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읽히는대로 詩

[이성복] 그날

by 발비(發飛) 2006. 3. 28.

그날

 

이성복

 

그날 아버지는 일곱 시 기차를 타고 금촌으로 떠났고
여동생은 아홉 시에 학교로 갔다 그날 어머니의 낡은
다리는 퉁퉁 부어올랐고 나는 신문사로 가서 하루 종일
노닥거렸다 前方은 무사했고 세상은 완벽했다 없는 것이
없었다 그날 驛前에는 대낮부터 창녀들이 서성거렸고
몇 년 후에 창녀가 될 애들은 집일을 도우거나 어린
동생을 돌보았다. 그날 아버지는 未收金 회수 관계로
사장과 다투었고 여동생은 愛人과 함께 음악회에 갔다
그날 퇴근길에 나는 부츠 신은 멋진 여자를 보았고
사람이 사람을 사랑하면 죽일 수도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그날 태연한 나무들 위로 날아오르는 것은 다 새가
아니었다 나는 보았다 잔디밭 잡초 뽑는 여인들이 자기
삶까지 솎아내는 것을, 집 허무는 사내들이 자기 하늘까지
무너뜨리는 것을 나는 보았다 새占 치는 노인과 便桶의
다정함을 그날 몇 건의 교통사고로 몇 사람이
죽었고 그날 市內 술집과 여관은 여전히 붐볐지만
아무도 그날의 신음소리를 듣지 못했다
모두 병들었는데 아무도 아프지 않았다

 

그 날, 동생은 학교 앞 좌판에서 노란 병아리를 사왔었고,

병아리는 동생에게 안겨 우리집 한 터 건너 공사장 옥상을 올라갔고

맨꼭대기 계단에 내려진 병아리는 올라갈 수도 내려올 수도 없는

계단의 턱에서 동생이 머리를 톡톡 칠때마다 한 칸씩 굴렀다.

그날 병아리는 노란 공이 되었다. 옥상으로 오르락 내리락 몇 번하고서야 

병아리는 우리집 마당의 빈 개집을 병아리 우리 삼았다.

동그란 병아리는 개집 문을 들락거리고, 동생은 병아리가 도망갈까

개집 문에 벽돌을 쌓아두고 친구에게 갔다.

멀리서 동생의 노는 소리가 들렸고, 난 한번도 만져보지 못한 노란 병아리가

궁금해서 벽돌사이로 병아리를 보았다. 그날 병아리는 개집 안에서 빙빙 돌았다.

빙빙 돌고 있는 병아리가 벽돌아래로 왔을때 병아리가 보이지 않았다.

난 병아리를 보기 위해 벽돌너머로 머리를 넣었고 내 머리때문에 벽돌은

쓰러졌다. 그날 병아리는 개집 문에 쌓인 벽돌 바로 아래서 빙빙 돌다가

벽돌에 깔려 죽었다. 그날 난 머리를 개집에서 뺄 수 없어서 병아리와 함께

개집에 있었고 병아리의 죽음을 함께 했다. 동생의 노는 소리가

멀리서 들리던 그날 병아리의 혀를 보았고 아카시아 가시처럼 뾰족한 혀에도

눈이 있다는 것을 그날 난 알았다. 꼼짝없이 그 자리에서 앉아있었던

그날의 남은 오후에 기억은 영영 찾을 수 없었다.

그날이후 난 뾰족한 입을 가진 새들의 눈을 볼 수 없다.

 

'그날'이라는 이성복시인의 시를 읽으며

나에게 그날이라고 말을 하면..... 그날이다.

나의 첫번째 그날일이다.

 

닭고기를 잘 먹지 못한다. 그건 먹기는 먹는다는 말이지.

일단 형체가 없는 닭갈비는 먹을 수 있지만, 형체가 상상이 가능한 특정부위를 보면...

좀 괴로워진다.

며칠전 아버지의 보신차 엄마가 삼계탕을 하셨다.

나에게 닭다리를 주시는거다. 먹어라 그러시면서...

앗!

여기가 어디란 말인가?

닭의 무릎이다.

닭이 비록 롱다리는 아니지만 분명 무릎자리였다.

아 그 순간, 난 절망했었다.

계단을 오르려고 수없이 접었다 폈다 했을 다리,,,

"싫어, 이거 닭 무릎이잖어...."

엄마랑 아부지랑 너무 가잖아하지면서 자지러지신다.

다 큰 딸이 아직도 그렇게 딹에 대해서 공포를 가지고 있는지 새삼 느끼시면서

(잠시 딴 소리, 그러고보니 다 커서 부모님과 내가 서로의 식성을 눈치챌만큼 함께 한 적이 없다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너 닭에게 무슨 상처 받은 적 있었냐?"

어쩌고 저쩌고..

그간 닭과 나에게 얽힌 수 많은 사연과 에피소드를 주절거려 드렸다.

제법 많은 일이 있었지.

 

-잠시 또 딴 소리-

 

1. 고 3때 닭우는 소리가 들린 아침, 그것이 우리집 마당에 묶어놓은 오골계라는 것을 안 순간,

난 걸음을 걸을 수 없어.. 목욕탕까지 오빠에게 업혀갔었고, 마당을 지나 스쿨버스를 타러 가는 길 내내 오빠가 업어주었었다. 난  나를 재미있어하며 낄낄거리던 오빠에게 가장 긴 시간 업혔었지.

 

2. 동생이랑 자취할때 주인집에서 토종닭이라고 시골서 갖고 온 닭이 옥상에 있는 것도 모르고

빨래널러 올라갔다가 온동네 떠나가도록 소리지르며 내려오지도 올라가지도 못해서 주인아줌마의 손을 잡고 겨우 내려온 뒤.. 다음날로 주인아줌마는 그 닭을 어디론가 보냈었다.

 

3. 방학때 외가를 가면 집안의 화장실은 외삼촌 전용이었다, 마당에 화장실 그러니까 변소는 나머지 사람이 사용하던 것인데... 그 변소 바로 옆에 닭장이 있었다. 난 몰래 몰래 외삼촌 전용 수세식 화장실을 가기 위해 외숙모의 눈치를 무지하게 봤던 일, 난 아주 큰 죄를 짓는 마음으로 외삼촌의 화장실을 사용했더랬다... 아마 몇 십년동안 외가의 변소를 이용한 적은 없었다.. 차라리 마당을 이용했다..ㅋㅋ

 

4. 누군가 삼계탕이 먹고 싶다고 했다. 그래 한 번 해보자, 장애를 극복하자, 닭을 사 가지고 왔다.

싱크대에 닭은 봉지채 떨어뜨리고 참았다. 진짜 참았다. 참고 참았다. 난 그 닭을 씻어야만 했었다. 꼭 씻고 싶었다.... 그러나 1.2분 후 난 숨을 쉬지 못할 정도로 비명을 질렀고, 옆집아줌마가 그 소리를 듣고 와서 참 기막혀했었다. 왜냐면, 나 그저 소리를 지르고 있었고, 닭은 그대로 싱크대에 있었을 따름이었으니까....그 닭은 옆집에서 가지고 갔다.

 

그리고 기타 등등...

닭은 우리삶과 얼마나 친밀한 것이더니...

 

-잠시 딴 소리 끝-

 

 

아버지의 표정이 좀 그랬다

복잡다난하다고 해야하나...

그 표정은 내가 닭에게 짓던 표정인데.

암튼 나에게 닭은 최고의 공포대상이다.

그날,

그날이 내게 없었다면 새들은 아름다웠을까?

그날, 그 때 그 병아리와 내가 만나지 않았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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