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見聞錄

신미식 사진전. Not for sale D-4

by 발비(發飛) 2005. 12. 27.

1. 사연 하나..... 공황

 

 

신미식 사진전을 다시 봐야 했다. 오늘이 아니면 시간이 나지 않을 것 같다.

합정역에 내려서 막 뛰었다.

다시 한번 맘을 다잡고 난 그 곳에 갔다와야 했다.

책에서 본 사진과 실제의 그 곳의 중간지점일 것 같은 사진전을 꼭 봐야했다.

꿈을 잃어버리지 않기 위해 난 꼭 봐야했다.

 

문이 또 닫혔다

 

망연자실, 아무 생각이 없다.

흔들어도 열리지 않는 문 앞에 서서 지금 혹 내가 현실이 아닐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지 않고서야 있을 수 없는 일 같았다.

어제도 내가 왔을 때 닫혀있었고,

아까는 전화로도 확인을 했는데, 지금도 닫혀있고,,,

그럼 혹시 내가 현실을 살고 있지 않던지

이 사진전이 현실이 아니던지 둘 중 하나 일 수도 있겠다고 생각이 불현듯 들면서 오싹했다.

그리고 멍! 하게 계단에 앉아 있었다.

'이건 무슨 표지인거지? 나에게 무슨 말을 하고 있는거지?'

 

그러며 고개를 푹 숙였는데 계단 틈 사이로 아래층 여행사가 보였다.

갑자기 생기는 전투의지.

"이게 뭐야! 도대체 뭔데,,,, 왜 이러는거지? 나한테 지금 이게 뭐지? 이틀동안이나 이게 뭐지?"

 

무턱대고 여행사의 문을 두드렸다,

그리고 인터넷을 좀 쓰자고 했다.

친절한 여직원 그러란다.

 

신미식님의 블로그로 들어가서 핸펀 번호를 접수했다. 그리고 문자를 보냈다.

'오늘도 문이 닫혀있다고.... '

( 알지도 못하는 사람한테 오버한 것이지만, 그래도 지금이 현실이라는 것을 실감했어야 했다.

그리고 정말 전시회가 보고 싶었다. 공황상태 바로 그거였다.)

답이 없다.

(그럼 그렇지, 나를 어찌 안다고... )

 

'이건 너무해! 이건 너무해! 난 사진전을 똑똑히 보고 나의 야무진 꿈에 물을 줘야 하는데... '

또 멍하니 계단에 앉았다.

온갖 생각을 다한다.

 

 난 역시 운이 없어. 도대체 이 희한한 일을 내 인생에 어떻게 붙여 해석해야지.

 그 귀엽게 줄서서 걸어가던 아이들도 눈에 들어오지 않는다.

뭐야? 이건 진짜 너무해.....

 

2.사연 둘.... 사람

 

 

 

계단 아래로 한 젊은 남자가 까만 승용차를 타려다가 자꾸 나를 본다.

'그렇지 나도 안다, 내가 이상해 보일거다.'

이 추운날 계단에 앉아있는 여자. 그래도 보려면 봐라. 오만상을 다 찡그리고 계속 앉아있었다.

 

"전시회 보러 오셨어요?"

"네"

"아무도 없어요?"

"네,"

"다들 퇴근한 모양이네요."

"근데 여기 전시 안해요?"

"제가 이 갤러리 관장인데요, 오늘 전시 시간이 지난 것 같은데요."

 

분명 내가 첫날 전화했을 때 9시까지 전시한다고 했었는데....

 

"사실 어제도 왔었는데, 못 봤거든요, 근데 오늘도 잠겼네요."

"그러세요? 들어 오세요. 보시고 가세요."

 

이게 무슨 일이람! 이게 가능한 일인가?

 

"아니예요. 그러지 마세요. 담에 오죠 뭐"

"전시회 보시러 오신 손님이신데, 보셔야죠... "

 

그리고 앞으로 뚜벅뚜벅 가시더니, 전시회장 문을 열어주시는 거다.

