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읽히는대로 詩

[신용선] 두고 가는 길

by 발비(發飛) 2005. 10. 27.
LONG

마취房

 

볕드는 곳으로

침상을 옮겨다오

 

오다가 멈추고 다시

더 축축한 땅에서 올라오는

저 노래가 싫다

 

부드러운 혀를 가진 설교사의 마른 얼굴에 번지는

눈물이 싫다.

 

누가 나를 멀리 보내는가.

 

누구에게 까마득히 잊혀지기 위해

이리도 오래

떠나고 깄어야 하는가.

 

님의 집을 쓰는 홀애비처럼

등이

가렵다.

 

 

火葬.1

 

가까이 오지 마셔요, 어머니

물나가고

뻘이어요

 

보셔요, 달빛이 씻어놓은

말간

나무와

 

풀려서 물이 되기 위해

떨어지는

물방울

 

근육질의 새떼는 눈을

꿈벅이지 않아요.

 

내가 잠이 들면 물풀이라도

흔들고 계셔요, 어머니

 

혼자서는 꿈꾸지

못해요.

ARTICLE

15년이 넘은 시집이다.

죽음의 고비를 넘어서 삶이 보이는 詩들이다.

죽음에 직면했을 때 솔직해지는 인간.

그를 통해 나를 본다.

이 시집을 읽는내내 삶의 낭떠러지 끝에서 발밑으로 보이는 죽음의 도랑을 내다보는 ....

 

순간 델마와 루이스의 죽음이 생각난다.

자의적 죽음과 타의적 죽음의 차이...

델마와 루이스의 죽음을 생각하며, 그 죽음도 또한 용기였을 거라 생각하였다.

 

그럼, 신용선 시인이 선 죽음의 낭떠러지.

그 곳에서 필요한 것은 어떤 마음일까?

용기라고 말자. 체념이라고 말자. 그런 것이라고 말하지 말자.

그가 선 죽음의 낭떠러지, 난 정성이라고 말한다.

삶에 대한 정성, 죽음을 맞는 사람이지만, 삶에 대한 정성을 들인다.

자신의 죽음을 정성껏 생각한다.

죽음뒤에 남아있을 주검을 생각하고, 죽음 뒤에 남아있을 가족을 생각하고, 또 죽음 뒤에 만날 것들을 생각한다.

정성껏 죽음을 생각한다.

정성스런 죽음... 그것은 받아들이는 것과 체념하는 것과는 종류가 다른 것이다.

 

그는 지금 건강하시단다.

제 2시집인 [하산하는 법]이 있다. 그 시집에는 회복한 뒤 다시 맞는 삶에의 정성이 들어있다.

자의적 죽음이든, 타의적 죽음이든 정성껏 맞이하는 정갈한 손놀림이 보이는 시들이다.

 

아프고, 아픈 시들이다.

시를 그저 두드릴 뿐이지만, 난 잠시라도 시인이 되어 죽음 앞에 정성스런 모습을 익히고 싶다.

언젠가 누구나 맞이할 죽음을 위해...

 

 

신용선시인

 

시집명: 두고 가는 길

 

 

독자를 위하여

 

이 책을 만들기 위해 오래된 공책을 찾아 먼지를 털어내다가, 일구다 버린 화전에서 그을린 돌멩이들 보듯, 낯붉어지게 서툴고 그래서 지금도 역시 쓸모가 없는 생각들을 만나기도 했다.

 

덩어리로 굳어있는 물감을 푸어 내가 그리려 애쓰다 한쪽으로 밀어 둔 풀밭에는, 아무런 희망도 없는 것처럼 날개를 접었던 나비가 아직 살아 있었고, 그 너머 강변의 빈 모래톱에는 발목을 다치며 내닫던 내 사랑의 추억들이 폐선처럼 얹혀 있었다.

 

상한 몸으로 서해안 어느 섬에 올라, 물만 마시며 지내던 몇 달 동안의아침의 기억은 지금도 내게 큰 숨을 오래 머금고 있게 한다. 성체와 낡은 건물만 남아있는 그 섬의 성당에서의 고해와 벽면에 양각된 죽음으로 자는 길의 순례는 나에게 고행이었다.

 

나의 삶의 시기에 피어나는 작고 연한 아름다운 것에 더욱 친근히 물들기 위해 나는 내게 있는 힘으로 더 좋은 글을 쓰도록 노력하리라.

낡은 거울이 있는 예집에 들른 뱃사람처럼 혼자 무안하여, 떠다시 어드로든 떠나갈 채비를 하며,

 

고마운 분들을 깊은 마음에 소중히 간직하는 일이 언제나 나를 채우고 넘치도록 기구하며 살아야겠다.

 

使者.1

 

어머니, 어디서

흙탕물이 흘러들어요.

 

거칠 것이 없는 저 흙탕물은

어디를 거쳐서 오기에

저리 당당할까요.

 

발자국이며 개미집, 키 작은

풀잎의

숨부터 삼키고 있어요.

 

혼자 써온 세상의 어디에

숨을 데가

있겠어요.

 

가라앉지 않기 위해

망가진 音階들을

딛고 있을 뿐이어요.

 

자꾸 손을 내밀지 마셔요

거기가 끝이어요, 어머니

 

使者.2

 

어디 그런 곳으로 가요

 

왔던 길을 죄다 더듬어

돌아서

끝집.

은혜로운 말씀이나

눈멀도록 쏟아지는 햇살에도

 

몸 풀러 온 어머니의

깊은 잠

 

使者.3

 

들에 꽃내음 가셔도

잠들지 못하는

그대

 

그리운 불빛의 창에

기대어

흐르는 길을 보라.

 

젖은 가슴으로 지내는

소리꾼이

바람에 섞여 돌아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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