느티나무로부터
복효근
껍질 그 안쪽으로
속살이 썩어 몸통이 비어가는데
그 속에 뿌리를 묻고 풀 몇 포기가 꽃을 피워
잠시 느티나무의 내생을 보여준자
돌아보면
삶은 커다란 상처 혹은 구멍인데
그것은 또 그 무엇의 자궁일지 알겠는가
그러니 섣불리
치유를 꿈꾸거나 덮으려 하지 않아도 좋겠다
때아닌 낮 모기 한 마리
내 발등에 앉아 배에 피꽃을 피운다
잡지 않는다
남은 길이 조금은 덜 외로우리라
다시 신발끈을 맨다
어제 이 시를 급히(?) 올려놓고 퇴근을 했다.
왜?
이 시를 어느 종이쪼가리에서 발견했으므로.. 금방 잃어버릴 것이 분명하므로..
그리고 다시 기억하지 못할 것이 뻔하므로..
난 이 곳에 올려놓고 맘 편히 퇴근했다.
그리고 일찍 잤다. 너무 일찍 잤다.
-잠시 딴 소리-
난 이번주말에 오대산을 다시 가기로 결정했다.
몸에 무리가 오고 있음을 직감하고 있지만, 그 곳을 버스로 지나갈때 옆으로 펼쳐지던 계곡이 눈에 밟혀서 ... 가 줘야 간다. 걸어서 8킬로정도의 계곡길을 갈 것이다. 트래킹을 할 작정이다.
그래서 난 이번 주 남은 며칠을 충분히 쉬어야 한다. 그래서 난 일찍 잤다. 그런데 오늘 늦은 시간 영화를 보러 가야 한다. 내 생애 가장 아름다웠던 일주일? 아무튼 그 영화를 보러간다..
-잠시 딴 소리 끝-
아까 이야기가 이어진다.
아침 좀 일찍 출근을 해서 다시 읽어보았다.
역시다... 복효근 시인은 눈이 밝다. 단순히 눈이 밝은 것이 아니란 걸 알것이다.
눈이 밝으며, 마음이 밝아서... 눈에 보이는 것이 마음에서 읽어낸다.
산을 오르다보면, 그리고 자꾸 걷다보면,
나무나 꽃을 만나게 되고, 흙을 만나게 되고 물을 만나게 된다.
그들이 서로 끈끈하게 붙어있음을 알게 된다.
서로에게 의지하고 있음을 알게 된다.
오래된 나무들이 많은 곳에 가보면 영락없이 속이 비어있는 나무들을 만나게 된다.
썩어서 속이 비어있음에도 나무는 나무잎을 키운다.
속 살이 썩어들어가고 있는 나무들을 올려다보면, 아직 잎이 시퍼렇고 가지는 뻗고 있다.
그 뿐이 아니다.
제 살 껍질에 버섯을 키우고, 이끼를 키우고 있다.
그 뿐이 아니다.
속살 들어차 있던 곳에 날아드는 먼지를 모아두고 그 속에 들꽃을 피워내고 있기도 하다.
그래.
시인은 그것을 본 것이다.
작은 상처가 나는 순간, 난 무엇을 하나.
약을 바르고 반창고를 붙이고, 딱지 든든히 앉아 누구도 재침범할 수 없도록 몸을 동여맨다.
다시는 상처받지 않도록 꼭꼭 동여맨다.
그리고 흉터가 지지 않도록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다 한다.
간지러워도 긁지 않고, 어디에 부딪히지 않기 위해 온 신경을 다 쓴다.
그리고 상처가 티가 나지 않기를 간절히 바란다. 내 상처는 흔적없으므로 난 상처받은 적이 없다.
난 그렇게 믿는다.
느티나무의 속살이 썩었다
처음 어딘가에서 받은 작은 상처때문에 썩어들어갔을 것이다.
그 상처를 느티나무는 내버려두었다.
그리고 남은 물관으로 채관으로 몇 배의 힘을 다해 제 잎과 가지를 키운다.
상처는 짓무르고,, 회복할 여력이 없다.
나무는 그저 제가 키워내야 할 것들에게만 눈을 둔다.
그 사이, 가벼운 것들이 나무에게 깃든다.
먼지며, 풀씨며, 벌레들이며..나무의 썩은 몸에 깃들기 시작한다.
그것들은 때로는 나무의 상처를 건들기도 할 것이며, 제 먹이로 먹기도 할 것이다.
그리고 아예 들어앉는다.
이제 그림이 된다.
위로는 잎과 가지를 키우고, 아래로는 풀과 버섯들과 벌레들을 키운다.
그렇게 그림이 되어, 이제 한그루 나무가 아니라, 한 폭의 그림이 되고 이야기가 되었다.
한 세상이 되었다.
난 산을 오르다 보면 걷다 보면 종종 그런 나무를 만난다.
그리고
또 산을 오르다 보면.
속살 썩은 나무가 더는 버티지 못하고,
썩어 들어간 아랫둥치 무게를 이기지 못해
어느날 산길 가로질러 쓰러져 있는 모습을 보기도 한다.
그럼 난 썩어서 버티지 못한 나무에 기대 앉아 한 모금 물을 마시고 쉬었다 지나간다.
나도 이제 풀이며 벌레가 되어 썩은 나무에 기대어 쉰다.
시인은 그 나무이야기를 한다.
썩는 것을 두려워말아야 한다. 내 몸에 곰팡이 피는 것을 두려워 말아야 한다.
나에게 쉬고자하는 것들을 겁내지 말아야 한다.
그렇게 할 자신은 없겠지만, 나도 나무여야 한다.
지금도 썩어가고 있을 그리고 썩어가는 내 몸을 내 놓아야 한다.
매끈한 것들만 보이는 이 세상에서 이 도시에서
난 매번 탈출해서 길을 걷는다.
그럼 이미 내가 알고 있는지도 모를 일이다.
내가 길을 걷는 이유가 아마 매끈하지 못한 나무들을 만나고자
그래서 내가 험악해 보이지 않아 맘이 편해지기 위해서 난 자꾸 산으로 나무를 만나러 가나보다.
그 곳에 가면 내가 난 잡티들이 잡티로 보이지 않는다는 내가 이미 알고 있었을지도 모른다.
시인은 그것을 본 것이다. 설명한 것이다.
그래,,, 내가 시를 좋아하는 이유다. 나에게 이해할 수 없는 세상을 시인은 이해시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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