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도
돌아온 백구, 판소리... 뭐 그런 것들이 연상이 되는 그 길을 가기로 했다.
나의 출발은 미약했으나 그 가는 길은 창대히도 괴롭혔다.
밤새 버스를 타고 내려가는 길
내내 멀미를 했다.
뱃속에 자리한 위주머니가 혼자서 마루운동을 하는 듯 하다.
왜 멀미를 하지?
아! 비가 오는군. 난 비가 오면 멀미를 한다. 혹 나만 그런가요?
저기압 기류가 흐르면 난 멀미를 한다.
세상의 기압도 낮고 내 맘의 기압도 낮았으니
멀미는 정말 괴로워.
일년에 한 번 정기적으로 하는 멀미한다. 진도가는 길에 면피를 했다.
그것에 의의를 두며 괴로웠지만 편안할 올 1년 여행을 생각하고 견뎠지.
가로등 불빛이 곱다.
빨간 불빛 뒤로 하늘이 서서히 파래온다.
서쪽 바다의 새벽하늘도 파랗다.
가로등을 본 것이 오랜만이다.
생각해보면 서울의 거리에는 더욱 촘촘히 가로등이 박혀있다.
너무 많아서 보이지 않던 가로등이 딱 하나 서 있던 선착장은 밝고도 이뻤다.
맘도 삶도
딱 하나만 두기로 한다.
가로등만이 아닐 것이다. 맘도 삶도 곳곳에 촘촘히 박하둔다면
내 맘인지 내 삶인지도 모르고 그냥 지나칠것이니까.
딱 하나만 두기로 한다.
맘도 삶도 딱 하나만 세워두고 맘과 삶을 바라보아야겠다.
내맘이 아닌듯 내 삶이 아닌 듯 아름답다 곱다 멋지다 그러면서 바라보도록
마치 남의 맘인 것처럼, 남의 삶인 것처럼 선명히 볼 수 있도록...
아마 하늘도 파랄 것이다.
진도의 서쪽에 위치한 접도는 남망산이라는 산이 곧 섬이다.
맑은 날은 제주도가 보인단다.
비가 내리는 날이었으므로 당연 흐리고, 흐린 날은 섬을 수묵화feel로 만들었다.
최고 높은 봉우리가 164미터라니,,,
'지리산과 설악산 한라산을 등반한 나로선... 가소롭군!'
'하지만, 안돼! '
산은 절대 그런 맘이면 안된다. 산을 올라보면 왜 안되는지 알게 된다.
산에게 저절로 미안해지거든...
낮은 봉우리들을 오르락 내리락
봉우리마다 보이는 바다가 다르다. 동 서 남 북 ..... 다른 풍경의 바다를 보여준다.
동네 뒷산 오솔길을 오르듯 천천히 걷는다.
오솔길 옆 풀숲 사이에 피었을 봄꽃들을 찾는다.
하얀 제비꽃, 보라 제비꽃이 비온 뒤 선명히 피었고,
동백이 필 때쯤이면 항상 같이 피는 현호색은
여전히 파랑새의 모양을 하고 부리를 하늘로 올리고 피어 있었다.
섬이라 자생난들은 겨울 낙엽들 틈으로 촉을 올리고 있었다.
(사방에 난 채취금지 라는 팻말이 붙어있다.)
봄맞이 산을 찾은 것이 처음이며, 들꽃을 만난 것이 올해 처음이다.
다시 돌아가서....
미안!
"산이 낮다 그랬니? 산이 가소롭다고 했니? 그런 너 꽃을 품은 적이 있니?
너 이슬방울 묻은 보라제비꽃 품어본 적 있니?
너 손만 닿아도 닳아서 사라져버릴 것 같은 진달래를 품어본 적 있니?"
그렇게 나에게 묻는다면..... 나 대답!
"아니."
'꽃을 품어보지 못하니 사람도 품지 못하지.'
164미터 남망산이 이른 봄에 색색의 꽃들을 온전히 잘 품고 촉촉하게 수유중이었다.
바로 꼬랑지 내리고, 반성모드돌입이다.
산을 넘어 바다를 만나러 가는 것이다. 그것이 섬산행이다.
바다엔 역시 물이 많다.
심드렁 그렇게 말하련다.
이 곳에 서는 순간, 난 동해가 무지 보고 싶었었다.
"머리까지 올라가는 파도를 보고 싶다.
청블루빛 바다에 밀려오는 파도소리에 내 비명을 묻고 싶다."
바다를 보자 바다가 그리워졌다.
나를 미치게 하는 파란 바다가 보고 싶어서 파도 소리가 듣고 싶어서
바다를 향해 소리 치고 싶었다.
"바다가 보고 싶어."
많은 사람들이 있다.
나에게 그 사람들은 남해바다일 것이다.
밀물과 썰물처럼 무리를 지어 다니는 사람들, 그리고 여전히 사람들
내게는 바다라고 할 수 없는 사람들
내게는 파도라고 할 수 없는 만남들
사람을 향해서 소리를 친다.
"사람이 보고 싶어."
사람들이 돌아다본다. 수많은 얼굴, 그 안의 눈들이 나를 쳐다본다.
나를 보고 있는 눈들이 분명한데 나와 눈이 마주쳤다는 생각을 할 수 없다.
저 바다처럼 바다를 마주하고 있지만, 난 바다를 만난 것 같지 않다.
