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읽히는대로 詩

[신용선] 작은 겨울길 D-3

by 발비(發飛) 2005. 12. 29.

작은 겨울길

 

신용선

 

내 옷을 찾아 입고

내가 가졌던 평소의

두려움으로

 

어느 길 위에 있고 싶다

 

걸음을 배우는 아이처럼

넘어지고 싶구나.

 

자작나무 숲으로 이어진

작은 겨울길에

엎디어

 

남이 나때문에 얻은

죄를

빌고 싶다

 

누구라도 좋다. 등 뒤에서

이름을

불러다오.

 

엽서 한 통을 받았다.

그저 아무런 말도 없이, 잘 지내라고,, 그리고 새해에도 잘 지내라고...

그리고 잘 지낸다고.

항상 좋다고.

그런데 항상 좋은 건만은 아니라고..

그렇게 엽서 한 통이 왔다.

내 놓은 사연이 담긴 엽서이다.

그냥 온통 글자들이 내 놓아져 있었다.

 

이 시에서 말하는 것처럼 그냥 평소인데..

그냥 똑같은 일상인데. 같은 옷을 입고 있는데

 

가끔 넘어지고 싶기도 하다.

무릎이라도 다부지게 깨어 피라도 난다면 금상첨화다.

아파서 우는 김에 죄를 빌고 싶다.

그 맘이 어떤 맘인지, 설명할 수는 없지만, 나도 그러고 싶다는 생각은 한다.

그냥 우는 김에, 내 죄를 빌고 싶다.

평소와 같은 옷을 입고 같은 밥을 먹고 나선 길에서 넘어져

피를 흘리며,

나때문에 만나지 못하는 어떤 사람, 나의 죄때문에 만나고 있지 못하는 어떤 사람에게

죄를 빌고 싶기도 하다.

넘어지기만 해다오.

부탁인데, 내가 가는 길에 뽀족한 돌부리들이 뜬금없이 놓여있어서,

나도 모르게 넘어지게만 해다오.

그리 죄를 빌고 나면,

내 등 뒤에서 그들이 나의 이름을 부를 것이다.

그들이 나를 아는 체 할 것 같다.

 

겨울 작은 길을 걷고 있을 나.

 

매섭게 추운 바람이 불고 있을 겨울 어느 작은 길을 걷고 있을 나는 차라리 떳떳하다.

 

난 이 시를 이렇게 읽었다.

 

이 시를 쓴 분은 참 선하게도 웃고 계신다.

그 분의 오래 전 시집  [두고 가는 길] 안에서....

 

내게 엽서를 보낸 이도 겨울 작은 길에서 넘어져 울고 싶나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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