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읽히는대로 詩

[권혁웅]시집. 마징가 계보학

by 발비(發飛) 2005. 10. 13.

*시가 아니다. 시집의 목차이다.

 

제1부 선데이 서울, 비행접시, 80년대 (약전)略傳

 

선데이 서울, 비행접시, 80년대 (약전)略傳

마징가 계보학

애마부인 약사

국수

광기의 역사

밀실의 역사

미키마우스와 함께

요괴인간

투명인간1

투명인간2

가위손

모순

수면

밤으로의 긴 여로

 

제2부 스파이더맨

 

스파이더맨

드래곤

드라큘라

쑥대머리

독수리 오형제

수인선 이야기

나폴레옹 이야기

지문

수상기(手相記)1

수상기(手相記)2

수상기(手相記)3

바늘

목련의 알리바이

고장난 자전거

 

제3부 불한당의 세계사

 

슈퍼맨

배트맨

엑스맨

아톰

원더우먼과 악당들

불한당의 세계사

떡집을 생각함

만리장성을 생각함

신발에 담겨 있는 것

당신은 만지지 않아서 내가 노래하는 건 아니죠

괴수대백과사전

돌아온 외팔이

윤회에 관하여

첫눈

 

제4부 내게는 느티나무가 있다

 

내 사랑 유자씨

떨어져나가 앉은 산 위에서

무덤의 역사

성의 역사

황금박쥐

고스톱에 관한 보고서

돈 워리 비 해피

벗어둔 외투

신파조(新派調)

해는 보문사에서 뜨고 한성여고로 진다

세상의 끝

방과에 고인 그리움

산등성이 마을의 불빛들

내게는 느티나무가 있다 1

내게는 느티나무가 있다 2

 

 

시인의 말

 

나는 오랫동안 달동네에 살았다.

내게 1980년대의 후반부가 독제와 민주화운동과 시의 시절이었다면,

그 전반부는원죄의식와 주사와 첫사랑의 시절이었다.

나는 거기 살던 내내 언젠가 탈출기를 완성하겠다는 생각으로 살았다.

거기서 벗어난 지 십오년이 되었는데 이제는 그곳이 나를 벗어나려 한다.

그 곳 서울시 성북구 삼선동 일대가 재개발에 들어갔기 때문이다.

내가 알던 이들은 이미 뿔뿔이 흩어졌다.

그들은 지금, 어디서, 무엇을 하며 살고 있을까?

그 곳의 소로들과 사람들과 삶을 복원하고 싶었지만, 그것이 탈출기의 내용은 아니었을 것이다. 나는 주름-사람들의 동선이 그어놓은 -을 잔뜩 품은 어떤 장소에 관해서,

끊임없이 현재로 소환되는 사람들에 관해서,

겹으로 된 삶에 관해서 말하고 싶었다.

 

내가 기억에 관해 이야기 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왜, 시집의 목차를 두드리고 싶은가?

목차를 보고 놀랬으니까...

시는 보지도 않았는데, 우선 목차를 보고 놀랬으니까.. 재미? 아니다. 그건 낯섬이다.

그리고 맨 앞에 나온 한 편의 시를 읽는다.

 

선데이 서울, 비행접시, 80년대 약전

 

나의 1980년은 먼 곳의 이상한 소문과 무더위, 형이 가방 밑창에 숨겨둔 선데이 서울과 수시로 출몰하던 비행접시들

 

술에 취한 아버지는 박철순보다 멋진 커브를 구사했다 상 위의 김치와 시금치가 접시에 실린 채 머리 위에서 휙휙 날았다

 

나 또한 접시를 타고 가볍게 담장을 넘고 싶었으나... 먼저 나간 형의 1982년은 뺨이 석 대에 끝났다 나는 선데이 서울을 옆에 끼고 골방에서 자는 척했다

 

1984년의 선데이 서울에는 비키니 미녀가 살았다 화중지병(畵中之病)이라할까 지병(持病)이라 할까 가슴에서 천불이 일었다 브로마이드를 펼치면 그녀가 걸어나올 것 같았다

 

1987년의 서울엔 선데이 서울이 따로 없었다 외계에서 온 돌멩이들이 거리를 날아다녔다 TV에서 민머리만 보아도 경기를 일으키던 시절이었다

 

잘못한게 없어서 용서받을 수 없던 때는 그 시절로 끝이 났다 이를테면 1989년, 떠나간 여자에게 내가 건넨 꽃은 조화(造花)였다. 가짜여서 내 사랑은 시들지 않았다

 

후일담을 덧붙여야겠다. 80년대는 박철순과 아버지의 전성기였다 90년대가 시작된 지 얼마 안되어 선데이 서울(1991)은 폐간되었고 아버지는 외계로 날아가셨다(1993) 같은 해에 비행접시가 사라졌고 좀더 있다가 박철순이 은퇴했다(1996) 모두가 전성기는 한참 지났을 때다.