"바다를 만지고 싶어."
"사람을 만지고 싶어."
딴 곳을 그리다 바로 감정선이 반전되었으니... 굴이다.
같이 가던 후배가 굴을 발견한 것이다.
바위에 작지만 그래도 자연산인 굴들이 다닥다닥 붙어있다.
후배는 작은 돌을 구해다가 톡톡거리며 굴 껍질을 벌렸다.
굴이 들어있었다.
생명처럼 생기지 않았다.
손톱을 세워 몇 개의 굴을 긁어(?) 먹었다.
굴이 고소하구나.. 아마 20분간은 입안에서 굴의 고소함이 남았던 듯 싶다.
바다바위에 붙어앉아 후배를 불렀다.
"여기도 있어. 여기도 있어."
여기도 있었다.
뭐 그리 잘 우는 성격은 아니지만, 아니 잘 울기도 하지만...
진달래 나뭇가지에 걸린 저 물방울을 보면서
난 이제부터라도 눈물이 나더라도 난 눈물을 매달고 있겠다고 생각했다.
눈물을 떨어뜨리지 않겠다고 생각했다.
눈물이 달린 나무에는 빛이 달린 것과 같았다.
눈물을 매달고 있는 나무들에게는 빛 하나 하나가 매달려 나무를 밝게 비춰 빛나게 하고 있었다.
울고 있는 나무가 빛이 달고 있다.
나 이제 울 일이 있으면 눈물을 흘릴 일이 있으면
내 눈에 눈물을 매달고 있어야지.
내 눈물 한 방울 한 방울에 빛을 담아 눈물이 아니라 빛구슬로 만들어야지
그것으로 눈물 흘린 나를 밝게 만들어야지.
울고 있는 내가 이쁠 것 같다.
진달래 나무에 매달린 물방울을 보며 난 울더라도 눈물을 떨어뜨리지는 말아야지 그랬었다.
분명 한해살이풀이 아니다.
지난 해를 살았던 듯 싶다.
지난 해를 살았다면 과거가 있다는 것이다.
'과거가 있는 풀잎이 저리 파래도 되는 것이야.'
과거가 있는 것들은
'얼굴에 기미가 덕지 덕지 붙어 있어야 하고, 주름이 자글거려야 하고,
줄기 어딘가엔 상처도 있어야 하는 것 아니야?'
그런데 저 초록잎들은 푸르기만 하다.
단절이다.
봄은 과거를 잊게 한다.
분명 과거 속에 내가 살았더라도 현재, 그 찰라에 과거와는 단절한다.
이 순간 흘러간 시간, 과거
발뒤꿈치가 잘릴 듯이, 발을 디딜 때마다 지난 시간을 끊어버린다.
초록풀을 보면서 난 저 풀이 시간을 잘라내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기에 저리도 시침 떼고 푸를 수 있을 것이다.
나도 나도 걸을 때마다 내 걸은 길을 잘라내야지.
저리 선명한 초록이 된다면야....무엇을 못하리오
뒤로 걸으며 낫질을 하며 내 온 길을 잘라냈으면 싶었다.
시치미 뚝 떼고 초록 선명한 저 잎들처럼... 나도 시치미를 떼고 싶다.
양식장으로 바닷물을 끌어들이는 송수관이다.
드러내 놓고 끌어들이고 있는 송수관의 붉은 빛이다.
아예
끌어들이고 있었다.
끌어들인 물로 광어를 키우고 있었다.
혹 내 답답함이 ......
혹 나의 무른 살이.....
바다라고 생각했던 이 곳이 바다가 아니고 혹, 송수관으로 바닷물을 끌어들이고
펌프로 파도를 만들어놓은 양식장이 아닐까?
난 지금까지 양식장에서 살았던 것은 아닐까?
짭짤한 소금기와 간간히 보이는 해초때문에 바다라고 생각했다.
물거품에 몸이 쓸리기도 하여 바다라고 생각했다.
상처가 잦은 내 몸이 그저 내가 병약해서 살이 무른 것이라고 생각했다.
이 곳은 인공수정되고 부화되고 키워진... 사람이긴 하지만 딱 사람이라고 하진 못하는
양식인간배양소?
송수관을 찾아라!
거꾸로 내려갈 것이다!
무른 살이 터지더라도 거슬러보고 싶다. 이 순간!
출발하기 전 버스를 기다리며 패스트 푸드점에 자리하고 앉았었다.
진도를 가기 위해, 어느 곳을 보기 위해 두 발이 대기하고 있다.
두 발은 몰랐을 것이다.
묵묵히 기다리고 있었을 것이다.
발은 궁금해도 나에게 묻지 않는다.
난 두 발에게 '그대로... 그대로 있거라 '하고 명령을 내렸었다.
그리고 내 발에 눈이 달렸으면 얼마나 좋을까 생각했었다.
발이 보는 세상은 어찌 다를 지 ....
낮은 산에 낮은 맘으로 간 것은 아니었지만,
만 하루가 지난 오늘밤, 생각해보니 ... 맘의 기압이 좀 낮아진 듯 싶다.
언제나 내 발처럼 낮은 자리에 눈이 머물기를, 손이 머물기를,
몇 년동안 다닌 산 중에 가장 낮은 산을 올라 간 날...
낮게 날자 싶었다.
놀랍지는 않지만, 낮아서 좋았다....
납작 납작 엎드린 하루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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