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見聞錄

기행일기-18

by 발비(發飛) 2006. 9. 24.
2006/ 08/ 21

델 리에서 하루를 기다리다 저녁 기차 뭄바이-골든템플호를 타고 암리챠르로 향한다.
인도의 마지막을 편안히 행복하게 장식하자며 3A를 타기로 했다.
잘 결정한 일이다.
역시 쉴 수 있는 곳이다.
어느 게스트하우스보다 더 편한 잠을 잔다.
아 침 7시가 좀 넘어 암리챠르에 도착했다.
역시 소문대로 부자동네임이 틀림없다.
거리에 상점들이 여행자들의 상점들이 아니라
그들 자신이 살아가는데 필요한 물건을 사고 파는 상점들이다.
여행자가 그저 지나가는 것처럼 아무런 상관이 없는 곳이 그리웠는데,
이 곳이었으면 싶다.
일 단, 골든템플안에 무료 숙소에 묵기로 한다.
인도를 내일 떠야 하니,남은 돈이 달랑달랑하다.
공짜방이 필요한 것이지.
골든템플 입구에 정말 큰 무료숙소가 있다그 숙소 한 켠에 외국인들만을 위한 방을 두고 무료로 재워준다.
여러나라 사람들이 함께 모여 잠을 잔단다.
안은 생각한 것보다야 지만, 금방이라도 뜨고 싶다는 생각이 간절하다.
짐을 침대머리맡에 무어두고 골든템플로 들어간다.
모두 대리석이다.
입 구야 항상 구걸하는 사람으로 붐빈다.
이 곳도 역시 손들이 미리 반긴다.
멀리 호수 위로 그림자부터 보이는 골든템플이 번쩍인다.
그 번쩍임을 중심으로 네모 반듯한 호수,
호수를 둘러싼 계단 턱,
그 위에 엎드려 기도하는 사람들, 길게 줄을 지어선 기도행렬들,
시크의 터번과 시크아이들을 귀여운 머리채.
그들을 따라 행렬이 된다.
내가 그들에게 최소한의 예의를 지킨다고 한 것은 숄로 머리를 감추는 일이다.
그들 대부분은 여행자에게 관심이 없다.
그들은 이 아침에 간절한 소망이 있어 이 곳으로 왔을 것이다.
그 소망이 바빠 기도 또한 깊다. 모두들 기도를 한다.
하는 기도법이나 행동들이 마치 성당에 온 듯한 기분과 비슷하다.
문턱을 넘을 때마다 두 무릎을 꿇고 앉아 머리와 가슴에다 손을 얹어 신에 대한 복종과 자신들의 꿈을 차분히 내려놓고 있는 사람들의 행렬사이를 무심히 따라가다 문득 생각한다.
신의 존재의 유무보다 언제 저리 가슴에다 손을 얹고 차분히 나를 내려놓은 적이 있었는지 말이다.
열띤 토론을 하고 입으로 온갖 것들을 다하면서 정작 가슴에서 내려놓아야 할 것들,
머릿속에서 지워야 할 것들을 진정코 지우고 내려놓았던 적이 있는지
그 행렬들을 따라 움직이면서 한 번은 나를 내려놓았으면 좋겠다 싶다.
그들의 맹목적인 신의 숭배가 잠시 부러웠다.
덥다.
팍팍하다.
답답하다.
생 각이 멈춰버린다.
뭔가를 먹어야 할 때가 되었음에도 먹지 못하고 골든템플의 도리토리에 누워버렸다.
공짜? 뭐 그런 의미보다는 여행자가 누릴 수 있는 객기였다고 해야하나?
객기는 항상 허무한 결과를 낳는다.
야심차게 이틀을 묵을거라는 계획이 서서히 흘러내리기 시작한다.
굴안에 들어앉아 있는 듯한 그 답답함,
끈적이는 침구,
차라리 그냥 떠나는 것이 낫겠다.
몸이 불편함을 점점 더 참지 못한다.
체력이 소진되어감인지....후다닥 급히 일어나 체크아웃을 해버린다.
시간이 늦으면 국경을 넘지 못하는데...
버스를 타고 국경으로 가겠다는 처음 계획과는 달리 오토릭샤를 타고 간다.
시간이 늦으면 안되니까 서둘러 달라고 릭샤왈라에게 부탁까지 하면서 말이다.
순식간에 일정이 바뀌었다.
