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미인간의 시 - 새로운 식욕
강정
1
오래도록 삼키고 있던 과거를 뱉었다
그러고 보니 毒蟲이었다
뱉어내지 못한 남은 살들이 울고 있었다
눈앞의 것들이 백색의 그림자로 지워지면서
그때야 비로소,
배만 부르면 슬퍼지던 까닭을 알 수 있었다
2
몸이 하얗게 타들어갔어요 하늘의 거대한 바퀴가 흰빛의
시선을 타고 심장 한가운데 와 박혔어요 핏줄들이 항문을 열
고 천지로 흘렀구요 우우랄라! 내 몸에서 검은빛이 번졌어요
만져보면 살의 찌끼, 입이 삼켰던 짐승의 잔해, 촉수마다 엉
겨 있던 시간의 가시였지요 온통 희었어요 검은 문자 사이의
허연 침묵처럼 투명한 실선들이 백색의 어둠 위에 금을 그었
어요 찢긴 침묵, 아으! 깨알 같은 낱말들이 불붙었어요 나자
마자 침묵이 되는 소리들, 피가 돌면서 죽음을 마시는 심장에
서 은빛 눈물의 四海가 터져나왔어요 우우랄라! 천지가 새로
씌어졌구요 내 빈 몸 헐떡이는 腹筋의 바퀴를 돌아 내가 먹은
시간들이 실을 잣고 있었어요 물과 바람의 원심동력으로 투
명한 부재의 빛깔들을 허공에 퍼뜨리고 있었어요
3
과거를 비워,
부실해진 육체마저 텅 비우세요
꾹 닫힌 시간의 자루들을 풀어놓으세요
그리하여 적멸의 허기로 가설된 내 빈 몸의 위장 속을 통
과하세요
시간의 녹슨 뼈마디들이
눈물보다 더 비린 액체로 갈아지고 있어요
천지로 뻗치는
햇볕 아래 투명한 거처 위에서
과거와의 단절이 결코 없음을....
내 먹은 것이 토해나옴을 부인할 수 없음을...
이 몸이 산화되어 낱낱이 흩날리는 날
혹 이 몸이 흙속에 묻혀 샅샅이 부서지는 날
혹 불구덩이 속에서 진액이라는 진액이 연기가 되어 날리는 날
그 날이 되더라도
결국
난 어딘가에 내 먹은 것을 뿌릴 수 밖에 없음을...
나무 한 그루의 초록이 되고
수많은 지네의 다리 중의 하나가 되고
햇살에 날리는 먼지 하나가 되고
내 지금 먹은 것이 단절될 수 없음을...
이미 먹은 것들이 나의 말이 되고, 움직임이 되고, 생각이 되듯이
과거와는 결코 단절될 수 없음을...
이제부터라도 난 거식증에 걸리고 싶다.
내 앞에 놓은 먹거리를 알아 볼 수 없을 것이라 친다면 말이다.
먹거리가 아닌 것들로 한 상 잘 차려진 느낌이다.
'읽히는대로 詩' 카테고리의 다른 글
[조현석] 가면 뒤에서 (0) | 2006.04.04 |
---|---|
[장석남] 얼룩에 대하여 (0) | 2006.03.31 |
[정병근]유리의 기술 (0) | 2006.03.30 |
[이성복] 그날 (0) | 2006.03.28 |
[황지우] 너를 기다리는 동안 (0) | 2006.03.27 |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