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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절거림

우곡- 밤길을 걷다

by 발비(發飛) 2006. 10. 3.

 

 

어젯밤, 우곡성지에서 밤 산책을 했습니다.

산 속이라 해가 빨리도 졌습니다.

방에서 나올 때는 환한 걸 보고 나왔었는데, 오백미터 쯤 가니 어두워졌습니다.

 

어둠을 가장 먼저 받은 것은, 코스모스였습니다.

아스팔트 틈 사이에서 핀 코스모스가 어둠에 묻혀있었습니다.

어둠 속에서 코스모스를 발견하고는 어둠 속에 핀 코스모스의 표정은 어떨까 궁금해졌습니다.

어둠 속에서도 꽃은 꽃이라 활짝 웃고 있을까?

아님 어둠 속이니까 그저 제 맘가는데로 있을까?

웃고 있나?

어쩌나?

카메라 모니터로는 확인이 되지 않았습니다.

 

저의 등 뒤로 가로등이 켜져있습니다.

아마 그림자가 아스팔트에 있을 것이다. 아마도 옅은 빛이라도 그것이 빛이라면 난 그림자 하나를 깔고 서있을 것이다.

어둠 속에 나의 그림자는 어떤 모습을 하고 있을까?

어둠 속에서도 난 나니까 하며 당당히 서 있을까

아님, 어둠 속이니까 ....

어떤 모습일까?

이것도 역시 카메라 모니터로는 어둠만 보일뿐 확인할 수 없었습니다.

 

방으로 돌아와 포토샵으로 화면 밝기 조정을 하면서 어둠 속에서의

코스모스와 나의 모습을 확인합니다.

 

코스모스는 흔들리고 있었습니다.

난 아스팔트에 온 몸을 납작하니 붙이고 있었습니다.

 

어둠 속에서 둘은 달랐습니다.

빛 안에서 익숙해진 것들이 어둠 속에선 다른 모습으로 살아가고 있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칠흙같은 어둠이었습니다.

추석이 며칠 남지 않았지만, 달은 구름 속에 가리어 보이지 않고,

어둠에 묻힌 코스모스와 저는 밤길 위에 한참을 서 있었습니다.

 

하고 싶은대로

맘 가는대로

어둠 속이라 무슨 짓을 해도 보이지 않는다는 것을 코스모스와 저, 둘 다 이미 알고 있었네요.

밤길을 걷고 싶었던 이유겠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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