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만에 흥미있는 파지 한 장.
오늘 나온 파지는 어느 성경이야기 해설서,
그런데 그 안에 딱 한 장 빠닥한 종이... 표지 커버가 끼어있다.
뭔가 복잡한 디자인의 표지 커버,
동학사 출판
편하게 읽는 도덕경, 노자
그리고 표지에 본문을 잘라놓은 듯한 이야기들...
표지에 적힌 이야기들이 흥미롭다. 옮긴다.
불사(不死)의 사상
공(空)과 허(虛)의 일체성
달리는 수레를 보라, 말의 힘으로 수레가 달리는 것인가? 바퀴가 움직여 수레가 달리는 것인가?
바퀴 한 가운데의 빈 구멍이 없다면 말이 있다 한들 수레가 굴러갈 수 없음을 알고 있는 가
빈 구멍이 공이요, 공(空)이 허요 그 허(虛)를 노자는 도추라고 했다.
......불사(不死)함은 만물이 쉴새없이 왕래하는 그 빈 구멍 때문이 아닌가
내 고향은 안동.
울 아버지는 맨날 우기시는 뼈대 굵은 집안이라고 우기신다.
그게 뭐 어쨌는지는 모르지만서도 뼈대가 없다는 것보다는 낫겠지 싶었다.
때로는 막가파집안에서 살았으면 싶기도 했다. 뭐가 그리 따지는 것이 많은지...
우리 남매는 우리 장돌뱅이집 자식이었으면 좋겠지. 그런 말도 한 적이 있는 것 같다.
아무튼
윗대가 어쩌고 저쩌고 때문에 살아가는 이유가 되는 그런 사람도 있다. 지금까지도...
그런 사람들의 문화. 그때는 그것이 공기같아서 원래 그런가보다 한다.
소위 말하는 공자의 계통을 잇는 유학이라는 것과 노자, 장자가 있는 노장철학.
그런 책 읽는 것을 좋아하던 때가 있었지.
그때 도덕경을 몇 장 읽고 있을 때 어느 어르신 하신 말씀.
"그런데 현혹되면 안되는겨."
"하염없이 옆길로 빠지는겨. 순간이여. 말장난이여."
그러셨다.
그래서 생각했지.
"노장은 사탄이구나. 감언이설로 유혹하는 사이비종교구나. 피해가자."
그러곤, 접었다.
공과 허.
공간이 없으면 집도 없고 방도 없고 그 안에 있는 나도 없다.
진정한 쓰임은 빈 것에서만 가능한 것이다.
그렇지, 내가 뭔가에 쓰이고자 한다면, 난 완성품이면 안된다.
난 미완성품, 열려있고 비워있어야만 뭔가에 쓰일 수 있는 것이다.
비어있다는 것, 넓은 공간일 수도 있고 틈일 수도 있다.
감히 넓은 것 바라지도 않는다.
지금 이 곳처럼 작은 틈-이건 금이 간 도자기의 틈일 수도 있다.
그 안에 끼인 검은 때일 수도 있다.
그 때 끼인 검은 틈이 도자기에 그림 하나를 그려놓은 것이 되기도 한다.
그 그림이 나의 생을 바꿀 수도 있다.
내 맘속에 한 줄기 틈만 있으면 그 틈의 쓰임으로 내가 달라질 수 있는 것이다.
난 비어있음으로 난 무한한 가능성이 있다.
비어있다고 우기자.
울 아버지가 뼈대굵다고 우기는 것처럼 그래서 삶의 이유가 되는 것처럼 나도 우긴다.
난 비어있음으로 채울 수 있는 공간이 있다.
아랫쪽에다 구멍하나 뚫어놓고,,, 채워지거든 쥐도 새도 모르게 새어나가라고..
이렇게 떠들면, 그 때 나에게 현혹되지 말라고 한 그 어르신은 뭐라고 할까?
내가 나를 쫓아들어갈 수 있는 공간을 만들어주는 말들... 노자의 말들이 아닐까 주절거린다.
_무섭다. 이렇게 맘대로 떠들면 안되는 건데...
근데 여긴 내 방이고 난 똥개다.