'맙소사! 이를 어쩌란 말인가?'

(이 혼란. 인간들은 모두 이기적이고 적대적인 것인데... 왜 무조건 친절한 사람도 있는거지?)

 

전시장 불을 켜고 남미 음악인 듯한 음악도 틀어주신다.

난 너무 황공하고 또 미안해서 어쩔 줄을 몰라했다.

 

불안한데요. 너무 죄송해서 불안한데요."

"그럼 제가 자릴 피해드릴께요, 맘 놓고 보세요."

 

그러시더니, 나가신다.

믿어지는지요?

 나만을 위해 페루와 볼리비아의 사진들이 전시되어있었고, 음악이 틀어져 있었다.

그때 핸드폰 진동이 울린다. 모르는 번호다.

 

"신미식입니다. 전시장에 오셨나요?"

 

이런 말도 안되는 일이 생기다니......

 

"네 근데 지금 관장님께서 문을 열어주셔서 혼자서 구경하고 있습니다. "

 

그리고 몇 마디.....더

 

난 가슴이 뽀개지는 줄 알았다. 이 뻣뻣해짐을 뭐라고 표현해야하나....

그때 내가 서 있던 사진은 회색길 사진, 내가 너무 좋아하는 회색길 사진앞에 있었다.

 

 

단 한 사람도 없이 오직 길만 있는 사진에 눈을 꽂고 있는데

아무도 없는 갤러리에 사람냄새가 진동을 하는 것 같았다.

감동! 감동!

사진만 봐도 감동인데, 갤러리 관장님, 그리고 신미식님 이건 말도 안되는 일이 벌어진 것이다.

 

한사람의 흔적도 보이지 않는 곳을 따라 걷다보면 이렇게 사람을 만난다는 듯.

길이 두팔을 벌리고 있는 듯 가끔은 사람이 내게 두 팔을 벌리기도 하는구나.

나 요즘 왜 이러지?

갤러리 안에는 아무도 없었다. 남들은 나더러 한숨을 잘 쉰다고 하지만,

내게 흐음하고 숨을 쉬는 것은 내 안의 엔진오일을 바꾸어 주는 것과 비슷한 것이다.

그래서 들숨과 날숨을 아주 길게 그리고 크게 내쉬고 들이쉬니까 맘이 가라앉기 시작했다.

 

3. 사연 셋.... 그 안에 있는 나

 

    

 

 

 

     

 

 

             

    

 

사진 안에 내가 있다.

아무도 없어서 잘 됐다. 너무 편하다. 난 사진을 찍었다.

원래 그렇게 하려고 한 것은 아닌데. 유리에 비친 나의 모습이 재미있었다.

조명 때문인지 사진마다 내가 잘도 보였다.

마치 그곳에 있는 것처럼 내가 사진마다 들어앉아있는 것이다.

난 내가 있고 싶은 곳에 맘껏 서 있었다

그리고 유리뒤의 사진과 유리위의 나를 함께 두면서 그 곳에 있는 상상을 했다.

 

붉은 길앞에서 길을 따라 신발을 조금 끌면서 먼지를 일으키며 걸어보기도 하고.

 

높은 데 올라서서 저 아래를 내려다보기도하고

 

돌탑옆에 서서 올라오고 있는 사람의 걸음걸이를 보기도 하고

 

철길 앞에 선 모녀의 사연을 상상해 보기도 하고

 

아! 저 차를 타고 먼지 신나게 일으키며, 나 먼지 뽀얗게 뒤집어 쓰고 달리는 상상을 해보고..

 

꼭 저 차앞에 기대 앉아 사진을 찍으리라 ... 그렇게 생각하며.

 

갤러리 안을 아주 천천히 돌았다.

물론 관장님이 신경쓰였지만, 내게 자주 올 수 없는 감동의 시간이었으므로

난 그 분을 의식적으로 생각하지 않으려 했다.