인도와 파키스탄 국경폐쇄식을 보고 인도를 뜨겠다는 계획은 파키스탄에서 보는 것으로 하겠다고 스스로 정리까지 한다.
다행히 3시즈음에 국경에 다다랐다.
국경을 마주한 나라다.
네 팔도 인도와 국경을 마주 하고 있지만,
그들 두 나라는 주국과 속국이라고 해야하나,
경계가 나누어져 있지만, 경계가 경계라는 느낌이 들지 않았었다.
하지만 이 국경의 경우는 다르다.
국경은 종교의 대립으로 인한 반목의 현장이기도 하다.
지금 경계를 이루고 있는 암리차르와 라호르는 같은 주에 있었던 도시인데,
지금은 서로 다른 나라가 된 것이니까.....
넘어가는 길도 길기도 하다.
잘 정리된 도로를 따라 몇 차례의 여권검사도 그들 두 나라간의 빡빡함을 보여준다.
파 란 옷을 입은 짐꾼들이 아마 100여명이 되는 듯 싶다.
그들은 트럭에서 실어온 박스들을 나르고 있었다.
인도와 파키스탄이라는 두 나라의 정치나 종교와는 다르게 경제라는 것은 먹고 사는 일이라 여전히 소통하고 교통하는가 보다 싶었다.
인도에서 물건을 실어 파키스탄으로 옮긴다.
국경에서 움직이는 것이라고는 아마 파란 옷을 입은 짐꾼들뿐이 아닐까 싶었다.
파란 옷들 사이를 배낭을 메고 걷는데 뭐라고 표현해야하나, 모두 먹고 사는 일 같다는 생각이 든다. 그들이 파란 옷을 입고
이 곳에서 다람쥐 쳇바퀴를 돌듯이 500미터의 구간을 오고 가는 것으로 하루의 전부를 보내듯이,
인도에서 파키스탄의 물건들이 그 자리를 오고 가고,
그것들로 한 가족이 먹고 살고,
한 나라가 먹고 사는 일이 달려있으니 모든 것에 우선하는 것이 먹고 사는 것이 아닐까 생각한다.
먹고 사는 일을 위해 같은 구간을 반복하는 일에 싫증을 내며
나는 왜?
나는 왜? 하고 자리를 박차고 온 것은 어쨌든
그들보다는 더 나은 상황이 아니었나 생각하며,
40도가 넘는 아스팔트의 길을 헉헉거리면서 걷는다.
먹고 사는 일이 아니라 나아가는 것을 위해서 집을 떠난 난,
더워도 힘이 들어도 얼굴표정조차 바꿀 수 없었다.
흐르는 땀을 훔치면서 그저 파키스탄으로 향했다.
그 많은 상자들과 함께 말이다.
국경을 넘자 우리를 처음 맞은 사람들은 여권을 보자고 하는 이미그래이션 직원들도 있기는 하지만, 빨강과 초록색의 옷을 입은 파키스탄의 짐꾼이다.
그들은 뛰고 있었다.
인도의 파란 짐꾼이 천천히 줄을 지어 움직이고
인도에 걸터앉아 쉬고 있는 모습과는 반대로
파키스탄의 빨갛고 푸른 옷을 입은 짐꾼들은 뛰고 있었다.
한 번 더 길을 왕복하여 표하나를 더 받기 위해서 일 것이다.
사는 일이 어느 나라가 더 팍팍한지를 이것만 보고도 눈치 챌수 있었다.
사는 것이 더 팍팍한 나라로 가고 있는 것이다.
연령대도 더 많이 다양했다.
어린 아이부터 나이 든 아저씨들까지 땡볕을 뛴다.
그들 사이를 또 걸었다.
그들과 마주 보며 걷고, 짐을 진 그들과 나란히 걸어서 이미그래이션 사무실에서 입국허가를 받았다. 땀 이 비오듯 흘러내린다.
오늘 국경을 넘은 사람은 열명정도가 된다고 한다.
아무래도 인도에서 네팔로 넘어가는 사람보다는 그 수가 턱도 없이 적다.
열 명 중 한 명이 되어 파키스탄으로 입국했다.
파키스탄 직원이 차가운 물을 준다.
보기에도 불쌍해보였나보다.
하긴 짐꾼들보다 더 많은 땀을 흘리고 있었으니 불쌍할 밖에......,
파키스탄에 들어가기 위한 모든 절차가 끝이 났다.
