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의 나를 소개합니다.
뜨게질을 하고 있었지요.
며칠째지?
아마 일주일정도?
계속? 계속.
쉐타하나를 머플러와 셋트로 한 벌 완성했지요. 나의 필이 아니라 시큰둥.
조끼는 두 벌을 떴다가 모두 풀어버렸지요. 이것도 아니야. 아니야. 또 시큰둥.
어젯밤에는 서랍장을 뒤져 작년에 떠놓은 모자와 머플러를 꺼내서 모두 풀었지. 뭘 할까?
지금, 의 저를 소개하자면
떴다가 푸는 여자.
혹은, 이미 완성되었지만 입지는 않을 것 같은 여자.
그런데도 풀었던 조끼중의 하나를 다시 뜨고 있습니다.
읽지도 쓰지도 않고 그저 밤낮으로 계속 뜨개질을 합니다.
친구가 전화가 와서 뭐하냐? 그럼
도 닦는다! 그렇게 대답하면서......
무념무상의 상태에서 습관적으로 바늘을 움직이고 있으면, 뇌 속의 복잡한 것들이 저절로 자리를 잡겠지.
명상이나 도가 따로 있나요. 이 것 이 바 로 명 상 이 지.
뜨개질로 도를 닦다가,
오늘 아침에는 벌떡 일어나 이력서와 자기소개서를 썼습니다.
순식간에 이력서와 자기소개서를 쓰면서 역시 도를 닦은 효험이 나타나는군 했지요.
참 간만에 쓰는 이력서, 그리고 자기소개서.
어찌 어찌 지나온 그야말로 이력들
이ː력(履歷) [명사] 지금까지 닦아 온 학업이나 거쳐 온 직업 따위의 경력. -다음사전
졸업과 입학 몇 번 반복.
취직과 이직 몇 번 반복.
그나마 자기소개서가 있어서 그래도 좀은 낫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단지 이력만 있는 삶, 그것 참 꿀꿀한 느낌이잖아.
쓰기 번거롭고 뭔가 짜내어야 하는 것이지만, 자기소개서를 쓰다보면 뭔가 내 인생에서 찾아내야 할 것들이 있는 것처럼 느껴지기도 하니까....
당시에는 별 것 아닌 일들이 나의 이력이나 소개의 몇 줄을 차지하는 것을 보면
그것 또한 묵직하게 다가오기도 했지요.
회사마다 자기소개의 포인트가 달라야 하겠지만, 살아온 기본 씨줄은 변하지 않는 거니까...
저장시켜두고
이제 다시 가보는거야. 그래 내가 좋아하는 전인권의 '걱정말아요. 그대'가 나를 밀어줄거잖아.
보람차게 배꼽무늬 엑스표를 닫아두었습니다.
지금, 의 나를 소개합니다.
이력서와 자기소개서의 나는 나의 나이만큼 아니, 나이에 비하면 너무 민망할만큼 채워둘 것이 없었지만,
조끼를 풀어서 쪼글거리는 실로 다시 짜고 있는 새로운 조끼를 지금 뜨고 있습니다.
한 번 풀었다가 다시 짜기에 실이 비록 쪼글거리지만, 손의 힘은 더 갑니다.
다시 풀고 다시 뜨지 않기 위해.
그리고 더 가볍습니다.
잘 못 되면 풀고 다시 떠도 아무 이상이 없다는 것도 전 압니다.
지금, 의 나를 소개하자면, 바로 그걸 아는 '나'이지요.
추신: 떴다! 풀었다! 다시 뜬다! 귀찮고 힘든 것은 확실해! 앞으론 되도록 그러지 말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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