 

맨 앞에 나온 시는 선데이서울, 비행접시, 80년대 약전이라는 시다.

결코 재미있을 것이 없었던 그 때, 재미있었던 것들.

재미...

그건 잊는 것이다.

재미있는 것은 지금을 잊는 것이다.

참 재미없던 시절을 선데이 서울과 비행접시 때문에 버틴 시인의 모습,

 

난 그 재미없던 시절에 무엇을 했을까... 흐음 생각해보자.

난 그 재미없던 시절에 밤을 잊은 그대에게를 듣고,

산울림을 듣고.

아주 가끔씩 노찾사의 노래도 들었구나...

 

참 재미없던 때, 재미없다고 울 수도 없었을 때,

가끔은 옆 친구들이 대신 터트려 준 최루탄 사과탄에 기대 펑펑 울었던 적이 있었구나...

한번도 걸어볼 수 없었던 아스팔트 4차선을 친구들 덕분에 걸어본 적도 있었구나..

참 재미없었던 때구나.

모든 걸 기대고만 할 수 있었던 거구나.

 

이제 이종환도 아니고, 이문세도 아니고,,, 밤을 잊은 그대에게를 도저히 들을 수 없다.

얼마전 산울림 다시 듣기를 샀다, 그들의 노래를 들으며 난 기억력테스트 중이다.

몇 곡의 가사를 기억하고 있을까.. 고백/ 딱 한 곡, 청춘

노찾사,,, 얼마전 아니, 몇 년전 노래방에서 '솔아솔아' 불렀다가 몰매맞는 줄 알았다.

그래서 바로 바꿔 불렀다. '사랑밖엔 난 몰라'로.... 다들 좋아하더군!

 

권혁웅의 시를 읽으며,

참 재미없었던 때를 기억하게 했다. 그건 한참 지난 일이다.

무지 무지 무지 재미없었던 때, 무지 무지 무지 재미없어서

무지 재미없었던 일로만 다 기억이 나는 나?

 

이어지는 그의 시들.. 어떨까? 아직 한 편 밖에 읽지 못했다.

지금 집으로 가면서 다음 것도 읽어봐야겠다.

 

지금 그때가 지났다.

 

모순

 

1

 

나는 아수라 백작의 팬이었다 고철 덩어리 마징가 Z나 봉두난발의 헬박사, 제 머리를 옆구리에 끼고 다니는 브로켄 백작 모두 아수라의 매력을 앞설 는 없었다. 아수라는 본래 제석천과 싸운 전투의 신이다 양성구유인 그는 두 명의 성우를 데리고 다녔고 왼쪽에서 등장할 때와 오른 쪽에서 등장할때 다른 목소리를 냈다 좌익과 우익을 그에게서 배웠다

 

2

 

그다음엔 헐크가 있었다 약을 지어먹은 데이빗 배너박사는, 그 부작용으로 분노로 몸을 맡기면 헐크로 변했다 늘 웃옷만 찢어발기는 게 신기했다 긴 대사는 전부 대이빗이 맡았고 헐크는 이두박근을 씰룩거리며 그저 으르렁거렸을 뿐이었는데 우리는 그가 나올 때마다 열광했다 안팎의 경계가 거기에 있었다 정장바지가 쫄바지로 변하곤 했다

 

3

 

육백만물의 사나이에 관해서도 말하고 싶다 스티브 오스틴 대령은 사고로 한쪽 눈과 팔, 두 다리를 잃었다. 거액을 들여 망가진 몸을 복구한 후에, 그는 자주 왼쪽 눈썹을 들어올리거나 슬로 모션으로 달리곤 했다 제 안에 제 것 아닌 걸 데리고 사는 사람, 그를 흉내내느라 초당 9.8미터를 더한 속도로 옥상에서 뛰어내린 아이들이 여럿이다