똥개도 제 집에서 힘내는 거니까. 난 내 맘대로 주절,
노자가 걷는 길에는 이정표가 없다
삼라만상이 모두 다 길을 걷고 있는 중이다
천지란 도가 마련해 준 여인숙이요 만물은 그 곳에 잠시 머물다 가는 나그네일 뿐이다
그래서 노자가 걷자 하는 길에는 이정표가 없다.
이를 어쩌란 말인가. 이 아픔 가슴을...
왜?
어제 읽은 나희덕의 시에서 길을 잃어버린 것 같다고 길 아는 사람 있으면 기다리고 가만히 서있겠다고 말했는데, 또 맘이 변한다.
노자께는 아예 길이 없다고 그러시는군.
그러니 잃을 길도 없는 거잖아.
그럼 내가 믿고 있던 잃었다고 믿고 있던 길은 뭐지?
역시 내 책상위에 있는 개미가 가장 똑똑하다.
그 개미는 노자의 환생인가보다. 길따윈 원래 없었다고 그냥 가는 거라고 가고 있는 것이다.
기다리기로 한 난, 또 갈등이다.
갈등하고 번민하는 순간, 내가 머뭇거리는 것이라면,
난 여인숙에서 하루 묵고 있는 것인가.내 가는 길에 잠시 머물렀을 뿐인데
난 빨리 가야한다고 조급증을 내고 있는 거네.
그런가?
멈칫,
이건 어느 낯선 여인숙에서 하루 묵는 것이다. 어! 앞으론 그렇게 우기자.
부드럽고 약한 것이 굳고 센 것을 이긴다
부르럽고 약한 것(柔弱)이 굳고 센것(剛强)을 이긴다, 이는 곧 겸허하라. 두려워하라 함이다. 천지도 겸허하거늘 어찌 인간이 만물의 영장이라며 우쭐대는가. 그래서 두보(杜甫)도 노자의 숨결을 따라 읊은 것 같다. '일월(日月)은 조롱 속에는 든 새요 천지는 물 위에 뜬 풀잎이어라.'
앗! 대침으로 찔렸다.
무지 아프군!!!
일월이 새장속의 새인데, 나? 미친다.
그냥 한 점 먼지, 조용해라. 입 다물어라. 그런다.
하늘의 그물은 넓고도 성글지만 놓치는 것이 하나도 없다
천망(天網), 하늘의 그물이란 말이다
하늘은 목숨을 내는 도라고 여기면 된다, 도(道)의 모습은 허(虛)에 비유하기도 한다.
허(虛)라는 그물 속에 온 우주가 들어 있다고 상상해보라.
두보(杜甫)가 일월(日月)을 일러 조롱(鳥籠)속에 든 새라고 했는데. 아마도 노자의 천망에서 얻어 낸 시상일지도 모를 일이다.
천망이 넉넉하게 넓고(恢恢) 성글다(疎).
허를 상상하면 천망을 그려 볼 수 있으리라. 허는 우주가 있는 집인데, 내외(內外). 좌우(左右). 시간(時間)이 없다. 그러니 허는 우주 삼라만상을 낳는 도의 모습인 셈이다.
쳐있지도 않은 그물에 갇힌다.
대단한 조직이다.
하늘이라는 조직이 있다.
그 곳의 보스는 도다.
보스는 모습을 드러내지 않고 조직을 관리한다.
관리대상은 천지삼라만상이다.
천지삼라만상은 도라는 보스에 의해 움직이면서도 자신이 움직인다고 생각한다.
도는 하늘이고 우주라 천지삼라만상은 절대 그의 밖으로 나갈 수 없다,
도는 허락해준다.
넓은 운동장을 허락해주었다.
아무리 뛰고 날아도 좁지 않는 운동장을 만들어두었다.
텅빈 운동장에서 니 맘대로 놀아보라고 풀어놓았다.
가끔 저희들끼리 부딪히고 깨진다. 도는 그냥 둔다. 내버려둔다.
허>우주>삼라만상....행동책,도
뭐라는 거지?
아무튼 정말 모를 소용돌이....도가도 비상도, 명가명 비상명 어쩌고저쩌고...
아쉽다.
이게 표지커버에 나온 이야기의 모두이다.
뭘까? 내 손에게 물어봐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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