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6.03.17
아침 입원준비를 챙겨서 병원으로 가는 길, 쇼핑백이 터져서 혼이 났다.
징징거리며 병실에 들어서는 딸을 웃으며 맞으신다.
"우리딸 너무 고생이 많네. 어쩌냐..."
"그러게요. 다 갚으셔야죠."
진짜 팔이 아프다. 아프다. 아프다.
팔이 아프면 아버지의 머리보다 아플까만 내 팔을 자꾸 주무르고 있다.
올라간 팔이 민망해서 팔을 내려놓으면, 어느새 다시 팔이 팔을 주무르고 있다.
지가 아프면 얼마나 아프다고 아버지 옆에서 팔이 아픈 티를 자꾸 내는지...
어느날 보다 좀 조용한 날이었다.
며칠을 정신없이 보내다 어쨌든 조용한 날이다.
아버진 종일 침대에 누워 계실 수 있었고,
엄마도 옆에서 잠시 쉴 수 있었고,
난 덜 다닐 수 있었다.
아버지는 라디오를 항상 귀에 꽂고 계신다.
조용히 누워계시다가 라디오를 찾으신다.
미리 챙겨오긴 했지만, 어떤 소식을 들으시는 것인지, 내가 들을 수 없어서 괜히 불안하다.
내가 듣던 바흐의 미사곡을 귀에 꽂아 드렸다.
평화가 그리울 때 듣는다. 바흐의 곡에는 배려가 느껴진다.
한 음 한 음 한 악기 한 악기에 대한 배려가 느껴져서 참 평화롭게 만든다.
아버지는 재미없게 이런 걸 들으라고 하느냐면서 귀에 꽂아보셨다.
그리고 입을 ...
그러시더니, 스르륵 주무신다.
주무시다가 깜짝 눈을 뜨시더니. 밖에 미사드리냐고 하신다.
내가 그 곡이 미사곡일 거라고 말씀 드렸다.
내내 들으시면서 잘 주무신다.
내가 평화를 느끼듯이 배려를 느끼듯이 아버지도 그의 음악을 들으며
아버지의 뇌가 평화롭기를 아버지의 뇌가 고루 고루 제 몫을 찾아가기를 잠시 빌었다.
바흐의 곡을 들으며 잠드신 아버지가 고맙다.
한참을 주무시고 일어나시며 귀에서 이어폰을 빼시면서 하시는 말씀
"시끄러워서 혼났다. 참 나, 넌 꼭 이런 것만 듣냐?"
난 회심의 미소를 지으며 이 사진을 보여드렸다.
1:0
아버진 패배를 인정하셨다. ㅋ
지금 아버지는 삐짐 중
아버지는 내가 약올린다고 이제 나와 눈을 안 마주치시겠다면서 눈을 감으셨다.
그래서 그럼 나도 할 일이 있다고 했다.
이 참에 아버지의 얼짱 각도를 찾아드리겠다는 야심찬 프로젝트에 도전한다.
그런데 찍고 보니 각이 너무 심하다.
아버지의 뾰족한 턱선을 위한 얼짱 각은 너무 가팔라서 아버지 머리 위에서 잡아야 한다.
별로다.
아버지의 얼짱 각도 사진은 이 한 장으로....
엄마는 아버지의 뾰족한 턱이 얼마만이냐고 신기해 하신다.
엄마를 병원에 남겨두고 집으로 온 지금!
친구가 그런다.
엄마를 집에다 모시고 내가 병실을 지켜야 하는 것이 아니냐고...
턱도 없는 일이다.
우리 아버지 우리 엄마는 금슬이 좋다고 해야하나. 좀 이상한 관계다.
너무 너무 신나게 서로의 애정을 검증받으려하신다.
우리 부모님을 아시는 친척들이나 친지들은 누구도 나에게 교대라는 말을 하지 않는다
무슨 일이 있어도 엄마가 아버지 옆에서 떨어지지 않을 것을 알고 있으므로...
엄마는 아버지의 손을 발을 조렇게 이쁘게 옆에서 만져주고 있었다
꼼짝도 않고 옆에 붙어있다.
엄마의 발이 없어지고 엄마의 발이 내 발이 되고 내 발도 내 발이고
난 발을 네개나 달고 종일 걸어다닌 것이다.
두 분!
고맙다.
두 분!
함께 입고 싶어하시는 모습이 고맙다.
우리가 나눈 대화가 무엇이었을까?
분명 아까 무슨 인터뷰를 하는 것처럼 말하면서 아버지를 계속 찍었었는데...
무슨 말을 했었는지 는 잊어버리고 아버지의 웃는 모습만 남았다.
저녁 의사의 회진 때 아버진 좀 신경쓰이는 말씀을 들었다.
의사들 간의 대화에서 약물복용에 대한 엇갈린 의견들을 나누고 있었는데.
가장 높은 의사가 재발의 경우에 쓸 약에 대한 이야기를 하였다.
재발!
그것이 딱 걸린 것이다.
이렇게 웃으면서 이야기를 나눈 뒤,
아버지가 갑자기 나를 부르진다.
"아까 그 재발이라고 하는 건데, 그게 뭐지?"
"......, 상처가 났을 때 치료를 잘 못하면 재발하는 것, 뭐 그런 거겠죠."
"아까 무슨 약 무슨 약 그러던데 그 약은 뭐지?"
내가 웃으면서 왈
"엄마, 아버지 대학입시 다시 쳐서 의대도 가야하고 약대도 가셔야 겠다.
그거 다 공부하셔야 이 어려운 말들을 해독할텐데, 아버지 우리 대학보내드리자."
엄마 왈
"야, 그럼 신경과만 다니면 되냐? 이왕이면 눈치료도 받으실 수 있는 안과도 다니게 해드리자."
아버지 왈
"아무튼 두 모녀가 나를 괴롭히는구만."
엄마 왈
"그러니깐 우린 그냥 공부한 사람들이 하자는 대로 그렇게 잘 따라하자는 이야기지요."
"그래. 알았다."
대화는 이렇게 한 단락 끝이 났지만, 난 맘이 좀 안 좋았다
물론 아버지의 맘도 엄마의 맘도 안 좋았을 것이다.
우리 가족들의 장점이자 단점은 바로 그것이다.
서로에게 너무 상처를 주기 싫어한다. 그래서 아닌 척 더 장난을 친다.
괴로우면 괴로울 수록 우리들의 웃음 소리는 커진다.
한마디로 오버한다.
집으로 돌아오는 전철안에서 참 많이 지친다.
너무나 말을 많이 한 오늘이고, 너무 많이 웃은 오늘이다.
그 웃음을 언제까지 할 수 있을까?
내가 지치지 않기를.... 아버지 엄마가 지치지 않기를...
아직도 우리들이 웃고 있을 때 한 봉우리의 산을 넘었기를 바랄 뿐이다.
평소엔 공주병 왕비병이라고 내가 무지 놀리지만,
집안에 무슨 일이 생기면, 완전 무술이로 둔갑하는 우리들의 엄마!
이번에도 난 엄마가 잘 이겨내리라 믿는다.
아버지 옆에서 한 번도 씩씩하지 않은 적이 없는, 자신에 찬 목소리로 잘 된다고 확신하는 엄마
난, 공주의 변신을 연일 보고 있다.
오늘은 조용해서 문득 문득 생각이 많았다.
생각하지 않아야 할 것 같다.
내일도 떠들면서 무슨 이벤트를 마련해야겠다.
오늘은 사진기로 놀았는데, 내일은 뭘로 놀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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