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전 올린 글 중에 이 책 [알바이신의 고양이]를 읽고 괜히 열받고 화내고
그랬던 적이 있었다.
이 책을 이음에서 처음 만났다.
이음사장님께서 새 책이라며 보여주셨다.
일단, 나는 책을 읽는 것보다는 구경하기를 좋아한다.
책을 만질 때의 질감을 느끼기를 좋아하고,
책에 쓰이는 비슷하면서도 다른 종이를 찾아내는 것을 좋아하고
새로운 디자인이나 새로운 종이로 시도된 책을 보기를 좋아한다.
그래서 서점을 즐겨찾는 이유도 그 책을 다 읽어서라기보다 책구경이라는 말이 맞다.
들어봐서 무거워서 행복한 책도 있고
가벼워서 행복한 책도 있고
양장이라서 좋은 책이 있고
무선철이라 좋은 책도 있다.
본론에 들어가면, 그런 의미에서 처음 [알바이신의 고양이들]을 보았을 때
한마디로 뿅갔다.
일단 만지는 기분이 아주 좋았다. 마치 창호지를 만지는 듯
거기에 걸맞게 좀 옅은 갈색종이, 흑백사진, 그리고 빨간 제목.
그리고 거기에 걸맞는 크기.
멋지다.
책을 후두둑 열어보았다.
책의 구도도 맞고 작은 글씨는 뭔가 가득한 느낌이다.
고양이들로 통일된 알바이신 배경의 흑백 사진
그리고 작가가 그렸다는 칼라 그림.
모든 것이 거의 완벽에 가까울만큼 내 맘에 들었다.
흥분이 되더라.
그리고 이 책은 당연히 가져야 한다고 생각했다.
(사실 얼마전 너무 이쁜 소설책을 봤는데, 딱 맘에 드는 디자인인데, 소설이 당기지 않아 사지 않았다, 옷을 사는 것과 똑같은 맘이다. 입지 않을 옷을 사지 않은 것과 같이)
그런데 이 책은 분명 뭔가 있을 것 같았다.
그냥 보기에도 사진이 예술이다.
사진이 너무 좋았다
고양이로 일관되게 찍은 사진은 하나 하나 이야기가 담겨있는 듯
마치 고양이가 사람인 듯 이야기 하나가 될 듯 싶었다.
처음 읽었을 때
사진을 쭉 보았다. 만족스러웠다, 그래서 작가의 약력을 보았다.
범상치 않은 삶을 살았다. 이 사람도 역시 여행을 다니면서 한 세상을 원없이 산 듯 하다.
사진을 찍으며 사는 사람은 주로 한량이 많은 것이 분명하다. 물론 좋은 의미로...
난 사진을 사랑한다.
두번째 읽었을 때
그가 그린 그림과 그림에 붙은 짧은 이야기를 읽었다.
그림은 잘 모르지만, 사실만 순간만을 담는 사진과는 달리, 보태고 뺄 수 있는 좀 더 주관성을 가지게 된다. 그래서 그의 그림은 몇 장면이 합쳐진 것도 많았다. 그의 글에 따르면...
짧게 붙은 글이 그 그림을 보는 데 도움이 되었다.
세번째 읽었을 때
이제 본격적으로 왼편에 있는 본문을 읽어야 할 때였다.
처음과 두번째 모두 이음 테이블에서 천천히 읽었다.
그리고 세번째도 이음 그 테이블에서 읽고 있었다.
난 몇 페이지를 읽고 화가 났다.
분명, 사진과 그림은 좋았는데, 글을 읽고 화가 났다.
왜?
읽어지지가 않으니까.
읽어지지 않는 글을 읽는 것이 화가 났다.
그러면서 생각되는 것, 괜히 억울한 것
'뭐야 이것을 활자로 만들어서 멋진 디자인 입혀서 내놓았단 말이야.'
하는 생각이 들었다.
마치 천은 엉망인데 디자인만 요란한 그런, 생각
그런데 난 필요 이상으로 화를 내고 있었다.
또 왜?
열등의식이다.
그가 다녀온 에스파냐, 스페인이라는 나라, 여행의 경험이 없었다면, 그는 이런 책이 나올 수 없느 사람이다.
그런데 단지 여행을 다녀왔다는 이유로 읽어지지도 않는 책을 만들어놓다니,
여행을 다녀 온 것이 또 하나의 기득권이 된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마치 띨띨한 놈이 엄청 부잣집에 태어나 조기유학 다녀와 영어 몇 마디 지껄일 수 있어서
남들 몇 십년 죽어라고 공부해서 들어가기 힘든 회사에 버젓이 취직하는 것을 볼 때의 그 느낌.
딱 그거였다.
그러면서도 그 날 난 이 책을 사왔다.
왜?
독을 품으려고,,,,진짜 한 번 찬찬히 봐주마.
이 책이 나를 뻑가게 만들었었는데, 그 안에 있는 내용이 내가 다 읽지 못해서이겠지.
뭔가 있는 건지
아니면 정말 겉만 번드르르 한 건지 찬찬히 봐 줘야 겠다.
그렇게 생각하고 책을 사왔다.
