素暎
나의 이름은 소영이다.
아버지께서 몇 주일을 옥편을 찾으셔서 직접 지으신 이름이란다.
그런데 난 이름이 맘에 들지 않았다.
이유.1
친구들은 나를 부를때 소영아~ 이렇게 불렀다.
그런데 아버지는 굳이 그렇게 부르면 안된단다. 소;영아~ 란다. 장음 '소'라는 것이다.
그래야 이름에 품위가 들어가는거라시면서... (참고로 아버지는 국어선생님이셨다.)
난 그 차이가 뭔데 자꾸 태클을 거시는 건지,
잔소리같아 짜증을 내면서 그렇게 지적하시는 아버지가 친구들에게 좀 눈치가 보였었다.
누가 나에게 이름이 뭐니? 하고 물으면 난 이렇게 대답했었다.
"소~오영이요. "
그래야만 할 것 같았었다. 내가 발음하기도 힘들었던 소~오영!
이유.2
일단, 그래서 난 이 이름이 성가셨다.
그냥 미숙, 영숙, 순희 좀 이쁘면 정아... 이런 이름은 참 쉽다.
소영이는 이쁘다고들 하지만, 난 성가스러웠다. 그리고 사람들이 한마디한다.
얼굴에 비해서 이름이 이쁘다는 것이다.
이름은 얼굴을 더 도드라지게 하는 역할을 했다. 숨기고 드러나고 싶지 않은 얼굴인데...
꼭 그런다. "이름은 참 이쁘네요."
영자였으면, 나의 얼굴을 한 번 더 봤을 리가 없다.
얼굴과 이름을 비교해 상대적으로 얼굴이 더욱 더 못 생겨보이지는 않았을 것이다.
난 이름을 말하기가 싫었던 것 같다.
이유.3
이건 후에 한자를 알게 되면서 일이다.
이름에 '소' 바탕 소라고 쓰지만 '희다'는 의미이다. 하얗다. 하얗게 비춘다는 뜻이다.
이리 시적일 수가...
시 한편이라도 읋어야 할 것 같지만, 지금이라면 말이다,
그런데 그 때는 희다는 의미는 뭔가 좀 슬펐다.
뭔가 그냥 백합의 순결,내지는 간호사의 가운,,, 이런 의미보다는 소복의 의미가 더 먼저왔다.
하얀 광목이 먼저 떠올랐다.
왠지 좀 슬픈 뉘앙스의 희게 비침...
하얗게 비친다는 것은 결국 비치지 않을 수도 있지 않나 하는 생각을 20대에 했었다.
우리 아버님, 분명 이 글을 읽으실터인데...북북거리시면서 노발대발하시겠군!
그래서 난 아버지에게 공식적으로 이름을 바꾸겠다고 많이도 우겼다.
내가 지은 이름도 몇 개나 된다.
이렇게 쓰고 보니, 뭐 별 것도 아니었고.. 또 좀 시적이기도 한 것 같이 처음 쓰려고 했던 굳은 결심이 지금 흔들리려고 하기도 한다.
그럼 이름전체를 바꾸는 것을 한 발 미루고, 새롭게 발견한 '소영'이라는 한자를 소개하려고 한다.
하도 멋있어서 첫눈에 그 한자가 맘에 들어, 그냥 이 이름을 계속 쓰기로 맘을 좀 굳히게 된
계기가 된 한자를 소개한다.
疎影
"暗香疎影 그윽한 향기와 성긴 그림자라는 뜻으로, 매화를 두고 이름"
'疎影'이라는 한자의 어원이 이 '暗香疎影'에서 나온 지는 알 수 없다.
그저 매화.. 이런 의미보다. '성긴 그림자' 라는 말이 너무 좋다.
성근 그림자--- 참 멋진 말이다 싶다.
햇빛이 잘 비치는 흙마당이라고 가정한다.
엷은 붉은 빛과 황토빛이 조금 섞인 마른 흙이 있는 마당.
마당가고 크고 작은 나무들이 있다.
그리고 한옥 대청 앞에 발이 하나 쳐져있다.
그 발이 흙마당에 비친다.
그래서 만들어진 것이 성긴 그림자이다. 얼금얼금,,, 흔들리는 그림자.
검고 흰 그림자의 사이가 마치 나뭇가지처럼 얇게 흔들리는, 그것이 감지되는 성긴 그림자..
발의 그림자뿐이 아니다.
나무 그림자. 나뭇가지들은 빽빽한 듯이 보이지만, 그림자로 보면 반드시 틈이 보인다.
검고 흰 틈이 보인다. 성긴 그림자이다.
성긴 그림자는 빛과 어둠 단 두가지의 종류이지만, 어떤 미세한 움직임도 그려낸다.
비쳐지는 곳이 굵은 자갈밭이면 자갈밭인데로
가는 모래밭이면 모래밭인데로
흙바닥이면 흙바닥인데로.. 어디에 그림자가 놓이던 성긴 그림자는 가장 정적이면서도
탄력있게 반응한다..
그리고 여백의 미라고 하지 않는가
내게 다 채워진 서양유화가 아니라, 여백이 넉넉한 그래서 숨을 얇게 쉬어야 하는 동양화가 생각나지 않는가
난 '소영'이라는 글자의 뜻을 보고 한 마디로 반했다.
며칠 전 산 "인생이 그림같다."라는 책에서 우연히 건진 소영이다.
아주 뿌듯했다.
소영이라는 이름이 내게 이리 뿌듯한 적이 없었던 듯 싶다.
"성근 그림자" 소영
난 성근 그림자의 모양이었음 싶다.
빽빽, 울울하지 않아서 틈이 있어서 숨이 잘 쉬어지는 , 편안한 그런 여유가 느껴진다.
고요함이 느껴진다.
평화로움이 성근 그림자에서 느껴진다.
하얗게 비춘다는 뜻에서 언뜻 보이는 외로움보다는 성근 사이로 누군가가 끼어들 것 같다.
바람 한 자락이라고 성긴 사이에 머물다 갈 것 같다.
누구라도 성글게 놓여진 그림자앞에서 한 참 놀다가 갈 것 같다.
난 소영이라는 이름이 좋아지기 시작했다.
"성근 그림자" 라는 뜻을 알고 부터.
'疎影' 이라는 한자를 알고 부터... 좀 좋다. 아니 많이 좋다.
거의 처음으로 내 이름이 좋다.
아버지! 그냥 '소~오영'이라고 부르시구요... 전 '疎影'이라고 들을께요!!!
쬐끔 미안하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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