뛰는 담수
신담수는 소극장 연극배우라 했다.
방콕에서 캄보디아로 가는 미니버스에서 만나, 캄보디아에 있는 내내 함께 한 친구이다.
담수와 함께 시엥립에 온지 삼 일째쯤 되던 날이었고, 앙코르유적군 투어 이틀째 날이었다.
반띠아이쓰레이를 갔다가 반떼아이쌈레를 가는 중이었다.
앙코르왓유적군중의 이동 거리가 가장 먼 길이다.
비가 내리기 시작했다.
하늘색이 흐려지는데 반해 땅의 색은 선명해졌다.
붉은 비포장 흙길은 비에 젖어들면서 마치 붉은 물을 들이고 있는 것처럼 색이 점점 진해진다.
점점 더 붉어지는 길이 곧게 뻗어 끝이 안 보인다.
비는 멀리 하늘의 맑은 빛에 반사되어 반짝거리며 내리고 있다.
붉은 길에 하얗게 반짝이며 내리는 비,
툭툭기사에겐 미안하지만, 그저 계속 이렇게 끝도 없이 갔으면 좋겠다 싶었다.
그런데, 신담수! 말없이 비가 내리는 것을 보더니 갑자기,
“나 비 맞고 싶어요. 나 비 맞을래.”
“어?”
“누나도 비 맞지 않을래요. 가만히 못 있겠어요. 너무 좋아요. 나 비 맞으며 뛸래요.”
말릴 수 없다.
나도 같이 비를 맞고 싶었다.
아마 얇은 옷만 아니었다면, 나도 담수에게 ‘같이’라고 말했을 지도 모른다.
툭툭기사에게 잠시 서라고 했다.
담수는 내려서 뛰기 시작했다.
툭툭기사는 놀래는 듯, 웃기는 듯 천천히 달린다.
난, 담수가 부러우면서도 새삼 반갑다.
비가 내린다며 뛰고 싶다는 친구,
정말, 비가 내린다며 뛰어보는 친구와 동행이라는 것이 반가웠다.
비에 젖은 바닥이 처벅 거리는데도 담수는 아랑곳하지 않고 한참을 달렸다.
“좋니?”
난, 점점 쳐져서 툭툭이 옆이 되어버린 담수에게 물었다.
“무지 좋아, 속이 시원해······. 근데, 숨 차!”
툭툭기사가 툭툭을 세웠다.
젖은 담수가 툭툭에 올라타는데, 그 얼굴이 정말 시원한 표정이었다.
비에 맞아서 시원하다기보다, 무엇인가 벗겨낸 듯이 얼굴이 시원하게 말갛다.
“이럴 수 있어서 참 좋네, 정말 좋아. 사람들이 이래서 여행을 나오나 봐요. 서울에선 못하잖아. 미친놈처럼 보일까봐.”
“그냥 해 버려. 안 될까? ······”
담수는 그날 오후 남은 일정 내내 한 단계 업 되어 있었던 것 같았다.
가벼웠던 게지.
어설프게 자리 잡고 있던, 생각뭉치 하나를 뛰는 사이에 저도 모르게 날려버린 것이지 싶다.
뛰는 담수가 서울로 왔다는 메일을 받았다.
그렇구나, 다시 연극무대에서 서서 다른······, 또 다른 인물로 살아가겠지.
그 날,
생각뭉치 날려 생긴 빈자리가 빈자리로 남아 있었으면 한다.
그 날,
뛰면서 생겼을 빈자리가 아주 오래도록, 주인 없이 그대로 남겨 두었으면 좋겠다.
그 날,
만든 빈자리에 '뛰는 담수'가 연기할 수많은 인물들이 들락거렸으면 하는 생각을 해본다.
그랬으면 참 좋을 것 같다.
뛰는 담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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