인도쪽에서 보기로한 국경폐쇄식(플래그 세레모니)를 보고 난 뒤 라호르로 이동하기로 했다.
사무실 직원이 시원한 잔디밭에서 기다리라고 한다.
잔디밭 그늘에 앉아 시간반을 보낸다.
그 사이에 오고 가는 사람들이 많아졌다.
세레모니때문이란다. 아 이들이 국경쪽에서 흘끔거리면서 온다.
비닐봉투에 한웅큼씩을 들고는 숨겨지지도 않는 옷 속에다 물건들을 숨겼다.
자세히 보니, 토마토와 감자이다.
그들은 인도에서 수입된 박스안에는 든 감자와 토마토를 조금씩 빼돌려 집으로 옮기고 있는 것이다. 마침 두 아이가 나의 앞을 지난다.
토마토가 있는 것을 안다고 말했더니,
봉지 속에서 토마토를 하나 꺼내 먹을 건지를 묻는다.
달라고 하면서 내심 어떻게 나올까 궁금했었다.
인도처럼 5루피 10루피를 달라고 할까?
난 분명 배고픈 여행자로 보였을테니까, 그들이 그걸 모를 턱이 없다.
그런데 그 아이들 신기하게도 그냥 먹으란다.
그러면서 가슴 속에서 토마토 하나를 더 꺼내서 하나 더 먹으라고까지 한다.
다른건가? 맛나게 먹는 나를 보고 차라리 뿌듯한 표정까지 짓더군! 어디서 왔냐고 묻는다.
갖고 있는 물건이 없냐고 묻는다.
아마 팔라고 하는 모양이다.
그저 내게 다 필요한 것들만 있다고 말했더니, 그것으로 끝이다.
인도아이들같지는 않구나 싶었다. 살기는 더 팍팍한데 하는 짓은 더 팍팍하지는 않다.
내가 한 달동안 살아야 할 곳이 덜 팍팍한 다행이다 싶으면서 한숨을 내려놓는다.
그 짓이 이뻐서 아이들을 위해 이벤트를 잠깐하기로.... 갖고 있는 것,
사용할 무기는 그들이 보지 못한 것들이어야 한다.
항상 하는 짓, 디카로 사진찍어주고 확인시켜주기, 아이들에 따라서 좀 다른 버전으로 보여주기다.
오늘은 좀 난이도를 높여서 그들이 보지 못한 그들의 모습을 보여주기 위해 각을 좀 주어 앵글을 대고 그들이 보지 못한 그들의 모습을 보여주는 것이다.
역시 재미있어한다. 그리고 동영상을 찍어주었다.
아이들에게 춤을 춰보라고 했다.
아이들은 자연스럽게 막춤을 춘다.
아무런 거리낌없이 자연스럽게 몸을 사방으로 흔들어댄다.
한참 노는 아이를 동영상으로 찍어주고 아이들에게 보여주었다. 역시 또 좋아한다.
그저 좋아하고 신기해하는 그 모습에 맘이 짠하다.
더는 신기해하지 않는 우리들의 아이들은 사는 맛은 어떤맛일까 싶기도 했다.
시간이 되었다.
줄 이 지어서 국경쪽으로 가는 행렬을 따라 배낭을 메고 다시 걷는다.
나의 행색은 그들과는 당연히 다르다.
그들은 특이한 한 인간을 쳐다본다.
저희들끼리 키킥거린다.
여자들이 더 많이 웃는 듯 하다.
국경에서는 분주했다.
파키스탄은 파키스탄대로 사람들이 몰려들고,
인도는 인도대로 사람들이 몰려들었다.
인도의 숫자는 대단했다.
거기에 비하면 파키스탄 사람의 수는 1/20 정도밖에는 되지 았다.
두 나라의 뿌리는 여러개라고 할 수 있지만, 결국은 하나의 뿌리임은 부인할 수 없다.
같은 기질을 가진 두 나라가 등을 돌리고 있다.
경쟁적으로 두 나라가 국기를 내리는 일을 자존심 대결을 하고 있다.
그것도 매일 말이다.
스포츠경기에서 서로의 응원전에 혈안이 되어 있듯이 그들은 서로에게 혈안이 되어있었다.
그 두 나라가 나뉘어진 종교문제,
그것은 골수에 박히고 가슴에 박히는 것이라 어쩔 수 없는 일일거라는 생각이 들기는 하지만
그 두나라 2000년대를 살아가면서
신의 영역이 전부를 차지하는 두 나라는 관광대상이 되는 것도 당연한 일이 아닌가 싶다.
