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근길이었습니다.
동일로 길가에 늘어선 플라타나스나무아래로 커다란 포대들이 줄을 지어서있습니다.
몇 개의 나무 건너 몇 포대씩 배가 빵빵합니다.
공사할 것이 있나 생각했었습니다.
모래라기에 어딘지모를 가벼움.
그런 기운도 새어나오는가 봅니다.
궁금하니까... 다가가서 뭔가 하고 들여다보았습니다.
낙엽들이 가득 담겨있었습니다.
아마 밤새 미화원아저씨들이 담아놓으셨나봅니다.
포대 바깥에 이렇게 적혀있었습니다.
"낙엽수거용"
그 말이 탁 걸립니다.
인쇄되어있었습니다.
아마 오래전에 제작되어 있었겠지요.
난 3월이면 단단한 껍질들에게 이단옆차기하며 나왔을 여린 잎들에게
5월이면 아주 멋대로 자란 사춘기아이들처럼 제 방향대로 봉두난발을 한 어린 잎들에게
7월이면 초록이 다해 초록위를 넘보는 기고만장이던 싱싱한 잎들에게
9월이면 힘은 생산능력과 상관없이 시간이라는 것에 지배받는다는 것을 보여주는 잎들에게
그리고 11월엔 철봉 매달리기 40초이후의 손처럼 안간힘을 다하여 잡지만 놓아도 별 것 아닌 그 잎들에게
저들은 저들대로, 난 나대로 나무를 보았습니다.
"낙엽수거용"
그 안에 가득 담겨진 온갖 종류의 낙엽들.
내가 그 나뭇잎들을 따라다니며, 주었던 눈길들이 그 안에 담겨있는 듯 했습니다.
흙먼지와 함께, 사탕껍질과 함께
참 이쁘던 나뭇잎들이 그 안에 꽉꽉 눌려 담겨져 있었습니다.
순간, 내가 한 생각
"저 포대에다 불을 지르고 싶다." 였습니다.
그런 생각이 드는 내가 희한했지만, 그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저 "낙엽수거용" 말고,
산처럼 낙엽들을 쌓아놓고, 다비식이라도 치러주면 얼마나 좋을까?
"불 들어가요! 나오소!"
"불 들어가요! 나오소!"
그렇게 하늘로 오르면 얼마나 좋을까?
그렇게 세상이라는 수레바퀴에서 벗어남을 축하해주면 얼마나 좋을까?
그런 쓸데없는 생각을 하면서,
어느날 나도 그렇지 나도 그렇겠지... 나도 그런 날이 있겠지.
"낙엽수거용"
그 안에 내가 있겠지.
흙먼지, 사탕껍질 사이에서 나의 3월 5월 7월 그리고 11월을 그대로 쓸어담아버릴 때가 오겠지.
누군가가 봄부터 아님 지난해부터 이미 만들어놓고 기다렸을 "낙엽수거용"포대에 ......
사람보다 신은 좀 더 인간적이지 않을까요?
신은 사람을 그와 닮게 만들어놓았지만, 인간이 스스로 변태를 한 것이므로
원래 인간적인 모습은 신에게 더 많을 거 아닐까요?
그렇다면,
인간적인 신에게 부탁 좀 드리고 싶습니다.
제발
"낙엽수거용"포대에 어느 날밤 마구 쓸어담지는 말았으면,
이왕 담으시더라도, 분리수거해서 그 곳에서는 참 좋은 사람들만 만나고 살았으면,
그렇게 오늘 아침 부탁드린다고 말하고 싶었습니다.
말은 하지 못하고 그냥 이렇게 주절거립니다.
그런거 있잖아요.
전지전능한 신은 아마 들을거라고 생각하면서도 혼자서 중얼거리는 척 하는 거.
저, 지금 그거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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