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읽히는대로 詩

[김규동] 풍경

by 발비(發飛) 2005. 10. 17.

 

 

김규동시인!

언젠가 ebs에서 이 분이 나오시는 프로를 본 적이 있다.

너무 작은 체구,

몸 전체가 울리는 듯 말씀하시는 음성,

그리고 온 몸이 뇌인듯 몸으로 생각하는 듯한 몸짓들.

 

오늘 풍경이라는 시를 접하며,

강단있던  그 분의 모습보다는...(내 생각에 강단이라 것은 강함 딱닥함, 돌출의 의미를 가진다)

가라앉은 혹은 올라서 있는..

그런 모습의 시인을 본다.

 

저 바다 밑까지 내려가 미동도 없이 바닥에 가라앉아서, 물고기들과 산호들의 움직임을 보듯이

혹은 저 하늘 높이 구름보다 더 높이 올라앉아 땅위를 딛고 사는 생물들을 보듯이

그렇게 보고 있는 시인의 모습을 본다.

시간을 초월한 시인의 눈길을 따라간다. 하지만 숨가쁘지 않다.

남북, 동서, 과거, 현재, 역사, 현실...

이런 극들을 오가면서도 숨가쁘지 않음은 시인이 미동도 하지 않아서 일 것이라는

혼자만의 추측을 한다.

 

뭐가 당기는 지 모른다.

다만 무슨 말인지는 모르지만, 그를 따라 움직인 곳의 반경이 너무 넓은 것은 알겠는데,

같이 따라간 내가 숨가쁘지 않음이 신기하다.

얇은 숨결이 느껴진다.

 

한 모더니스트의 더는 모던하다는 말이 사용하지 않는 지금,

난 그의 말들을 알아듣지 못하면서도 편안하다.

마치 바로크음악이 누구를 위해 무엇을 위해 만들어졌는지 전혀 모르면서도

편안함을 느끼듯이.. 그렇게... 이름도 제목도 기억할 필요없이 그저 좋은..

 

사진..또한 멋지다!

 

 

 

 

 

풍경

 

김규동

 

호남평야의 달

바람은 서남으로 흘렀소

김포 해질녁의 새의 날음 같은

스산함이

차창으로 스치오

 

개혁을!

거추장스런 육체로부터

정신을 건져 보느라고

오토바이 같이 부르렁거리며

언덕을 오르던 사람들이

여럿 그만 잠들어 버렸소

 

탕탕상제 하민지벽

질위상제 기명다벽

 

이 바쁜 세상에

찻간에서

시경 읽는 근대인을 만나다니

 

천생증민 기명비심

미불유초 선극유종

 

바퀴는 역마다에서

끽끽 비명을 지르오

 

이북에 다녀왔다는

한 젊은이가

묘향산 백두산을 설명하다보니

그만 내려야 할 정거장 놓쳐버렸소

 

여보슈 젊은이

다음번 또 가지면

거 집단농장 한번 보고 오랑이

토지개혁한 지 60년인데

- 이건 평안도 노인의 당부라오

노인이 계속했소

 

인민은 굻고 있다는데

백두산 묘향산이 어쨌다는거여

답답해서 원 하며

쯧쯧 혀을 찼다오.

 

 

 

 

어떤 낙화

 

지금은 버림받은 여정에

일직선으로 일어서는

저 흰 빛깔의 스산한 풍경은 무엇일까

백 번도 천 번도

순박한 마음을 죽이며 믿었던 가냘픈 선은

무너져 가는 리듬 속에만 남고

창유리에 엉겨붙는

무의미의 암시가

미지의 어둠을 알려주고 있다

이리도 길고 음산한

절망의 잠에서 깨어나는

낯익은 바람 소리는

우리의 이성과 욕망 사이에서

무슨 말을 떠올려야 할까

차바퀴 소리모양 멀어지는

내 의식 속의 허구와 무질서

흔들리는 신념의 외곡에

낡은 성벽처럼 늘어서는

기괴한 이 몸짓은

우리의 관계를 더욱 모호하게 한다

너는 빈 컵이요 단조로운 눈썹이다

나는 존재하는 것의

이름을 부를 수 없는 벙어리다어둠이 우리의 언약과 배신을

씻어버릴 때가지

버려진 네 욱신의 폐허에 기대어

원색의 풍경을 바라보고 있으면 족하다

표백된 수도관의 물소리처럼

은밀한 지성을 키워가는

죽음의 축제를 향하여

삐걱이는 잡음을 견디면 된다

수천 만 개의 바늘을 숨기고

불결한 이 골목길을 빠져나가면 된다

번개같이 빠른 암유를 품고

이 능선을 달리면 된다

모든 메시지와

정신의 위기를 알리는 말들은

경직된 이기심처럼

우리의 탄탄대로를 밝혀주리라

가볍게 어깨를 스치며

현실의 꽃이 지듯이

너와 나는 조용한 낙화가 되어야 한다

 

 

아~ 이런 느낌을 모더니즘이라고 할 것 같다.

이 느낌.. 어떻게 표현해야지.

혹 뜬 구름같기도 하고, 혹 나 피부같기도 한 이 느낌.

100번을 소리내어 읽으면, 그저 입에 달라붙을 것 같은 이 느낌.

 

가사를 알아듣지 못하는 팝송을 듣듯.

한글 자막도 없는 채  대사을 알아듣지 못하는 프랑스 영화를 보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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