 

4

 

내 속에 내가 너무 많다고 노래했던 시인과 촌장은 한 사람이다 나도 그랬다 아버지가 술을 마시고 동네방네 내 이름을 부르며 귀가할 때마다 나는 출가한 붓다였고, 샴쌍둥이처럼 그녀의 몸에 세들어 살고 싶을 때마다 나는 늑대인간이었으며, 출근하기 싫어 장판에 들러 붙어있을 때마다 나는 그레고르 잠자였다 지금도 이 글을 쓴 나는 ......이라고 쓰는 나는......

 

 

웃을 시가 아닌 것이 분명한데,

난 이 시를 전철에서 읽으면서 이상한 여자처럼 웃어버리고 말았다.

참을 수 없는 웃음. 그 정체는?

하------!

하는 그런 느낌이었다. 시인의 기발함에 난 항복하고, 시인의 깊이에 항복하고,

세상을 보는 눈에 경탄을 금치 못한다.

시집'마징가 계보학'40페이지를 읽는 동안 제일 많이 웃었던 시다.

여러 시들이 무게를 잃지 않으면서도 웃게 만든다.

그런 것을 해학이라고들 하나....

정말 재미있는 시집이다.

나의 계보도 자꾸 기억하게 하는 그런 타임캡슐같은 시집이다.

 

애마부인 약사

 

1대

 

고개를 좌우로 꼬며 말을 달리는고난도 기술을 선보인 안소영(1982)에 관해선 이미 말한 바 있다 침배에 누운 그녀가 말을 탄 꿈을 꾸는 것인지, 말을 모는 그녀가 침실 꿈을 꾸는 것인지를 중3이 다 말할 수야 없었지만, 동시상영관은 돌아온 외팔이와 안소영때문에 후끈 달아올랐다

 

2대

 

오수비(1983)는 바다로 갔다 그녀는  젖은 몸으로, 몰려오는 파도를 다리 사이로 받으며, 파도보다 큰소리를 지르곤 했다 파도야 어쩌란 말이냐 날 어쩌란 말이냐 청마(靑馬)의 시구를 그때 배웠다 고1때 일이다

 

3대

 

김부선이 말죽거리 떡볶이 집에서 권상우를 유혹할 때92004)나는 기절할 뻔했다 나도 권씨지만 그녀를 피하고 싶은 마음은 조금도 없다 씨름선수 장승화의 들배지기에 자지러지는 그녀(1985)를 본 고3때부터 지금까지, 내내 그렇다

 

4대

 

이후 애마부인(1990~)에 관해서는 잘 알지 못한다 나는더이상 연소자가 아니었으니까, 도처에서 여자들이 말 타고 출몰했다는 게 맞는 표현이다 다만 김호진(1990)처럼 ROTC애마보이가 되고 싶기는 했다 그 후로는 나도 애마도 주마간산이었다

 

9대

 

진주희(1993)의 운명처럼 말이다 아, 어찌하여 애마의 도(道)는 일본으로 흘러갔는가? 해견부인91990)은 또 뭐란말인가? 드라큘라 애마(1994), 애마와 백수건달(1995), 애마와 변강쇠(1995)에 이르기까지, 우리는 끝없는 연애담과 지리멸렬 속으로 빠져들었다

 

외전(外傳)

 

애마는 파리에도 가고(1988) 집시도 되었지만(1990) 정작 애마부인을 가르친 정인엽은 지금 삼겹살 주인이다 애마 아래 남편, 애마 위에 애마보이, 그 위에 나......우리는 그렇게 불판 위에서, 납작하게, 지글거렸다 어마 뜨거라, 소리 지르며 한 시절을 지나왔다

 

 

내 이름은 소영이다.

 

난 안소영때문에 바로 그녀때문에 내 이름을 말하기 싫었던 때가 있었다.

나의 이름을 말하면 누구나 '안소영~" 하며 나를 다시 봤다.

난 그녀가 한참 날릴때 아주 순진한 여학생이었다.

안소영은 나에게 금기의 대상, 불편함의 대상, 아니 잘못함의 대상,

안소영은 생각해서는 안되는 그런 존재의 이름이었는데, 나의 이름이 소영이다.

