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6.03.19
어제보다 더 나은 오늘이다.
매일 나아지는 날들이다.
이것도 발전이라고 말을 할 수 있는 것이라면 발전이라고 하지.
아버지는 발전을 하고 계신다.
일요일이다보니, 문병오신 분들이 많으셔서 더욱 많이 앉아계시게 되었지.
문병오시는 분들!
아버지 친구분, 친척들... 뭐 그런 사람들이다.
덕분에 난 병원에서 참 오랜만에 많은 분들을 만났다.
한동안 뵐 수 없었던 분들은 "니가 **냐? 면서 이제 못 알아보겠다." 하신다.
'그건 나도 마찬가지이군.'
울 아버지가 쨍쨍하고 짱짱하셨는데,
어느새 간호사들의 입에서 난 듣기 어색한 할아버지라는 소리를 아무 거리낌없이 듣고 있으니 말이다.
오랜만에 만나 알아뵙지 못하게 된 어른들이나 우리 아버지나 나나
모두 언젠가와는 다른 삶을 살고 있는 것은 분명하다.
좀 나아가시긴 하나보다.
절대 일어나시지 못하시더니, 이제 걸어다니고 싶어하신다.
의사선생님은 걸어다니고 싶어하더라도 한동안은 참아야 한다고 하셨다.
아버지의 뇌가 제대로 자리를 잡을 때까지,
부기가 가라앉을 때까지는 가만히 절대안정이라는데...
미국에 있는 동생의 소식이 궁금해서 온 몸이 근질거리고,
자신이 앓고 있는 병이 무엇인지 인터넷검색이라도 하고 싶어 안달을 내고...
그러니
나더러 1층에 있는 컴에 가서 뭘 좀 해오라는 주문이 잦다.
난 일언지하에 거절했다.
아버지가 돌부처같다는 말을 누군가에게 들을만큼 세상에 초연했으면 좋겠다고 말씀드렸다.
그 말을 누군가에게서 듣는다면 아버지가 원하는 것을 해드리겠다고 약속드렸다.
그렇게 말씀드리면서도 그건 불가능한 것임을 안다.
하지만 절대 흥분하면 안되니까...
절대 신경을 쓰면 안되니까....
오늘 야구를 보면서도 소리를 못 질러서 답답해 내가 터지는 줄 알았다.
아버지의 콘트롤러의 자격으로 옆에 있었거든.
다행히도 야구가 턱도 없이 진행되는 바람에 가슴을 조리는 일은 없어 다행이었다.
스포츠와 승부욕이 유난히 강하신 아버지가 그것을 스스로 조정하시려 애쓰는 모습이 보였다.
스스로 그렇게 하시기로 하셨나보다.
그리고 아무래도 당신은 회복이 빠를 것이라고 장담을 하신다.
느낌이 좋단다.
그럼 그렇지. 우린 필로 사는 가족인데 나도 그렇거든.
그렇더라도 절대 안정,
병실의 창으로 매일 보이는 석양이 참 이쁘다.
아버지와 난 매일 같은 시간에 석양을 칭찬한다.
둘이서 "이쁘다 이쁘다" 한 마디씩으로 모잘라 또 "이쁘다 그지? 이쁘죠 그죠?"
아버진 매일 석양을 볼 때마다 찍어보라고 하신다.
난 매일 하루도 빠지지 않고 아버지 병실에서 보이는 석양을 찍는다.
매일 똑같은 해가 똑같은 자리에서 똑같은 모양으로 지고 있다.
아버지의 자리도 항상 석양을 끼고 앉아있는 자리이다.
빨간 석양을 끼고 앉아계신 아버지가 산만큼 크다.
살을 좀 빼시면 낮은 산이 되려나.... 그런 생각을 하면서 아버지의 덩치가 참 크다는 생각도 했다
정성스레 매일 잘 챙겨드시는 약이다.
우리 아버지가 바뀌셨다.
집에 계실 때는 평소 드시는 약을 엄마가 챙겨주시지 않으면 절대 신경을 쓰시지 않던
아버지가 약을 스스로 챙겨드신다.
다른 것은 다 부지런한 아버지가 약만큼은 엄마가 있어야 하는데,
혼자서 시간을 딱딱 맞추신다.
기특하다고 해야하나.
아니면 병원에서 고생하는 엄마에게 미안해서 그러시나
아니면 아무것도 할 일이 없어 심심해서 그러시나
평소같으면 나도 신경 쓸 것도 없이 넘어갈 일들이 하나 하나 눈에 걸려든다.
그런 것이 눈에 걸리는 것도 싫다.
괜히 그저 아직도 무신경한 딸이었음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요즈음 아버지가 읽으시고 계신 책과 엄마가 읽고 계시는 책이다.
두 분은 책을 좋아하시는 편이신데, 돋보기를 끼시면서 거추장스럽다는 말씀을 자주 하셨다.
사실 그럼에도 책을 읽어야 한다는 강박관념이 있는 사람처럼 무엇이라도 읽으려 하시지만...
아버지는 아마 공감하고 싶으신가보다.
박정희 .... 이 책을 읽으시면서, "몇 가지는 맞는 말인데, 그저 그렇다."하시면도.
동생이 오면 "이걸 읽을까?" 뜬금없이 그렇게 말씀하신다.
내가 말하기를."세상에 읽을 책이 얼마나 많은데 이런 책을 읽으려구요."
아버지 말씀하시기를 "뭐 그리 잘 난 책만 읽으려고....."
내가 뭐라고 말씀 드렸는지... 아무튼
마침 이 책을 찍은 파일을 보면서 문득 이런 생각이 든다.