 

4.사연 넷.... 귀퉁이

 

사진의 구석구석을 보는 것, 그것의 즐거움을 이번 전시회에서 맛보았다.

책이나 모니터를 통해서 본 사진은 구석까지 다 보이지 않았던 듯 싶다.

그 사진이 주는 이미지나 감상적인 면을 보았던 것 같은데,.

 

오늘 본 사진전에서는 사진 귀퉁이가 너무 선명히 잘 보였다.

말하자면, 아웃사이더들이, 배경들이, 엑스트라들이 선명히 눈에 들어왔다.

어느 곳 하나 빛이 비춰지지 않는 곳이 없었다.

아주 멀리 보이는 산의 눈의 흔적까지 사진은 빛의 배려를 잘 담고 있었다.

 

사람들이 무지 많았던 그 사진.

그 사진을 책에서 보았을 때는 사람들이었는데, 실제 사진을 통해서 본 사람은 사람들이 아니라

그저 한 사람 한 사람 한 사람 이었다.

고루 고루 한 구석이랄 것도 없이 모두 한 사람이었다.

 

정말 고르고 평등한 빛을 받고 있었다.

 

원래 사진이 그런 것인지, 신미식이라는 분의 사진이 그런지는 잘 모르겠다

 

그런데, 빛이라는 생각을 지울 수가 없었다.

아주 고른 빛, 작은 풀잎 하나에도 비치는 빛의 배려.

그래서 풀잎 하나하나가 살아있음을 느끼게 해주는 그런 배려가 보이는 사진이었다.

 

이즈음이면, 이음아트의 주인님께 고맙다는 인사를 해야한다.

지난번 전시회시작때 다녀왔다는 말씀을 드리면서 책에 있는 사진을 보는 것으로도

만족스럽다고 말씀 드렸더니. 그 분이 말씀하시기를

"책하고 실제 사진하고는 너무 많이 다르죠, 사진은 사진으로 봐야죠"

그런가?

난 사진전을 제대로 본 경험이 없다. 정말 그런가?

 

정말 그랬다. 사진 귀퉁이들이 살아움직이고 있었다.

귀퉁이 구석진 것들이 움직이고 있으니 당연 세상이 움직이는 것이다.

사진이 아니라, 어느 동영상보다 더 강한 생명력이 느껴졌다.

 

 

 

또 하나.

 

십자가 사진들.

십자가가 포인트가 아니라 죽음이 포인트겠지.

죽음의 표시인 십자가 사진을 보면서 울어버렸다.

아무 말없이 몸을 틀면서 말라가는 나무십자가들, 그 십자가들의 뒤틀림을 보면서 난 울컥했다.

한 생

그 뒤에 오는 마른 십자가

그 뒤로 사진을 찍고 있는 나의 그림자가 있다.

 

 

 

 

[Not for sale]

오늘 전시장 가는 길, 지난 번 버스정류장에 아이들 그림 포스터가 붙었던 자리에는

원래 녹색연합에서 야생동물 보호 캠패용인 듯 .... 저렇게 적어두었다.

인상적이어서 찍었는데.. 그런거다

감동은 사고 파는 것이 아니다.

맘을 사로 잡는 것은 사고 파는 것이 아니다.

당연히 계산하는 것이 아니다.

감동받고 감동하는 것에 인색하지 않겠다.

내가 감동받아 행복하면 그것 그만큼 난 감동하고 행복하고 싶다.

사고 파는 물건이 아니듯 줄이고 늘이는 것도  아닌 것이라는 생각을 하며,

돌아오는 내내 난 웃으면서 걸었다.

 

아무도 없는 텅 빈 갤러리에서 혼자서 맘놓고 놀았던 사람있으면 손을 보세요!

난 오늘 그랬다.

 

 

* 작품사진을 찍어서 맘대로 줄이고 늘이고 한 듯 하여 정말 죄송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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