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첨부터 딴소리-
퇴근길이 바쁘다.
지난번에 뜨던 가디건의 마무리를 할 줄 모른다. 그걸 배우러 가야한다.
문을 닫았으면 어떡하지?
퇴근이 늦었는데...
요즘 비나이다가 무지 바쁘다는 그런 소문이... 잡일꾼이 원래 쓸데없이 바쁘지...
웬 뜨게질? 연말에 친구들이 나에게 불을 붙여놓고 갔다. 무아지경에 빠지는데는 최고니까...
-딴소리 끝-
눈이 내린다.
"어! 눈이 내리네요!"
"너무 열심히 뜨시느라, 못 보셨나봐요."
"......"
(아무도 눈온다는 말을 하지 않았다. 나처럼 눈이 오시면 눈이 온다고 큰 소리로 저절로 나와야 정상이 아닌가? 그 곳엔 10명이 넘는 사람이 있었는데, 다 보기만 하고 말을 한 사람은 없었었다.
내가 이상한거야? 아님 그들이 이상한거야....^^:: 난 눈이 오면 "눈이 오네"하고 말하는데...)
전철에서 내리면서, 눈이 그치면 어떡하나 걱정했었다.
눈이 집에 가는 내내 내렸으면 했다. 아니 눈이라도 집에 가는 내내 내렸으면 했다.
눈이 내리고 있었다.
눈이라도 내리고 있어서 참 좋다.
집으로 가는 길에 눈이 내리고 있었다.
눈과 눈 사이를 잘도 걷는다. 카메라가 필요하다.
눈위를 씩씩하게 걷고 있는 내 발을 동영상으로 찍기로 했다.
셧터를 연속으로 누르며 찰라와 찰라를 이어보기로 했다.
눈이 내린다.
내가 한 머플러에도 눈이 내리고 아래로 향하고 있는 카메라 액정에도 눈이 내린다.
나의 머리 위도 눈이 내린다.
아주 고르고 평등한 눈이 내린다.
발이 눈 위를 쌩하니 걷고 있다.
발은 분명 천천히 걷고 있었는데, 대개 빨리 걷는 것 처럼 보인다.
아마 지구가 돌기는 도나보다....
나와 반대방향으로 돌고 있는 듯이 보인다.
공을 굴려가며 내가 걷고 있는 듯하다.
머플러가 눈을 잔뜩 묻히고 있다.
어느 것이 머플러인지 어느 것이 스커트인지 구분하는 방법?
그건 털실 머플러에는 눈이 미끄러지지 않고 붙어있고,
미끄러운 나의 스커트에는 눈이 스르륵 흘러내렸다.
난 눈이 된다면, 아무대나 내리지 않을거야.
누군가의 털실 머플러에 내릴거야.
탁탁! 털어도 떨어지지 않게 잘 매달려 있을거야.
그 집까지 쫓아가야지. 그 집이 어딘지 알아둬야지.
내가 잠시 머물렀던 사람의 냄새정도는 맡을 수 있는 시간정도는 있어야지.
내가 눈이라면, 어쩔 수없이 금방 녹아버릴텐데. 그러니깐 잠시 머문 곳이 어디쯤인지는 알아야지.
내가 눈이라면 난 누군가의 털머플러에 내릴거다. 휙 휙 몸을 굴려가며 머플러에 내릴거다
난 항상 같이 있었다.
가방이 들려있네.
부츠가 함께 하고 있네.
난 나혼자인줄 알았는데, 나도 없는 곳에서 나의 가방이랑 부츠가 나를 대신하고 있었다.
갑자기 내가 없는 듯이 보이는 사진이다.
가방이 보이지 않을 때는 내가 있는 것 같았었는데.
가방이 있으니까 내가 없는 듯
가방과 신발이 나를 대신해서 이 거리를 걷고 있는 듯.
혼자가 아니어서 좋은데, 그런데 재들이 짝꿍같이 잘 어울린다.
