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것의 최후는 둥글다
이상호
햇볕만이 온전히 사과를 익게 할 수 없듯이
바람만이 온전히 사과를 떨어뜨리지 못하듯
누구도 제 혼자 힘으로는 완성할 수 없는
더 큰 노래를 위하여 사람들이
수많은 낮과 밤을 거듭 걸어
저 강가에 이르면
노을에 물든 강물
붉은 강물만 우- 우-
떠들며 어디론가 가고 있다.
오늘따라 가슴에 자라는 가시가 더욱 거칠어
서로 다른 방향에서 바라보는 저문 하늘에
물새 한 마리
취한 듯 어지러운 듯
먼 길을 가고 있다
그때 무슨 종지부처럼
검은 빗방울이 머리를 적시고
한점 소실점 위에서 사람들은
서로 껴안을 수 없는
고슴도치 가슴을 확인해본다
주위는 점점 더 어두워지고,
어두운 주위만큼 마음도 어두워지면
서로의 얼굴을 알아볼 수 없어
겁에 질린 사람들은 드디어
제 가슴의 가시를 물어뜯기 시작한다
이빨에 잘려나간 가시들은 낱낱이
뜨거운 눈물이 되어
저 붉은 강물을 적시고
강물은 또 뜨겁게 일어서
그들의 가슴에 맑은 물소리를 일군다, 그때
둥근 사과 한 알이 지구로 떨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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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괜히 마음에 드는데, 뭔지 모르겠어서... 그냥 시인이 어디에 있었을까를 생각해보았다.
첫 칼바람이 이는 늦가을 내지는 초겨울이라고 치자.
강원도 어디 물깊은 강가에 서있다고 치자
해가 아직은 저물지 않았다고 치자
그 곳으로 혼자서 여행을 왔다고 치자
혼자서 온 것에는 아픈 이유가 있다고 치자
그 이유는 뭐든 상관없이 그저 맘이 아픈 것이라고 치자
그 아픔을 누구와는 나누기에는 사람들과 좀 멀리 지냈다고 치자
혼자 있는 강가에서 그 사람들이 좀 보고 싶은 생각이 들었다고 치자
날이 점점 어두워지고 있다고 치자
어두워지자 앞에 흐르던 강물에 해그림자로 물결이 더 많이 일렁거려보인다고 치자
일렁거리는 물결의 리듬을 따라 나의 마음도 같이 일렁거린다고 치자
마음이 자꾸 아파온다고 치자
아픈 것을 그냥 두고 싶다고 치자
아픈 것에 더 상처를 내고 싶은 마음이 들었다고 치자
그냥 어두워질 때까지 더 무서울 때까지 그 곳에 있기로 했다고 치자
아프고 무서운 것이 참을 수 없을 때까지 왔다고 치자
손이 가슴에 저절로 얹어졌다고 치자
손이 가슴을 쓸어내리고 있다고 치자
내 손이 내 가슴을 쓸어내리자 가슴이 좀은 가라앉기도 한다고 치자
붉은 해에 일렁거리던 강물이 서서히 사라지기 시작했다고 치자
고개를 들어보니, 해가 없어졌다고 치자.
해가 없어진 사방이 캄캄해졌다고 치자.
그저 물소리만 들린다고 치자
이제 무섭지도 아프지도 않을거라고 치자
그냥 손이 강물 대신 흐르고 있는 눈물을 열심히 닦아내리고 있다고 치자
눈에서 흐르는 강물로 깨끗이 얼굴을 닦았다고 치자.
하얀 달이 하늘에 떠 있더라고 치자.
내 얼굴도 달처럼 하얘졌을 거라고 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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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 어찌 표현하지는 못하겠지만, 맘에만 와 닿는 이 시를 그냥 이렇게 읽어보았다.
정말 잠시 떠나갔다 온 느낌이다.
지금은 사무실.... 책상 앞.
왼쪽에 서류화일이 다섯 권 쌓여있고, 오른쪽에는 이상호 시인의 오래된 시집 한 권이 어디선가
굴러 나와있었다.
거기에 눈이 머물렀고, 난 잠시 시 안에서 놀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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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이 詩 안에 머무르는 동안,
살마도르 달리의 시계가 그려진 그림이 생각났다.
Persistance of Memory(기억의 영속)
기억은 끝도 없이 남아있는 것? 내 안에 붙어 있는 것?
그런데 왜 이 시를 읽으며 달리의 흘러내리는 시계 그림이 생각난거지?
흘러내리고 이그러져도 결코 사라지지는 않는 시간..... 달리의 시간?
혹시,
난 '기억이라는 것은 강물에도 어둠에도 흘러가는 것이 아니다.' 라고
생각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의 연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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