 

지금도 가끔은 그런 사람을 만나는데, 내 이름을 별로 좋아하지 않는 이유에 안소영도 포함된다.

여자들이야 애마부인 시리즈를 볼 일이없었지만, 난 더더욱 싫었다.

 

그런데 시인의 이 시를 읽으며, 그런 시절이 있어서 다행이다 싶다.

일탈의 대상으로서 애마부인이었을 것이다.

말이 되나?

애마부인은 사랑을 원하는 남들의 돌파구였을지도 모른다.

특히 학생때라면 더욱 그랬을 것이라는 생각이든다.

경험이라는 것은 그 당시로는 동시상영극장에 몰래 들어가야 하는  학생이지만,

그 일을 가지고 시 한편 우려낼 수 있는 그런 힘을 가진 것이다.

그 경험이 좋은 것이든 나쁜 것이든..

아무튼 '애마부인 약사' 이렇게 재미있는 시의 바탕이 될 수 있다.

그 뒤로 그렇게 많은 애마부인이 있었다니.... 말을 타고 달리는 여자가 그리 많았다니...

 

몸의 안팎으로 홍등을 켜두어 뜨겁던 시절이 가면

배가 좀은 나온 채 삼겹살을 먹고 있을 그때의 우리들이 지금 어울리고 있다.

 

나폴레옹 이야기

 

알프스산맥을넘는 나폴레옹을 1982년, 동아 완전정복에서 만났다 내 사전에 불가능은 없다고 그는 외쳤으나 연합군 가운데는 산을 넘지 못한 이들이 적지 않았다 연합고사를 목전에 두고, 고지가 바로 저긴데, 친구 여섯이 낙오했다

 

이듬해 만난 나폴레옹은 빵장수였다 삼선교에 자리한 나폴레옹 제과점, 회색교복 바지 줄여입은 남자애들과 검은 색 교복 치마 올려 입은 여자애들이 그의 베이커리에 가득했다 조끼 안주머니에 한 손을 넣어 슬슬 쓰다듬던 남자, 배부른 남자였다

 

대학 때 만난 나폴레옹은 쎅시했다 반쯤 벌린/ 다문 입과 반쯤 감은/ 뜬 눈(사선은 루즈와 아이새도의 경계를 말한다) 착 달라붙은 옷......(말줄임표는 필설로는 도저히 ... 란 뜻이다) 김완선으로 분한 그는 식이섬유 음료를 파고있었다

 

그 후로는 술통속에서 그를 꺼내주곤 했다 하지만 그는 여전히 작은 거인이었다 그는 인기가 좋았다 나는그 비결이 궁금했지만, 그와 나의 공통점은 "작은"이었지 "거인"이 아니었다 겔포스 전속모델로 딱 좋았을. 힘 좋고 오래가는, 그리고 지금도 자그마한

 

이렇게 말하면 웃긴가?

정말 강력한 이빨이다. 이빨로만 취급하면 안 되겠지만,

권혁웅시인과 술을 한잔 한다면, 난 말을 한마디도 하지 못할 듯 싶다.

시란 무엇인지 모르지만, 이 모두가 시라면, 시도 강력한 이빨이 있어야 가능할 거라는 생각이 든다. 그가 쓴 기억이 아닌 다른 시를 읽고 싶어지기 시작했다

 

 

'파문'은 그가 이 시집 말고 무슨 시를 썼나하고 검색했더니 나온 시다. 궁금하니까...

 

파문

 

권혁웅

 

오래 전 사람의 소식이 궁금하다면

어느 집 좁은 처마 아래서 비를 그어 보라, 파문

부재와 부재 사이에서 당신 발목 아래 피어나는

작은 동그라미를 바라보라

당신이 덜어온 동그란 행복 안에서

당신은 늘 오른쪽ㅇ 아니면 왼쪽이 젖었을 것인데

그 사람은 당신과 늘 반대편 세상이 젖었을 것인데

이제 빗살이 당신과 그 사람 사이에

어던 간격이 만들어 놓았는지 궁금하다면

어느 집 처마 아래 서보라

동그라미와 동그라미 사이에 촘촘히 꽂히는

저 부재에 주파수를 맞춰 보라

그러면 당신은 오래된 라디오처럼 잡음이 많은

그 사람의 목소리를 들을 수 있을 것이다. 파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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