난 성탄절 동안 몇 번 이 책을 읽으려 시도했다,.
그리고 꽤나 읽었다.
또 오늘 아침 전철 합정동 가는 길 전철, 집으로 돌아오는 전철
(난 전철에서 책을 읽을때 잘 집중이 된다)
그렇게 책을 읽었다.
이제 결론이다.
그리고 이것은 완전한 나의 주절거림이다.
내 생각에 이 책은 생각을 잘 못한 것이다.
이 책에 있는 사진과 그림은 정말 멋지다.
그리고 책의 디자인이나 종이의 선택 또한 환상이다.
그런데, 이 모든 것이 고급이며, 지적인 것에 비해.... 작은 글씨로 깨알처럼 적혀있는 글들은 그 수위가 맞지 않았다.
사진과 그림에 맞추려면, 흑백 고양이에 맞는 그런 색깔의 글이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문체도 그렇게 기호도 그렇고 .... 모든 것이.
그렇지 않고 글에 맞추려면,
사진이 스페인의 정열적인 모습이라던가 좀 더 밝은 역동적이거나, 가벼운 것들이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랬다면,
전자의 경우, 우리는 스페인이라는 나라의 내면적인 면을 저절로 맛보게 되었을 것이고
후자의 경우 그 나라의 드러나는 문화를 이해하기 편했을 것이다.
그런데,
이 책은 두 가지가 맞지 않아서 둘 다를 잃어버린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둘 다가 아니라 셋이다.
글과 그림과 사진,,, 그리고 디자인
난 이 책을 소중히 가지려고 한다.
내가 처음으로 왜 책에 화를 내었으며, 난 내가 책에 화를 낸 이유를 며칠이고 생각했기때문이다.
그리고 하나 더
여행
난 요즘 여행에 집착한다.
난 한번도 해외여행을 가보지 못했다. 여권도 없다.
가장 후회되는 일이 그것이다.
그런데 이 책을 읽고 화를 내고 울분을 터트린 나를 본 것
그것은 오직 편집의 문제가 아니라, 내가 이 책을 핑계로 원망을 만든 것이다.
오직 여행을 했다는 이유로
남다른 경험을 했다는 이유로
경험이라는 것도 좋은 것과 나쁜 것이 있는데,
좋은 경험은 이상한 글로도 더 멋진 일이 되고
나쁜 경험은 마치 주홍글씨처럼 남에게 드러내고 싶지 않는 일이 되어야 한다는 것
그것이 화가 났던 것이다.
그 날의 글을 지우지 않았다.
나를 보았기 때문이다.
이 책이 나에게 소중한 또 하나의 이유가 된다.
나를 알게 된 하나의 계기가 된 책.
그리고 무엇이 읽히지 않는 책이 되었는지에 대해 천천히 생각한 첫 책.
난 이 책을 잊지 못할 것이다.
사진을 찍으며, 책을 후루룩 넘기며,
이 사진은 정말 맘에 들었는데, 이 글은 도대체 이게 뭐야... 하며
제일 내 말을 많이 하며 읽은 책이 되었다.
때로 그런 것이다.
삶도 그런 것에서 벗어나지 않을 것이다.
[알바이신의 고양이]
아직도 난 그 책이 잘 못 만들어진 책이라고 말한다.
그럼에도 나 개인적으로 그 책을 만난 것은 행운이라고 생각한다,
-마지막에서 잠시 딴 소리-
사람도 똑같다는 생각을 한다.
어떤 멋진 인간을 만났다
그리고 그 인간에 첫 눈에 완전 반해버렸다.
그런데 그 인간도 내게 있기를 괜찮아 하는 것 같다.
그래서 그 인간과 가까이 지낸다.
반한 인간과의 만남은 가까이만 지내는 것이 아니라, 속속들이 들여다보고, 드러내 보이고
그러다 속속들이 보는데, 이건 멋진 인간이라기보다
무늬가 멋진 인간인 것이다.
그럼 더 이상 멋지게 보이지 않은 인간과는 결별한다.
그리고 뿌득거리며, 그 인간과의 만남을 , 그리고 이 분노의 원인을 그 인간에게 둔다.
여기서 잠시 호흡을 가다듬고 생각을 한다
한 눈에 반한 것은 나
그리고 속속들이 파헤친 것도 나
그래서 결별을 결심한 것도 나
또 그런 남자는 그렇다의 경험을 얻은 것도 나
모든 것의 주체는 나이다
그런 깨달음을 주는 인간을 미워하는 것?
그건 아닌 것 같다. 그에게 고마워해야 할 일이다.
그와 결별을 할 것이 아니라, 모든 인간을 잘라버릴 것이 아니라
나에게 내공을 쌓게 해준 사부로 생각해야 할런지도 모른다
내가 알바이신의 고양이라는 책을 좋아하게 된 것처럼 사람에게도 그래야 하는 것이 아닌가
하는 그런 생각을 문득하고
잠시 딴 소리로 두드려본다
(어젯밤에 올린 글에 아침에 일어나자 문득 생각이 떠올라 아침부터 딴소리를 붙여보았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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