가방과 신발이 나 없어도 참 잘 어울린다.
눈길을 둘이서 잘도 걷는다.
어느때보다 나의 부츠 신은 발이 "쑥!"앞으로 발을 내 딛고 있다.
가끔은 아주 가끔은 오른발과 왼발이 만나기도 했었구나.
난 오른발과 왼발이 저들이 작업 중일때는 만나지 않는 줄 알았구만.
내가 쉬어야만 그들이 같이 하는 줄 알았구만, 몰래 몰래 순간 순간 잘도 만나고 있었구만
아무리 떼어놓으려 해도 닮은 것들은 역시 잘 찾아다닌다니까....
닮은 것들은 어딜 갖다 둬도 만나고 산다니깐...
내 오른 발과 왼 발이 스치면서 매번 만났다는 것을
눈빛을 나누고 있었다는 것을 현장포착했다.
그런데 그냥 두기로 한다.
내가 쉴 때 만나는 것으로 부족했었나 보지 뭐!
사실 저렇게 만날 때가 더 스릴 있고 재미있는거지... 누군 저런 적 없나?
다 그런거지....
그랬었구나. 만나고 있었구나. 난 생각도 못했는데....
쌩하니. 걷고 있다.
그림자가 앞서 걷고 있다.
집이 가까워지면서 나의 걸음은 점점 빨라진다.
자석에 가까워질수록 쇳가루는 보다 강력하게 빨려들어간다.
"아 오늘 종일 집에 가고 싶어 죽는 줄 알았다."
일요일이 지난 월요일은 집에 너무 가고 싶다.
집에 있었던 나만의 시간들이 너무 그리웠었다.
스피커를 통해서 음악을 들을 수 있고, 누워서 책도 보고 과자도 먹고,,,,,
발을 올리고 영화도 보고....
참, 어제 본 ebs ,세계명작드라마 '빨간머리앤'은 언제 봐도 재미있어,
나랑 똑 닮은 빨강머리앤! 하긴 빨간머리앤은 공부를 잘하지 그건 좀 다르다.
지난 번에도 재미있었는데, 또 봐도 재미있다....
(그건 자꾸 재방송 해줬으면....작은아씨들도 재미있는데..)
아 또 딴소리
아무튼 집이 그리웠다. 눈이 펑펑 내리는데 집이 그리워 얼른 얼른 걸었다.
내가 매일 눈여겨 보는 것들
퇴근할때면 매번 꼭 눈이 가는 것들.
하나는 빈의자... 다리가 부러져 앉을 수 없는 빈 안락의자.
또 하나는 자전거... 안장이 없어서 탈 수 없는 자전거.
눈이 오는데,
재들은 다리가 없어 안장이 없어 눈을 고스란히 맞고 그자리에서 꼼짝 못하고 있었다.
그렇다고 눈을 털어줄 생각은 없다.
눈이 내리니 심심해 보이지는 않았다.
앉아줘야 할 것 같지도 않았다.
다만 뒤돌아보게 할 뿐이었다.
앉을 수 없는 이유가 있는 것들이다. 아주 잘 보이는 이유가 있는 것들이다.
난 이유가 보이지 않는데... 앉을 수 없는 이유가 잘 보이지 않는다고들 하는데...
재들은 너무 분명히 보인다.
앉을 수 없는 이유가... 그럼에도 눈이 그 자리에 앉아 있다.
가볍게 올라앉아 있었다.
"오늘밤, 니들은 조오켔다.~"
이렇게 조용한 곳을 쌩하니 걸어왔다니....
너무 밝은 곳에서는 보이지 않는 눈이 아주 많이 내리던 날.
눈이라도 내리던 날,
난 퇴근하면서 내 발을 찍었다.
언제나 내가 어디에 있는지 알려주는 내 발! 난 오늘 집으로 향하고 있었다.
지금은 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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