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읽히는대로 詩

[박상순]10개의 강아지 인형을 지키는 옷장 속의 인간

by 발비(發飛) 2006. 10. 22.

10개의 강아지 인형을 지키는 옷장 속의 인간

박상순

창밖에는 비 오고요. 바람이 불고요.
그대의 창백한 얼굴이 가슴에 있네요
문밖에는 비 오구요. 바람이 불고요.
그대의 창백한 얼굴이 발 아래 있네요
창밖에는 비 오고요. 바람이 불고요.
그대의 창백한 얼굴이 등 뒤에 있네요
문밖에는 비 오고요. 바람이 불고요. 나는,
그대의 창백한 얼굴이, 나는, 열 개나 있네요.

 

그를 가두어두기로 했어.
그를 사랑하는데 그를 알아보지 못해.
그를 사랑하는데 그의 얼굴을 알아볼 수 없어. 그의 얼굴이 너무 많아.

그의 옆을 지나가도 그를 알아보지 못하고 지나치지. 그럼,

간혹은 뒤에서 끌어당기는 그에게 미안해하며 말하지.
너가 너였니?
이제 이렇게 몇 번, 아마 그를 놓칠 것 같아. 그를


나 그를 사랑한다면서 그를 알아보지 못해
그를 가두었어. 이젠 보이는 것들이 모두 그라는 걸 알아.
보이는 모두에게 사랑한다고 말하며 안아주면 돼. 모두가 사랑하는 그니까. 
그의 얼굴이 너무 많아, 내가 사랑하는 그의 얼굴을 알아볼 수 없었어. 항상

이제 그의 얼굴을 기억하려고 애를 쓸 필요도 없어. 모두 그니까


그를 사랑하는데, 지금도 그를 사랑하는데, 그의 얼굴을 알아볼 수 없었어.
간혹, 뒤에서 나를 당기던 낯선 얼굴의 그도 이젠 안심한거야.
모든 것이 잘 된거야.

가두어버리길 잘 한거야. 가두었어. 가두어버렸지.

그의 얼굴이 너무 많았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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