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여자가 세상을 달리 했다.
죽음이라는 것은 세상을 달리 한다는 말. 그런 표현이 있지.
그래. 한 여자가 세상을 달리 했다.
그 여자는 함께 했던 세상의 모든 연들을 끊어버리고 다른 세상으로 간 것이다.
불교의 말대로 하자면,
다시 윤회의 궤를 돌아 다른 모습, 우리가 알아볼 수 없는 다른 모습, 이건 상상을 초월한다, 풀일수도 개미일 수도 닭일 수도, 내 조카가 될 수도,
아니면 해탈의 경지에 이르러 부처님이 되어 이세상과는 무관하게 되던지.
카톨릭의 말대로 하자면,
천당, 지옥, 연옥 이 세 곳 중 어느 세상에 적을 두겠지. 이제 더이상 이 세상 사람들과는
무관해지는, 모두가 똑같은 곳에 살겠지.
그 곳이 천당이든, 지옥이든, 연옥이든, 그 곳에는 자식도 부모도 사촌도 알아볼 필요도 알아보지 못하고 다 똑같은 곳이라니까.. 그런 것은 이세상에서만 존재하는 거라니까.
기독교의 말대로 하자면,
천당과 지옥, 둘 중 한 곳 이겠지.
가장 분명한 곳이지. 50%의 확률이니까. 상상하기가 수월한긴 하다.
한 여자가 세상을 달리해 지금 어느 곳에 있는 지 알 수 없다.
정말 알 수 없다.
남은 사람- 이 표현이 난 맘에 든다.
남겨진 사람, 한 여자가 떠난 것이 아니라, 한 여자를 중심으로 모여있던 사람들이 모두 남았다.
이세상에 남아있다.
왜냐면, 한 여자를 그리워하니까... 남은 사람들이.
남겨진 사람의 시다.
모래의 집, 불의 집
박체천
여섯 살짜리 손녀 정주가 모래집을 짓는다
-여기는 할머니 집이야
까슬한 마음의 모래알들이 모여 하나의 집을 이루었다
-모래집 속에 할머니가 계셔
모래의 집을 들여다보며
문득 불의 집을 떠올렸다
엊그제, 화장장의 분호구에서 아내는 불길 속으로 사라졌다
불의 집으로 거처를 옮겼다
그로부터 내 가슴에도 불의 집이 생겨났다
그, 불의 집은 휴화산처럼 불을 숨기고 있다
혼자 캄캄하게 마음의 집을 지키고 있노라면
불의 집이 나타나고, 불길이 다시 솟아오른다
보이지는 않지만, 저 불 속에 아내가 있을 것이다
땀을 흘리며 만든 모래집을
정주는 다시 뭉개고, 새 모래집을 짓는다
나도 불의 집을 보기만 하곤, 다시 지워버린다
정주와 나는
이렇게 매일 새집을 짓는다
-할머니에게 늘 새집을 지어줄 거야.
어떤 이들에게 아내였고, 할머니인 한 여자.
한 여자는 남편을 남겨두었고, 손녀를 남겨두었다.
이 시를 읽는다.
울고 싶을 때가 있을 것이다.
그리워서 울고 싶을 때가 있을 것이다.
볼 수 없는 누군가가 그리워서 찔끔찔끔 눈물이 짜질 때가 있을 것이다.
이 시를 소리내어 읽는다.
목이 메어옴을 느낀다.
내 목에 강하디 강한 힘줄이 탱탱하니 메어있음을 느낀다.
뻣뻣해지는 힘줄을 타고 오르는 긴 숨이 느껴진다.
그 숨이 단단한 힘줄을 통과할 때즈음이면, 난 울컥하고 눈물을 맘껏 쏟아 부을 수 있다.
내가 찔끔거리던 눈물이 시인의 슬픔에 묻어 펑펑 울 수 있다.
내 그리운 이가 세상을 달리한 시인의 한여자인듯 그렇게 펑펑 울 수 있다.
시는 그런 것 같다.
가을 언덕에서
-동창 김정희를 보내고
신용선
더는 헤어질 수 없다는 것이
악수를 나누고도 돌아보며 한 번 더 웃어주던
초여름 햇살 같던 그 웃음을
다시 볼 수 없다는 것이
믿어지지 않는다.
충청도 어디 저잣거리에서 건어물 흥정을 하고 있는
그대를
보았노라고
히말라야 계곡의 눈 덮인 마을 어귀
토산품 가게에서
수를 놓고 있더라고
제수이트 수도회가 만든 순례자를 위한 집
뜨락 돌계단에
앉아 있더라고
누가 좀 우겨주었으면 좋겠다
우리 중에 덜 늙어 저 혼자
곱더니
견딜 일 다 견디고 알맞게 무디어져 이제야 일없이
우리 몫의 삶을 시작할 나이에
홀연 떠나간 내 친구 김정희
그대가 버린 이후 볼품이 없어진 세상, 시들어
까만 꽃대궁으로 남은 늦가을 언덕에
맑은 술 한 잔을 붓나니
거기가 어디이든 그대 편안하길 빌며
한 여자에게 남겨진 또 한 사람.
친구라네.
오랜 친구라네.
믿을 수 없다네,
가족이 아니라 한 여자의 부재가 믿기었다가, 아니었다가 친구의 죽음은 그런건가보다.
항상 내 옆에 있었던 것은 아니니
어느 곳에 있을 것이라고 믿을 수 있는 것.
아니라는 것을 알면서도 친구의 그리움은 그렇게 우기며 서서히 말라가는 것.
난 친구의 죽음을 슬퍼하는 것, 그런 것 있겠지.
하지만, 친구가 친구의 죽음을 보고 오열을 하는 것은 보지 못했다.
친구는 그저 친구가 세상 다른 곳으로 갔을 때, 그 땐
남겨진 친구의 가족을 위해 제 울음을 참는 것, 그리고 좀 시간이 지나면
"내 친구 어딨지?" 하고 찾는 것. 그런 것이 친구인 것 같다.
어릴 적에는 몰랐지.
친구는 아프지 않는 줄 알았지.
친구는 그냥 잊는 건 줄 알았지.
"그때 슬펐었어?" 하고 물은 적이 있다.
세상을 달리한 친구의 죽음을 본 친구에게 난 그렇게 물은 적이 있었다.
왜냐면, 남은 친구가 울지 않아서... 난 그 친구가 울지 않아서 ...
하지만 ,
남겨진 친구는 십몇년이 지난 어느날 세상을 달리한 친구가 보고 싶어 어느 강가로 갔다왔단다.
그때 내가 그렇게 물었었지.
"그때 슬펐었어?"
아직도 남겨진 친구는 나의 물음에 대답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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