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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절거림

장미

by 발비(發飛) 2006. 1. 5.

 

 

 

그제, 이 장미는 우연히 내 손에 들어왔다.

절대 모르는 어떤 분이 좀 아는 어떤 분에게 이 장미를 주셨다.

절대 모르는 분은 꽃을 받으면 다른 사람에게 전하는 것이 버릇이라고 하셨다.

좀 아는 분은 옆에 있는 절대 모르는 분에게 양해를 구하고 장미를 내게 주셨다.

난 절대 모르는 분에게 좀 미안하면서, 좀 아는 분에게 고맙게 장미를 받았다.

겨울 장미구나.

1월의 장미구나. 

 

   

 

 

 

그제밤, 집에 가서 장미를 화병에다 꽂을까 아니면 말릴까 ....

말리기로 했다. 별 뜻없이.

 

어젯밤

나란하다.

장미 옆에 걸려있는 나무가지들과 나란한 것이 눈에 띈다.

장미가 내게 와야 할 이유가 거기 있었구나.

 

 

 

 

 

감동했나보다 흔들림이 멈추지 않는다.

 

일기장을 뒤져보니, 작년 4월쯤이다.

난 내가 내려야 하는 전철역보다 더 앞 전철역에 내려 걸었었다.

(난 걷는 것을 무지무지 좋아한다.)

그 날은 촉촉히 비가 내렸었고, 서울의 비였지만 적당히 맞아줄 만 했다.

우산이 없었던 것을 다행으로 여기면서,

안개처럼 내리는 비를 맞으며 어느 아파트 옆길을 걷고 있었다.

문득, 발 아래로 수많은 나무 가지들이 잘려져 있었다.

아무렇게 흩어져 있었다.

난 그 나무가지들의 주인을 찾아보았다.

덩굴장미를 가지치기 해 놓은 것이다.

이제 곧 장미가 필 계절이 다가오니, 아마 경비아저씨가 이쁜 장미를 위해 부지런을 떨었나보다.

 

좀 측은했다.

나무에 붙어 있었으면, 장미꽃 몇 송이쯤은 가지에 매달수도 있었을텐데 싶었다.

난 장미 가지 몇 개를 주워왔다.

아이처럼 긴 장미 가지를 흔들면서 집으로 왔다. 그냥 데리고 오고 싶었었다.

 

그 가지를 놓고 가만히 있었지.

데리고 오긴 왔는데, 얘를 어떻게 해야하나...

노끈으로 묶기 시작했다. 첨에는 발처럼 만들고 싶었는데. 이것이 빙빙 돌면서 모빌처럼 되었다.

그러고 싶은가보지 뭐!

어차피 발이든, 모빌이든, 난 너를 뭔가에 쓰고 싶은 것 뿐이니까...

뭔가 흔적으로 남겨주고 싶은 것뿐이었으니까...

 

그러고 이렇게 거의 일년이 되어간다.

장미가 왔다.

우연히 장미와 나란히 걸리게 된 장미나무 가지..... 흐음~

나란하군!

기분이 묘하군!

기념 촬영을 해 줘야지!

 

 

처음 이걸 내 방에 걸어두었을 때 내 친구 왈 " 무당집 같다"

상관없었다. 난 얘들을 보면 데리고 온 내가 좋다.

내가 쬐끔은 좋은 사람같다는 생각을 들게 한다. 나무가지를 데리고 왔으니까.. 잘 데리고 있으니까.

오늘은 나란히 말라가는 장미를 본다.

그냥 두고 본다.

많은 생각을 하지 않고, 내게 흘러 들어온 장미와 장미 가지를 난 그냥 둔다.

내 방에 그렇게 인연이 되어 만난 뿌리 같은 것들이 있어서 좋다.

 

 

  

 

 

작년에 이걸 만들자 찍은 사진이다.(왼)

일년동안 많이 말랐다. 물기가 거의 다 빠진 모양이다.

다시 한번 손을 봐줘야 되겠다. 모양은 그대로지만, 묶인 끈이라도 한 번 만져줘야겠다.

사진으로 보니 좀 초췌해 보이기도 한다.

 

장미다발을 옆에 두니, 좋다.

가끔씩은 싱싱한 장미꽃을 옆에 둬 봐야겠다. 향 짙은 놈으로다가....

 

꽃은 항상 이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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