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6/ 06/ 09
구름이 걷힌 것일까? 아님 달이 밝아서 구름이 보이지 않은 것일까?
내일 바라나시를 떠난다.
저녁 6시 30분 기차로 델리로 간다.
다시 올 수도 오지 않을 수도 있는 곳이다.
아마 나의 의지로 말한다면 그리 오고 싶지 않은 곳이다.
처음부터 그랬다.
오자말자 떠나고 싶었던 곳인데 일주일을 머물렀다.
의지하는 않는 일이 만들어지는 내가 심적으로 항복하기로 작정한 곳이다.
그저 오라면 오고 가라면 가야 할 곳의 목록에 바라나시를 넣었다.
이 곳 가트에서 화장하는 모습과 뿌자르 지내는 모습을 본다면 항복할 수 밖에 없다.
일주일 만에 처음으로 달을 보았다.
달이 뜨던 초저녁과는 달리 구름은 보이지 않고 온 하늘이 달빛으로 가득하다.
뿌자는 끝나 가트의 불빛들이 아주 조금 남아있고, 마을의 불빛도 아주 조금 남아
바라나시가 빠르게 어두워지고 있는 시간인데 왠지 모르게 혼자 짠하다.
옆에서 장장 세시간을 떠들던 일본친구들은 이제 자리를 떠나고
일본 친구들을 피해 실내로 들어간 이스라엘친구들은 인도티비를 보느라 정신이 없다 .
아마 그들은 내일 떠날 생각은 아닌가보다.
이곳에서 본 것 느낀 것?
유적지를 찾아다니지도, 물건을 사지도, 릭샤를 타고 떠돌지도 않았다.
그저 매일 뿌자를 보았고, 가트를 돌아다녔고, 소똥을 피해 시장을 다녔을 뿐이다.
오늘도 시장을 지나는 일은 숨을 몰아쉬고 시작해야 하는 일이다.
피해야 할 것들이 많은 곳,
물건을 사라고 끄는 손들,
좁은 시장 골목에 가로 누운 소들, 개들,
그들의 분비물들,
‘헬로우’ 하는 소리도,
‘안녕하세요’하는 소리도,
‘어디가요’ 하는 소리도,
‘곤니찌와’하는 소리도
그저 멀리서.....
나와는 상관없는 이야기들처럼 ,
난 대답도 없이 길을 걷기만 했다.
바라나시에 와서 인터넷을 사용하던 할아버지네에 들러 인도카페에 올려두었던 질문에 답을 보고,
간만에 메일을 체크해서 답장할 곳에 답장을 하고,
블로그에 이 곳 삐끼들에 대한 내 생각을 주절거렸다.
주인할아버지는 어느새 나의 건망증을 파악하고
내가 자리를 옮길때마다 흘린 내 물건들을 챙겨주셨다.
나의 어깨을 치면서 ‘유어스’ ‘유어스’ ......참 민망했지만,
그것이 할아버지와 내가 좀 친하게 된 계기가 되기도 했다.
나오는 길에 할아버지의 사진 한 장을 찍었다. 그 분의 이름은 묻지 못했다.
인사를 하고 나와 지난 번에 산 바지의 길이가 길어 소똥이 스칠까 싶어
바지 수선을 맡겼던 할아버지네로 간다.
수선비를 20루피 달라고 하는 다른 곳과는 달리 5루피라고 말씀하시고,
5루피를 미안해하며 드렸던 그 할아버지,
종이에 담배를 말아 거꾸로 피우는 묘기를 보여주시면서도
한번도 웃지 않으셨던 그 할아버지네 가게로 가서 할아버지의 사진을 찍었다.
할아버지께 사진을 보여드렸더니 웃으신다.
그 분이 만드신 옷을 두 개나 입고 다닌다. 참 진실한 옷을 입은 느낌이라 좋다.
가트로 넘어왔다.
20분 정도 걷는 가트길, 항상 그 모든 것이 많던 그 길, 가장 무서웠던 가트길을 걸었다.
오늘 이 무슨 날인지 가트에 청소가 대단하다.
