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읽히는대로 詩

[박진성] 식목제 외 1

by 발비(發飛) 2005. 10. 6.

식목제

 

박진성

 

그대를 기다리는 집에 나무를 심어요 病이 깊어 나는 사월의 바람이 무섭지요 나의 집에 그대가 당도할 때도 가을나무는 여전히 단풍입니다 그래서 겨울 봄 가을 여름 나무를 심어요 어떤 나무는 벌써 울울창창이고 동영상으로 그대는 웃지요 그대가 없는 자리에 네이버 노을을 걸고 엠파스 바람을 퍼다 놓지요 한 삽 한 삽 통째로 숲을 가져와도 그대가 숲에 누울 수는 없습니다 노이로제나무, 내가 오래도록 비밀로 저장해놓은 화계사 수령 사백년 은행나무를 공개할까요 나의 화계사 노이로제나무를 핸드폰에 담을 때 그대는 나무에 기대어 있었지여 당신도 심어요 기다림이 노이로제로 바뀌는 울분도 심어요 겨울 봄 가을 여름 내가 퍼온 나무들은 불멸이지요 노이로제나무가 이제 수명을 다하기 전에 사랑도 심을 수 있을까요 그건 다음 식목일을 위한 나의 숙제입니다 그대를 기다리는 블로그에 노이로제를 심어요 오늘은 식목일이잖아요

 

그의 목숨이라는 시를 읽으며 맘이 저렸었다.

오늘 다시 그의 시를 읽는다. 식물인 그와 나의 이야기를 한다.

 

비가 내린다. 다시 비가 내린다. 또 비가 내린다.

가을비는 어떤 식물에게도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데...

나라는 식물에게는 위안이 된다.

 

나라는 식물은 가을에 꽃이 피기도 하고 자리기도 하고 ...왜냐면 난 가을에 걷어들이지 않으니까

난 가을에 수확된 것이 없으니, 봄비, 여름비, 가을비 , 겨울비...그런거 없다.

 

다만 바스락거릴 내 나뭇잎들이 비에 젖어 팔랑거릴 일이 없는 것이다.

그래서 난 비가 내리면 흔들리지 않는다.

그의 시처럼 난 항상 가을이다. 내 속에 저장된 나무들은 가을나무들이다.

제 색을 다 내어주고 바스락거리는 색만 가지고 있는 그런 가을나무다.

 

박진성시인.. 참 젊은 시인이다.

그도 나처럼 고흐를 좋아한다. 어떻게 아느냐면, 그의 시에는 고흐와 나눈 이야기 많으니깐.

그리고 그도 나처럼 네이버 엠파스의 블로그들을 다니며 세상과 이야기를 한다.

그리고 같은 병증을 가진 사람들의 나무들을 옮겨다 심어둔다.

마치 자신이 기른 나무처럼, 절대 죽을 일이 없는 나무들을 갖다 심어놓는다.

 

그는 일년내내 식목일이다.

매일 나무를 가져다 심는다. 그 나무들... 모두 아프단다.

노이로제에 걸린 나무란다.

 

세상에 노이로제 걸린 시인은 그와 같은 병증을 가진 나무들만 가지고 온다.

그리고 거기에서 성장을 멈춘다. 노이로제를 완화시킬 약을 줄 생각도 하지 않는다.

 

그저 같은 병증을 가진 것들이 컴이라는 한 공간에 모여있다.

마치 소록도처럼 세상에 노이로제 걸린 나무들이 사각안에 바글모여있다.

비가 내린다.

나무들은 예민하게 흔들리던 나뭇잎들이 비에 젖어 좀 차분해진 틈을 타고 나무는 쉰다.

 

아마 내가 모아둔 고흐나무, 로트렉나무, 머문자리나무, 오대산나무...

수많은 나의 나무들이

 

오늘도 내리는 가을비에 차분히 제 잎을 늘어뜨리고 있을 것이다.

난 비 내리는 날 그들을 부르지 않을 것이므로..

 

그 나무들이 오늘 쉴 것이다.

 

식물인간

 

 

나무가 고요를 잃으면 잎을 털어낸다

풍으로 쓰러지면서

외삼촌은 말을 버렸다 오월 햇살 겨누고 잇는

살벌한 나뭇가지 침묵들, 내가 눕자

나무도 따라 제 몸을 허공에 새긴다

 

고요 이후는 죽음일까, 삼년을 누워있던 그가

침묵까지 먹어버리고

죽었다. 그를 바라보던 불안이나 피로 따위가

신촌리 밤골을 환하게 열었다

 

그는 밤(夜)을 삼키는 법을 배운거다

후폭풍처럼 내 동공으로 굴러가는

몇 계절 동안 병동 밝히던 그의 눈알!

 

고요를 되찾기까지 우리는

얼마나 나무를 바라봐야 하는가

잎을 세차게 몰아가는 바람도 고요을 버린 이 밤

 

식물인간..

움직이지는 못하면서 아무것도 하지 못하면서 오직 생명만이 붙어있는 그런 인간을 우리는 식물인간이라 부른다.

 

아~~~~~~~~~~~~~~~~~~~~~~~~~~~~

소리지르고 싶다.

식물인간이라는 이 시를 오늘 아침 두번 세번 읽으면서 소리지르고 싶다.

 

"뭐가 달라?"

 

"내가 식물인간과 뭐가 달라?"

 

-난 왜 이런 소리를 하면서도 내 안에서

'진짜 식물인간들에 대한 생각을 해봐. 넌 투정부리고 있는거야.'

하는 소리를 내고 있는 내가 짜증난다.

 

하지만.....

난 또 소리지르고 싶다.

 

"나의 풀려버린 동공을 보란말이야. 아무것도 할 수 없는 내 몸뚱아리를 보란 말이야"

 

난 움직인다.

움직일 수 있나보려고 움직인다.

움직이고 있으면서도 내가 움직이고 있지 않는 듯이 느껴져

온 몸이 천근처럼 무거우면서도 난 움직인다.

산을 오르고, 길을 걷는다.

 

자꾸 움직인다. 쉬지 않고 움직인다.

움직이는 데 난 왜 움직이지 못하는 것 같은 강박관념에 시달리는 것일까?

 

식물인간.....

박진성시인 ... 나쁘다.

가만히 가만히 그럭저럭 숨쉬고 있는 나를 수술하겠다고 매스를 들고 나타난 외과의사같다.

후비파고, 도려내어야 한다고 매스를 들고 있는 딱 외과의사다.

 

나에게 말한다.

 

"넌 식물인간이야. 아무리 그렇게 움직이여도, 넌 식물인간이야.

누군가가 옯겨심어주지 않으면 스스로는 움직일 수 없는 식물인간이야.

산을 올라라. 길을 걸어라, 물을 건너라... 그래도 넌 식물인간이야."

 

싫다..시인이 밉다.

 

며칠째 몸이 아프다.

온 몸이 몸살에 시달리고 있다.

'그래 몸살때문이야..' 그렇지만, 미친여자처럼 난 또 길을 떠나야 한다.

 

다시 오대산 전나무길을 걸을 것이다.

상원사 부처님 사리가 모셔졌다는 적멸보궁까지 난 걸을 것이다. 그래 ,,, 난 움직일 것이다.

식물인간인 내가 움직인다.

어느날 문득 그냥 인간인 나를 발견하기 위해 난 움직일 것이다.

시인에게 말 할 것이다.

 

"난 이제 식물인간이 아니예요! "라고 소리지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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