근 위병의 세레모니들, 응원단장 격인 사람의 구호와
세레모니, 파키스탄의 유명인사일듯 한 사람들의 엄숙한 표정, 세레모니가 있을 적마다
연호하는 파키스탄 국민들,
국경너머 인산인해를 이룬 인도인들이 연호하는 소리.
그들의 연호를 받아치는 파키스탄 사람들.
힌디스탄, 파키스탄!!!! 지금도 그 소리가 쟁쟁하게 들려온다.
그들 사이에 끼어앉아 중립이다.
중립인 나는 구경꾼이고,
그들은 당사자들이고,
그들은 목이 터져라 외치고 난 웃고 있었다.
그것도 외국인라고 특별히 마련된 국경과 가장 가까운 자리에서 말이다.
세 레모니가 끝이 나고 ,
세레모니에 참가했던 군인들을 국경앞에 세우고 참 많은 인사들이 기념촬영을 한다.
세레모니였나?
난 그들이 기념촬영하는 모습을 보면서 다시 의아해진다.
정말 절박하다면 그럴 수는 없을 것 같은데,
높은 사람처럼 생긴 사람들이 자신의 카메라를 군인들에게 쥐어주고 사진촬영을 부탁한다.
기념사진이다.
뭐 그런 것이 당연하기는 하지만, 절박, 간절.....그것은 내 맘의 조급함일 뿐이었다.
라 호르까지 택시로는 500루피, 일반 버스로는 25루피, 버스를 탄다.
세레모니를 구경왔던 사람들이 많아서 버스가 미어진다.
여자칸과 남자칸이 분리되었다.
여자도 많고 남자도 많다.
버스로 오르자, 수많은 여성들이 자기들끼리 또 킥킥거린다.
여기에 앉아라 저기에 앉아라... 친절? 동물원에 원숭이가 따로 없다.
모두들 나의 일거수 일투족을 쳐다본다.
한 명의 여자가 나에게 영어로 말을 건다.
파키스탄여자가 영어를? 그녀는 너무 적극적이다.
나에게 오픈슈즈가 없냐는 말로 시작했다. 없다고 했다.
운동화 한 켤레가 있다고 말했다.
저희들끼리 또 킥킥? 말만 하면 킥킥거린다.
오던 길에 내게 물어보지도 않고 고춧가루와 소금을 묻혀주었다.
그걸 호호거리면서 먹고 있었는데, 나에게 칠리라고 가르쳐준다.
한국에도 있어서 안다고 말했더니,
그것 가지고 킥킥! 질문공세가 이어진다.
이름이 뭐냐?
파키스탄에 왜 왔느냐?
어디가느냐?
라호르에 어느 곳을 아느냐,
파키스탄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느냐?
악세사리를 왜 안하느냐? 술은 먹느냐?
춤은 출줄 아느냐?
남자친구는 있느냐?
자기가 몇 살처럼 보이느냐?
날씬해지려고 어떻게 하느냐?
펀잡이 이쁘냐? 온갖 이야기를 다 묻는다.
마지막에는 내 주머니에서 삐죽이 튀어나온 손수건을 보고는 어디서 샀느냐,
머리를 어디서 잘랐느냐..... 한계상황이 왔다.
이제는 창밖을 내다보면서 못 들은 척을 했더니 어깨까지 돌려놓으면서 자신의 집으로 초대를 한다. 미안하지만 그렇게는 안되겠다는 말에 한마디한다.
이슬람은 힌디과는 다르다는 것이다.
자신들은 정직하고 진실하단다.
그렇냐고 그렇지만 난 나의 계획 때문에 그렇게 할 수는 없다고 말했다.
그러다 저러다 라호르에 도착했다.
짧 은 인사를 하고 헤어졌다.
마치 올가미에서 풀려난 듯 홀가분해지면서 파키스탄 사람들이 친절하다더니
이런 것을 가지고 친절하다고 말하는구나 싶으면서도 왠지 부담스럽다는 생각을 지울 수 없다.
여행자의 닳고 닳은 마음이 되어서인가?
아마 여행의 첫 시작이었으면 그들의 친절에 감동 먹을텐데.
파키스탄의 첫 방문지인 라호르는 첫 기억은 라호르의 이미지가 아니라
버스에서 만났던 수다쟁이 노처녀로만 기억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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