 계획할 필요는 없다. 알게 되면 요즘 문자로 명랑한 사교할 뿐, 특히 우정이라고 지목될 때까지 깊은 인연을 도모할 바 아니요 또 그다지 서로 매력을 견딜 수 없으면 가장을 할 것 없이 정정당당히 연애를 정당한 방법에 의해 행동할 것이다.

  그러나 이성간의 우정을 절대로 부정함은 아니다. 적당한 원료는 아닐망정 집안과 집안 관계로, 혹은 두 사람의 사적관계로도 도는 연령상 서로 현격한 차이로, 수미여일(首尾如一)한 우정이 생존하지 못하리라고 단언할 수는 없다. 그러니까 동성간이라는, 생리적으로 다른, 피차 적응성을 가졌기 때문에 제삼자의 시력 범위 외에 진출하는 찬스는 의식적으로 피해나가야 할 것이다. 남녀 문제에 있어 열 학식이나, 열 인격이 늘 한 찬스보다 약한 것은 영원한 진리이다. 더욱 이성간의 우정, 이것은 흥분한 사상 청년 이상으로 끝까지 보호관찰을 필요하는 것이라 생각한다.

 

 1.

 

60년전에 쓴 이성관이다. 

문장이라는 것,

짧지 않는 한 편의 수필을 옮기는데 시간이 별로 걸리지 않았다. 타자속도가 빠른 것이 아니라 글의 흐름이 막히지 않아 읽듯이 두드렸기 때문이다. 촌스러운 느낌이 하나도 없다. 문체나 내용이나 모두 지금 읽어도 재미나게 읽힌다.

 

좋은 문장이라는 것을 생각했다.

아주 오랜 시간이 지나도 촌스럽지 않으면서, 사람이 살아가는 일에 대한 보편적인 생각들을 품위있게 해석하는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해본다. 지금 우리들이 자주 쓰는 말줄임표라던가, 'ㅋㅋ', 'ㅎㅎ', '^^' 류의 활자들이 박힌다면 그건 곧 촌스러워질 것이다.

 

2.

 

지금은 12월 셋째날 새벽이다. 올해가 한 달 남았다. 

난 새해가 오기 전에 꼭 해야 할 일이 있다.

 

잊혀지지 않는 사람을 꼭 잊을 것이다.

세상엔 나눌 수 없는 사람이 있다. 그저 석탄이라는 이유로 나를 다 태워야하다니.

우정이라고 우긴들, 아무도 없는 공간에 가면 아무 소용이 없단다. 긴급동의!

잊는 것을  몇 번 실패했지만, 내년까지 이 뻔한 실패를 가지고 살 수 없다.

오비이락烏飛梨落이라고 했던가, 마침 이 글을 읽고는 맘을 굳혀본다. 나를 힘들게 하고 싶지 않다.

 

사람의 빈자리를 텅 비워둔다. 12월에 해야할 일이다.

 

3.

 

시간을 좀 더 거슬러 올라가 30년대의 연애법에 관한 신문기사를 올린다.

30년대의 관점에서 본다면 난, 구제불능의 여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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