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일 축하한다.
우체국을 돌아나오며
시집을 골라들었다.
너무 늦은감이 없지는 않지만
동인회 사람들 모두 축하한다는
말을 전해달랬다.
어떤 시인을 좋아하는지 알 수 없어
가장 눈에 들어오는 책을 골랐는데
맘에 들지 모르겠구나.
-첫장을 여는 마음으로 빠자가.(꽃그림)
시집을 덮으며
생각나는 것이 있다면
아마도 행복하겠지.
시를 읽을 수 있다는
삶을 그려보는 것 또한
의미로운 일이라 생각한다.
-첫장을 여는 마음으로 빠자가.(꽃그림)
며칠 전 대학로서점 이음에서 연극 '오늘의 책은 어디로 사라졌을까'라는 공연을 보았었다.
헌책방을 무대로 대학동창 4명이 그때의 일들을 엮어나갔다.
남자들이 여자의 생일선물로 주었던 시집 갈피의 짧은 메모가 그들의 인간고리를 눈치채게 한다.
헌책들을 통해서 그들이 살았던 때, 그 때의 꿈, 그 이후의 시간, 지금.....의 이야기를 풀어나갔다.
잔잔하면서도 웃음이 떠나지 않았고.
그 웃음과 함께 진한 설움같은 것도 함께했었다. 그리움때문에.....
어제 다시 들른 '이음'의 헌책코너에서 안도현시집 '바닷가 우체국'이라는 시집을 골랐다.
이 시집의 갈피 앞 뒤 의 빨간 글씨로 된 부분이 세로줄로 적혀있었다.
동인회에서 대표로 시집을 선물로 고른 '빠자'는 우체국을 다녀오는 길이란다.
시집 한 권을 모두 읽고 생각나는 시 한 편이 있다면 행복할 것이란다.
빠자는 시를 읽을 수 있는 삶을 의미로는 일이라고 한다.
마치 내가 이 시집을 선물 받은 듯, 기쁘다.
난 이미 뒷갈피까지 읽고나서 이 시집을 읽었으므로 한 편의 시가 생각나기를 하는 욕심을 부리며
책장을 넘겼다. 한 편 한 편에 무게가 실린다.
시집을 덮으며 '양철지붕에 대하여'를 골랐다.
빠자야! 안녕?
행복한 시집이었어. 너가 거기 있어서.
난 아마 양철지붕 아래 외양간 한 켠에 짚더미를 집삼아 살고 있는 고양이거나 쥐일 것 같다.
비와 양철지붕으로 만나고 있는 너희들의 소리를 듣고 있는,
너희들과는 상관없는 작은 세상 한 켠.
그런데, 너희들때문에 오늘은 행복했던 다른 세상 한 켠이다.
삶이란,
버선처럼 뒤집어볼수록 실밥이 많은 것
양철 지붕을 이해하려면
오래 빗소리를 들을 줄 알아야 한다
우리 사이에는 은유가 좀 필요한 것 아니냐?
몇 구절이 끊기면서 좋다. 마치 이 한 편의 시에 몇 편의 시가 모여있는 느낌이다.
양철지붕에 대하여
안도현
양철 지붕이 그렁거리다,라고 쓰면
그럼 바람이 불어서겠지, 라고
그저 단순하게 생각해서는 안 된다.
삶이란,
버선처럼 뒤집어볼수록 실밥이 많은 것
나는 수없이 양철 지붕을 두드리는 빗방울이었으나
실은, 두드렸으나 스며들지 못하고 사라진
빗소리였으나
보이지 않기 때문에
더 절실한 사랑이 나에게도 있었다
양철 지붕을 이해하려면
오래 빗소리를 들을 줄 알아야 한다
맨 처음 양철 지붕을 얹을 때
날아가지 않으려고
몸에 가장 많이 못자국을 두른 양철이
그놈이 가장 많이 상처입고 가장 많이 녹슬어 그렁거린다는 것을
너는 눈치채야한다
그러니까 사랑한다는 말은 증발하기 쉬우므로
쉽게 꺼내지 말 것
너를 위해 나도 녹슬어가고 싶다, 라든지
비 온 뒤에 햇볕 쪽으로 먼저 몸을 말리려고 뒤척이지는 않겠다, 라든지
그래, 우리 사이에는 은유가 좀 필요한 것 아니냐?
생각해봐
한쪽면이 뜨거워지면
그 뒷면도 함께 뜨거워지는 게 양철 지붕이란다
세상은 모두 통할 수 있다고 믿으며......, 은유로 말하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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