님은 주무시고
서정주
님은
주무시고,
나는
그의 베겟모에
하이얗게 수를 놓여 날으는
한 마리의 학이다
그의 꿈 속의 붉은 보석들은
그의 꿈 속의 바닷속으로
하나 하나 떨어져 내리어 가라앉고,
한 보석이 거기 가라앉을 때마다
나는 언제나 한 이별을 갖는다.
님이 자며 벗어 놓은 순금의 반지
그 가느다란 반지는
이미 내 하늘을 둘러 끼우고,
그의 꿈을 고이는
그의 베갯모의 금실의 테두리 안으로
돌아오기 위해
나는 또 한 이별을 갖는다
아마 우리의 삶은 잠자는 님곁에서 잠자는 님의 얼굴을 보는 것과 같다.
님은 고요히 그 자리에서 잠자고 있는 것 뿐인데.
님을 보는 난 님이 얼른 깨어 나를 봐주기도 원하고
또, 그냥 잠을 자더라도 옆에 있기만 했으면 싶어 깨지 않기를 바라고..
또, 그가 잠자는 꿈 속에서조차 내가 아름다운 여인으로 등장하기를 욕심내고...
그러다가
아침이 오기전에 흔적없이 님의 곁을 떠나야 하는 그런 삶.
영원히 잠자는 얼굴조차 보지 못할까봐.
그렇게 몰래 몰래 드나드는 님의 배게에 수 놓은 학처럼..
그렇게 숨결을 느끼고픈..
삶이라는 이름을 가진 님이여,
더 멀리가지도 더 가까이도 오지말고 고이 숨쉬면서 옆에 있어주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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