갠지스의 물을 끌어올려 가트계단을 씻어내리고
평소 사람들이 침대처럼 쓰던 평상도 털어낸다.
그 뿐 아니라 어른이고 아이고 웬일로 수돗가에 모여 머리도 감고 설거지도 한다.
왜 씻어내려오는 물이 더 더럽게 느껴지는 건지.
똥이 바닥에 있을 때는 피하면 되는데, 흘러내려오는 물사이를 샌달을 신고 걷는 일이 장난이 아니다.
까치걸음으로 몇 분은 피했지만, 결국은 그 물에 발을 젖고 말았다.
꾹적거리는 찝찝함을 이끌고 숙소로 걷는다.
인상이 좋았을리 없다.
어제 소똥을 밝고 넘어진 한국여자아이이야기를 들으며 웃었더랬는데,
숙소에서 신발과 발을 씻고 지금도 발을 말리는 중이다.
해그늘이 진 뒤
난 레스토랑이 있는 옥상으로 올라와 인터넷 검생 중 바쁘게 배긴 시 두 편을 노트에 옮겨적고
이것 저것 낙서를 하고 갠지스강을 구경하고 달을 구경하고
사람들을 구경하는 것으로 바라나시의 마지막 밤을 정리한다.
지금은 모든 사람들이 월드컵 경기를 보느라 정신이 없군!
역시 다국적이다. 이 나라 저 나라 응원이 따로다.
그 틈에 바라나시는 어두워졌고 난 아직 방으로 돌아가지 않아도 된다.
좀 더 바라나시에 머물 수 있다.
머물렀기에 떠난다는 것이 실감난다.
구름이 걷힌 것일까? 아님 달이 밝아서 구름이 보이지 않은 것일까?
내일 바라나시를 떠난다.
저녁 6시 30분 기차로 델리로 간다.
다시 올 수도 오지 않을 수도 있는 곳이다.
아마 나의 의지로 말한다면 그리 오고 싶지 않은 곳이다.
처음부터 그랬다.
오자말자 떠나고 싶었던 곳인데 일주일을 머물렀다.
의지하는 않는 일이 만들어지는 내가 심적으로 항복하기로 작정한 곳이다.
그저 오라면 오고 가라면 가야 할 곳의 목록에 바라나시를 넣었다.
이 곳 가트에서 화장하는 모습과 뿌자르 지내는 모습을 본다면 항복할 수 밖에 없다.
일주일 만에 처음으로 달을 보았다.
달이 뜨던 초저녁과는 달리 구름은 보이지 않고 온 하늘이 달빛으로 가득하다.
뿌자는 끝나 가트의 불빛들이 아주 조금 남아있고, 마을의 불빛도 아주 조금 남아
바라나시가 빠르게 어두워지고 있는 시간인데 왠지 모르게 혼자 짠하다.
옆에서 장장 세시간을 떠들던 일본친구들은 이제 자리를 떠나고
일본 친구들을 피해 실내로 들어간 이스라엘친구들은 인도티비를 보느라 정신이 없다 .
아마 그들은 내일 떠날 생각은 아닌가보다.
이곳에서 본 것 느낀 것?
유적지를 찾아다니지도, 물건을 사지도, 릭샤를 타고 떠돌지도 않았다.
그저 매일 뿌자를 보았고, 가트를 돌아다녔고, 소똥을 피해 시장을 다녔을 뿐이다.
오늘도 시장을 지나는 일은 숨을 몰아쉬고 시작해야 하는 일이다.
피해야 할 것들이 많은 곳,
물건을 사라고 끄는 손들,
좁은 시장 골목에 가로 누운 소들, 개들,
그들의 분비물들,
‘헬로우’ 하는 소리도,
‘안녕하세요’하는 소리도,
‘어디가요’ 하는 소리도,
‘곤니찌와’하는 소리도
그저 멀리서.....
나와는 상관없는 이야기들처럼 ,
난 대답도 없이 길을 걷기만 했다.
바라나시에 와서 인터넷을 사용하던 할아버지네에 들러 인도카페에 올려두었던 질문에 답을 보고,
간만에 메일을 체크해서 답장할 곳에 답장을 하고,
블로그에 이 곳 삐끼들에 대한 내 생각을 주절거렸다.
