할아버지의 말똥
김동호
"할아버지 왜 혼자 다니세요?"
"......"
"심심하지 않으세요?"
"......"
얼른 봐서는 열너댓 쯤 돼보이고
도톰한 가슴으론 그 보다 더 돼 보이는 소녀들이
산길에서 바람같은 구름으로 말을 걸어온다.
"심심하지만 할 수 있니. 혼자 왔으니 혼자 가야지"
"......"
"너희들은 같이 왔니?"
"그럼요"
"갈 때도 같이 갈 거고?"
"그럼요."
풀섶에서 꿩이 한 마리 숨었다가
푸드득 날아간다
앉았던 자리가 꽤나 따뜻하리라
"친해 두어야 한다"
"......?"
"죽으면 맡을 줄 아니?"
"......"
"자식들이 맡을 줄 아니?"
"......"
"어림도 없다."
"......"
"갖다 버리기에 바쁠 걸"
"......"
"이렇게 먼 곳으로 말이다"
"......"
한동안 조용하더니
그 중 제일 조용한 바람, 한 자락이
피식 언 흙덩이를 깨문다.
"에이! 나이도 많지 않으시면서..."
까르르 구름은 다시 피어오르고
하늘가 어데선가 별똥이 하나 날라와
나의 어릴 적 멍석 위에 떨어진다
1.말똥?
*말의 똥... 허튼 소리, 그런 뉘앙스?
*말똥...작아진 하찮게 되어버린 노인?
*떼굴떼굴 굴러다니는 그런 말똥...나도 너같은 적이 있었다. 굴러다니는 삶, 내지는 인생?
김동호시인님! 어떤 거죠? 이것도 저것도 아닐것 같은 불길한 예감, 자신없음.
어떤 것이든, 그리고 시인의 뜻과 맞든 맞지 않든 그저 '말똥'이라는 말이 입에 남아돈다.
뱅글뱅글 돈다.
2.대화
"(뭐라고 뭐라고 말한다)"
"(뭐라고 뭐라고 생각한다. 또는 아무 생각이 없다)"
"(뭐라고 뭐라고 말한다)"
"(뭐라고 뭐라고 생각한다. 또는 아무 생각이 없다)"
"(뭐라고 뭐라고 말한다)"
"(뭐라고 뭐라고 생각한다. 또는 아무 생각이 없다)"
그리고 순서가 바뀐다.
"(뭐라고 뭐라고 말한다)"
"(뭐라고 뭐라고 생각한다. 또는 아무 생각이 없다)"
"(뭐라고 뭐라고 말한다)"
"(뭐라고 뭐라고 생각한다. 또는 아무 생각이 없다)"
"(뭐라고 뭐라고 말한다)"
"(뭐라고 뭐라고 생각한다. 또는 아무 생각이 없다)"
그 중 제일 조용한 바람, 한 자락이
피식 언 흙덩이를 깨문다.
그러더란다.
대화. 소통, 단절, 텀,
이런 것들때문에 우리가 된다. 그 큰 고비 작은 고비를 넘기며 우리가 된다.
다리가 부질해 넘지 못한다.
심장이 약해 넘지 못한다.
괜히 넘는 것을 싫어해서 넘지 못한다.
그런 것들은 말할 필요도 없다.
그저 한 발을 디뎌 넘으면, 그냥 아무 대답을 주지 못하더라도 가만히 있으면,
언 흙덩이를 깨물어 녹일 수도 있는 것이다.
누구의 옆에 있더라도, 그저 옆에 있어본다.
그가 하는 말이 알아듣지 못하는 외국어같더라도, 그저 옆에 있어본다.
그냥 언 흙덩이가 녹을 수도 있다.
여유가 느껴지는 시다.
이 분, 아마 음성이 나직할 껄!
이 분, 아마 나직한 음성으로 조곤조곤 말씀 잘 하실 껄!
어쩌다 이 분의 시가 내 손에 걸렸지?
좋은 날이다.
相剋과 相生
대지의 불을 비가 꺼준다
머리의 불을 잠이 꺼준다
그믐이 가까워오면
다시 애기 얼굴이다
가슴의 불을 시간이 꺼준다
그렇구나!
맞다. 그렇구나!
필 받은 김에 오늘 읽은 김동호시인의 시집 [노자의 산]에 나오는 말들...
과거엔 있었지만 지금은 없는 것
그런 것의 가장 아름다운 것들을
우리는 사금처럼 가라앉히며 살아간다.
-독자를 위하여-
시란 어떤 특정한 목적을 갖고 덤벼드는 작업이 아닌 것 같다. 잉어가 좋다고 잉어만 잡는 것이 시는 아닌 것 같다. 무엇이 잡힐지는 모르지만 그냥 잡아보는 것이다. 송사리가 됐건 피래미가 됐건 나의 그물안에 들어오면 다 나의 사랑이다.
(......)
흐음~
시인이 시를 쓰는 것이 그렇다면, 내가 시를 읽는 것도 그렇다.
시인이 잉어을 잡으라고 넘겨준 낚싯대지만,
난 때로 송사리를 잡고 피래미를 잡고 때론 잉어도 잡는다.
잉어를 잡지 않더라도 내게 온 시들은 다 나의 사랑이다.
그 시를 읽는 순간 모두 나의 삶에 밀착된다. 후시딘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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