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見聞錄

대학로에 생긴 서점 이음

by 발비(發飛) 2005. 10. 19.

이름하여 대학로인데, 서점이 한 군데도 없었다.

방통대 길 건너편에 있는 방통대교재용을 주로 팔고 있는 곳이 서점의 전부였다. 대학로인데..

 

 

혜화역 4번출구 건너편, 1번출구 오른쪽으로 유정낙지집이 있다.

그 지하에 [이음]이라는 서점, 음반점이 새로 생겼다.

 

얼마 전부터 유정낙지건물 지하에 공사를 했었다.

벽을 뚫어 문을 내고 계단을 만들고, 샷시를 달았다.

그 옆을 지나면서 공사하는 것을 보고는 유정낙지집이 장사가 잘 되어서 식탁수를 늘이려나보다... 그렇게 생각을 했다.

 

일주일쯤됐나?

현수막으로  간판을 대신 걸었다. 무슨 아트란다.

그래서 난 옆의 book은 보지도 않고 그냥 음악하는 사람의 녹음실 정도인지 알았다.

(계단 옆으로 LP판이 장식이 되어있어서)

 

그런데,,,, 오늘 어둔 밤 퇴근길,, 밖으로 비친 불빛을 보니 책들이 진열되어있었다.

그제서야 book이 보인다, 그렇구나!

볼 일을 마치고  다시 그 서점으로 갔다. 대학로에 새로 생긴 서점을 구경하러 들어갔다.

 

 

깔끔한 계단, 좀 가파른 계단으로 내려간다.

그 길은 무슨 카페를 들어가는 기분이었다. 느낌 양호.

 

 

헉! 이게 뭐야?

서점이라는데, 이런 서점 본 적이 없다.

일단은 휑하다.

이렇게 휑한 개업한 서점을 본 적이 있는가? 뭔가 이상하다.

어쩜 서점이 아닐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불현듯 스친다.

(색보정을 해서 그렇지 좀 더 휑하다. 보정 하지 않은 것으로 바꿔야겠다.)

 

 

 

서점 안으로 들어갔는데도, 주인님은 내가 들어온 것도 모르고 음악에 빠져있다.

'싸이몬 & 가펀클'

(무슨 영화였더라. 아이와 좀 나이든 음악 매니아의 이야기가 나오는... 레이찰스의 노래를 거기서 들었는데..  아무튼 그 영화의 남자배우가 생각났다. )

 

주인님이 나를 보았다.

 

"천천히 책 보세요. 전 음악 좀 들을께요, 볼륨 안 줄여도 되죠?"

 

속으로 생각했다.

 

'난 나에게 관심을 안 보이면 좋죠. 맘껏 구경할 수 있으니까..'

 

그리고

 

"사진 찍어도 돼요?"

 

"그러세요."

 

 

서점의 반은 오랜 LP판, 그리고 CD들이다.

앞으로도 쭉 그럴거란다.(뒤에 들은 이야기다)

진열장의 자리가 많이 비어있다.

채워지겠지.

진행형인 채 개업한 서점

주인님의 약간은 특이한 성격이 보이기 시작한다.

 

 

반대편으로 책이 꽂혔다.

그런데. 모두 인문서적들이다.

잡지 없음, 소위 말장난하는 그런 이상한 수필류들 없음.

사진, 미술, 문학, 그런 류의 책들로 꽉 차있다.

시집은 창비, 문지, 시학, 아무튼 그런 출판사 것들로만 1번부터 끝까지 다 구비되어 있었다.

민음사의 세계문학전집, 열음사의 총서류, 한길사의 총서류, 학고재의 미술서적. 또 뭐가 있더라..

소위 안 나가는 책들로만 꽉 차 있었다.

 

주인님이 다가온다.

 

"커피 드실래요?"

 

성의가 ....해서 마셔야 할 것 같다."네"

 

"제가 좋아하는 책들로만 갖다놓았어요. 제 나이가 좀 됐는데,

이 나이에 보기 싫은 책들로 갖다놓기 싫어서요.

 제가 읽어서 좋아하는 책들로만 있으니, 그 책 좋아하는 사람들로만 모이겠지요.

모두들 걱정하는데, 안되면 이 책 다 싸들고 산 속으로 들어가 책이나 읽으면 되죠. 뭘!

그런 생각이었어요."

 

묻지도 않았는데,

책에 대한 설명으로 진지하다.

우와~ 책이야기를 하는데, 엄청 놀랬다. 인간이 책을 그렇게 많이 읽을 수도 있구나.

난 내 동생만 책을 많이 읽는 줄 알았는데, 와우~

내가 열심히 잘 들으니깐 더욱 힘을 내신다.

 

"정말 이 서점을 찾아오는 사람들이 읽었으면 좋겠는 책은요, 여기서 여기까지 있는 책은요.

읽히고 싶어요."

 

그런 맘이 어떤 맘인지 알기는 할 것 같다.

엉뚱하게 내가 묻는다.

 

"생활고는 문제가 안 되시나봐요?" 아무튼 주책이다.

 

"그냥 이젠 이렇게 살려구요." 명쾌한 대답이다.

(속으로 '이 분이 원하는데로 살게 해주세요.비나이다.')

 

그러더니, 실례가 되지 않는다면 책을 권해주고 싶단다.

세익스피어의 [소네트]( 세익스피어의 시집이 있는 줄 첨 알았다. 아 어찌하리오)

르네 바르자벨의 [야수의 허기]를  권해주고 싶단다.

 

소네트는 시로 세익스피어를 알려면 읽어야 하고, 무엇보다 피천득님이 번역을 하셨단다.

샘터출간이다.

 

그리고 야수의 허기는 1960년대에 출간된 책이라고는 믿을 수 없는 놀라운 세계가 있단다.

이 책을 읽으면 놀라운 세계를 경험하게 될 거란다.

문학동네출간이다.

 

우선 강추는 이 두권..

몇 권의 책을 말했지만, 난 이 두권만이라도 우선 읽고 싶다.

다른 눈을 가진 사람이 권해 준 책,

나와 다른 사람은 어떤 생각에 열광하는지 엿보고 싶었다.

 

돌아오는 전철안에서 [야수의 허기]를 읽었다. 첫장 둘째장은 이게 뭔 말인지 싶었는데,

알지 못하지만,

뭔가 새로운 방향으로 눈이 떠지는 듯한 묘한 그런 느낌을 받았다. 

 

읽어야지...

 

 

 

이 서점에는 LP판으로 음악을 틀어두었다.

예민하지 않아 무엇이 어찌 다른 지는 모르지만, 아주 편안한 서점이다.

잔잔한 음악이 아니라, 음악감상실에서 듣던 그 음악이다.

 

두 권의 책을 계산하고 나오면서

 

"차라리 천원짜리 커피 팔면서 책카페로 만들면 어때요? 책이 좀.... ,

그냥 부담없이 읽고 가게요,"

 

"부담없이 읽고 가세요. 500원 깎아 드릴까요?"

 

"아니요."

(500원 보태주고 싶었다. 버티어야 한다. 좋은 곳으로 오래 남아라.다시 한번 비나이다.^^)

 

반가운 만남이었다.

대학로에 드디어 서점이 생겼다.

대학로에 어울릴만한 서점이 생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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