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고백
정희성
오십 평생 살아오는 동안
삼십년이 넘게 군사독제 속에 지내오면서
너무나 많은 사람들을 증오하다보니
사람 꼴도 말이 아니고
이제는 나 자신도 미워져서
무엇보다 그것이 괴로워서 견딜 수 없다고
신부님 앞에 가서 고백했더니
신부님이 집에 가서 주기도문 열 번을 외우라고 했다
그래소 나는 어린애같은 마음이 되어
그냥 그대로 했다.
정희성 시인의 시를 처음 접한 것은, 세상이 피가 터지던 시절이었다.
'저문 강에 삽을 씻고' 라는 시를 첨 보고 난 서정시 인줄 알았다.
세상이 무서운 줄도 모르고,
일하러 다녀오는 우리들의 아버지는 저렇게 저문 강가에서 삽을 씻는구나.
참 부지런한 아버지구나.
힘들기는 한 모양이구나. 집으로 곧바로 가지 않고 혼자 강가에 앉아 담배를 피는 것을 보면...
우리 아버지는 어떤 모습이지?
난 그렇게 생각했었다.
그리고 좀 자라서 아니 어른이라는 이름을 달고서,
그가 김수영의 대를 잇는 참여시인이라는 말을 들었다.
'풀이 눕다' '삽을 씻는다'
그러면 참여시인이구나... 어른이라는 이름을 달고서도 난 그렇게 생각했었다.
나도 할 수 있다.
난 무엇을 할까?
'......'
그가 고백성사를 보았단다.
너무나 많은 사람을 미워하고 증오해서,
그리고 그러느라 자신의 꼴이 말이 아니라서,
첫고백때
다시 처음으로 아무도 미워하지 않던 아이의 모습으로 돌아가기 위해 주의 기도를 외웠단다.
저물어가는 강에 삽을 씻은 시인이
너무 많은 사람을 미워해서 고백성사를 보고 주의 기도를 10번 외웠단다.
이 시를 쓴 정희성시인이 죄를 지었다고 고백성사를 보았단다.
그런데,
난 오늘 아침 이 시를 발견하고, 왜 어깨에 힘이 빠지는 걸까?
난 정희성시인이 또 한편의 서정시를 쓴 것 같다.
그 분은 또 고백성사를 봐야 하나?
저문 강에 삽을 씻고
흐르는 것이 물뿐이랴
우리가 저와 같아서
강변에 나가 삽을 씻으며
거기 슬픔도 퍼다 버린다
일이 끝나 저물어
스스로 깊어 가는 강을 보며
쭈그려 앉아 담배나 피우고
나는 돌아 갈 뿐이다
삽자루에 맡긴 한 생애가
이렇게 저물고, 저물어서
샛강바닥 썩은 물에
달이 뜨는구나
우리가 저와 같아서
흐르는 물에 삽을 씻고
먹을 것 없는 사람들의 마을로
다시 어두워서 돌아가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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