-지금 너에게
혼자? 거기서도 그랬는데, 분명히 그랬는데, 왜 더 혼자인 듯이 느껴지지.
여긴 눈을 맞추면 웃어주기도 하는데 말이지.
하지만, 가야하는거지.
나왔잖아. 창피! 창피! 창피! 창피한 거 싫어하는데...... 창피하지 말아야지.
혹 나만큼 창피한 거 싫어하니? 그래서 계속하니?
함께라면 창피한 일이 줄어들까?
혼자? 거기서도 그랬는데, 분명히 그랬는데, 왜 더 혼자인 듯이 느껴지지.
여긴 눈을 맞추면 웃어주기도 하는데 말이지.
하지만, 가야하는거지.
나왔잖아. 창피! 창피! 창피! 창피한 거 싫어하는데...... 창피하지 말아야지.
혹 나만큼 창피한 거 싫어하니? 그래서 계속하니?
함께라면 창피한 일이 줄어들까?
주인할아버지는 어느새 나의 건망증을 파악하고
내가 자리를 옮길때마다 흘린 내 물건들을 챙겨주셨다.
나의 어깨을 치면서 ‘유어스’ ‘유어스’ ......참 민망했지만,
그것이 할아버지와 내가 좀 친하게 된 계기가 되기도 했다.
나오는 길에 할아버지의 사진 한 장을 찍었다. 그 분의 이름은 묻지 못했다.
인사를 하고 나와 지난 번에 산 바지의 길이가 길어 소똥이 스칠까 싶어
바지 수선을 맡겼던 할아버지네로 간다.
수선비를 20루피 달라고 하는 다른 곳과는 달리 5루피라고 말씀하시고,
5루피를 미안해하며 드렸던 그 할아버지,
종이에 담배를 말아 거꾸로 피우는 묘기를 보여주시면서도
한번도 웃지 않으셨던 그 할아버지네 가게로 가서 할아버지의 사진을 찍었다.
할아버지께 사진을 보여드렸더니 웃으신다.
그 분이 만드신 옷을 두 개나 입고 다닌다. 참 진실한 옷을 입은 느낌이라 좋다.
가트로 넘어왔다.
20분 정도 걷는 가트길, 항상 그 모든 것이 많던 그 길, 가장 무서웠던 가트길을 걸었다.
오늘 이 무슨 날인지 가트에 청소가 대단하다.
갠지스의 물을 끌어올려 가트계단을 씻어내리고
평소 사람들이 침대처럼 쓰던 평상도 털어낸다.
그 뿐 아니라 어른이고 아이고 웬일로 수돗가에 모여 머리도 감고 설거지도 한다.
왜 씻어내려오는 물이 더 더럽게 느껴지는 건지.
똥이 바닥에 있을 때는 피하면 되는데, 흘러내려오는 물사이를 샌달을 신고 걷는 일이 장난이 아니다.
까치걸음으로 몇 분은 피했지만, 결국은 그 물에 발을 젖고 말았다.
꾹적거리는 찝찝함을 이끌고 숙소로 걷는다.
인상이 좋았을리 없다.
어제 소똥을 밝고 넘어진 한국여자아이이야기를 들으며 웃었더랬는데,
숙소에서 신발과 발을 씻고 지금도 발을 말리는 중이다.
해그늘이 진 뒤
난 레스토랑이 있는 옥상으로 올라와 인터넷 검생 중 바쁘게 배긴 시 두 편을 노트에 옮겨적고
이것 저것 낙서를 하고 갠지스강을 구경하고 달을 구경하고
사람들을 구경하는 것으로 바라나시의 마지막 밤을 정리한다.
지금은 모든 사람들이 월드컵 경기를 보느라 정신이 없군!
역시 다국적이다. 이 나라 저 나라 응원이 따로다.
그 틈에 바라나시는 어두워졌고 난 아직 방으로 돌아가지 않아도 된다.
좀 더 바라나시에 머물 수 있다.
머물렀기에 떠난다는 것이 실감난다.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