혹 아버진 뭔가 공유하고 싶으신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지기 싫은 것은 동료나 친구나 적대관계에서만이 아니라
가족간에서도 있을 수 있겠다는 생각이다.
자꾸 자라는 자식이,자신은 돋보기를 끼고 빨리 읽어내지 못하는데,
앞으로 뛰어가는 자식을 본다는 것은 기쁨과 함께 상실감이 같이 있을 것이라는 ....
물론 좀 특이한 구조이다.
우리 가족은 샘이 좀 많은 편이라,
어릴 적에 누군가가 책을 한 권 사오면 모두 그 책을 읽고 싶어했다.
그건 독서욕구가 아니라, 그 책을 읽은 뒤에 떠들고 싶어서였다.
그 때 돌아가면서 읽었던 태백산맥이나 아리랑 토지 같은 책들은
그 순서를 기다리던 것만 생각이 날 정도로.. 지고 싶지 않아서 읽었던 책들이다.
그런 아버지가 갑자기 책을 보면서 동생이 같이 읽기를 원했다.
난 안다.
읽는 것이 문제가 아니라,
그 책을 읽고 나서 상반된 시각을 느끼게 될 아버지가 더 문제라는 것을
이제는 언젠가처럼 아버지와 열나게 언쟁을 할 수도 없고
아버지의 생각이 틀렸다고 대들수도 없고,
그때 아버지는 강했으므로 다치는 것은 우리였을 수도 있지만,
이제 토론이나 언쟁에서 아버지가 다칠게 분명하니까.... 그런데 아버진 이제 다치면 안되는데...
"아버지가 맞습니다"라고 말 할 그런 호락한 자식도 없으니까..
이를 어쩌나 싶다.
갑자기 이 책을 보니 그런 사사망념이 든다.
기우일 것이 분명하다.
그런데 아버지가 너무 약해 보이는 것은 사실이다.
약해지는 스스로에게 조급증을 내시는 것이 보여
그걸 자연스럽게 인정시켜드릴 능력이 없음이 아프다.
아버지께서 찍은 나!
난 아버지를 무지하게 닮았다고들 한다.
어릴 적 화장실이 하나 밖에 없었다.
아버지와 나는 화장실 가는 시간도 같았다. 매일 아침마다 아버지와 나는 서로를 괴로워했다.
버릇도 같다.
식성도 같다.
손모양도 같다.
거의 모든 것이 놀라울 정도록 같다.
아버지가 처음 사진기를 샀을 때 난 아버지의 모델이었었다.
아버지는 나를 데리고 여기 세우고 저기 세우고... 그저 사진을 찍으셨다.
물론 뻣뻣한 남자형제들이 뭘 도와주지 않아서 연한 내가 선택되어진 것이겠지만,
그래서 난 카메라를 두려워하지 않는다.
집으로 돌아오는 전철에서 아버지가 몰래 찍어놓은 사진을 보니 내 발이 있는거다.
정말 웃기는 일이다.
나도 발을 찍는 것을 무지 좋아하는데, 울 아버지도 발을 찍으시다니...
내 발을 내가 찍지 않고 누군가가 찍은 처음 사진일 것이다.
참 나!
아버지와 나는 그런 닮은 꼴이다.
발을 즐겨 찍는 부녀이다.
나를 향해 카메라를 이리 저리 눌러대시는 아버지,
내가 중학교때 고등학교때 모델이 되고 아버지 아주 젊었었고....
우리 아버지가 나를 참 오랜만에 찍어주신 기념으로 같이 올려본다.
내일도 몇 장 더 찍어달라고 부탁드려야겠다.
내일부터 오후에 잠깐씩 아르바이트를 가기로 한 곳으로 다녀와야 한다.
엄마는 좀 피곤하면 몸이 붓는 이상한 체질을 가지고 있는 나를 위해
내일은 그냥 일을 한 뒤에 병원에 들렸다가 가라고 말씀하신다.
그런데 아버지가 안된단다.
아침 일찍 일어나서 잠시라도 얼굴을 보고 가라신다.
첨에는 10분만 보고 가라고 하시더니,
내가 집으로 올 때즈음에는 시간계산을 하시더니 1시간 30분정도는 같이 있을 수 있을 것 같단다.
내가 안 올거라고 하니까,,,
아침 내내 전화를 할 거란다.
난 핸펀 밧데리를 꺼놓을 거라고 했다.
그랬더니 상심한 얼굴로 잠시 계시더니, 그럼 택시타고 집으로 쳐들어오시겠단다.
문을 안 열어주겠다고... 어쩌고 저쩌고 말씨름 한 판
아버지가 싫다.
왜 그러지?
무엇보다 내가 힘든 것을 싫어하셨는데, 뭐든지 괜찮다 괜찮다 그러셨는데,
이런 저런 것 따지는 엄마에 비해 항상 숨통처럼 여유로운 모습이셨는데,
나더러 일찍 아니 잠시 그렇게 보시고 싶단다.
우리 아버지가 왜 그러지?
그런 아버지가 싫다.
밉다.
싫다.
정말 보고 싶으니 내일 일찍 와라는 눈빛을 보내시는 아버지.
내가 그렇게 하지 않아도 갈 건데, 그런 눈빛을 보내시는 아버지가 싫다.
"얼음"하고 소리치고 싶다.
시간과 공간과 아버지와 엄마와 나와 모든 것들이 이즈음에서 냉동되었으면 좋겠다.
"얼음!"
봄인가보다.
올해 보는 첫 꽃이다.
산수유꽃이 노랗게 전철역앞에 피어있었다.
이제 봄인가보다.
산수유꽃이 내가 좋아하는 후리지아를 닮았다는 것을 처음 알았다.
노란 꽃이 이쁘군!
오늘이 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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