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 달 만에 처음으로 일요일에 집에서 쉽니다.
어제의 오대산행을 생각하면서,,, 또 좋았구나 생각하면서...
내가 무지 좋아하는 비가 며칠 많이도 내렸습니다.
맘껏 비를 볼 수 있어서 좋았습니다.
이른 새벽 오대산으로 가는 버스에서도 비가 내립니다. 비가 좀 줄었습니다.
속으로 주문을 욉니다.
"조금만 더 내려라."
맘껏 그리고 정성껏 비를 맞을 수 있도록
예쁜 곳에서 비를 맞을 수 있는 행복을 누릴 수 있도록 좀만 더 내려라 주문을 외웠습니다.
난 참 이상한 동물입니다.
비를 기다리면서, 비를 좋아하면서도
차창으로 흘러내리는 비를 보면, 내가 젖지 않고 비를 볼 수 있어서 또 편안해하기도 합니다.
비를 좋아하면서도 가끔 내가 젖지 않기를 원하고
젖지 않을 수 있도록 만들어주는 창을 보며
내내 내 온 몸에 유리창이 감싸고 있어 내가 항상 젖지 않았으면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합니다.
그래서 참 웃기는 나입니다.
비내리는 오대산을 오릅니다.
많은 비가 내리지 않아 구름과 안개와 비 중 어느 것이 나를 젖게 하는지도 모르며
그저 온 몸이 천천히 젖으며 올라갑니다.
보이는 곳이 모두 산이고, 보이지 않는 곳도 모두 산일 것입니다.
아득히 보이는 저 곳에 색이 배어나옵니다.
아마 이 산에 단풍이 들고 있나봅니다.
색이라는 것
저 산에 가을단풍이 들어있어 하얗게 운무가 끼어있어도 저절로 배어나오는 것,
그리고 묻어나오는 것,
산에 단풍이 배어 나오고 있습니다. 내 눈으로 스며들고 있습니다.
내가 여자라는 색을 가지고 있어 , 내가 내 나이의 색을 가지고 있어
누군가의 눈에 저 단풍처럼 배어나오고 있을 것입니다.
내가 누군가를 속일 수 없는 이유입니다.
지금 이 주절거림처럼....그저 나오는 나를 내버려두기로 합니다.
하얗게 가리워진 운무사이로 다가갑니다.
언젠가 사진을 찍으시는 분이 말씀하셨습니다.
"줌을 쓰지 마세요. 피사체에게 다가가서 피사체를 보세요."
난 어제 사진을 찍으려고 다가가는 것이 아니라, 그저 앞으로 갔습니다.
하얗게 가리워졌던 곳에서 나무 한 그루가 나타납니다.
그리 크지도 않고, 그리 멋지지도 않고, 현란한 색을 가지지도 않은 그런 나무 한 그루가 있습니다.
내가 다가가서 만난 나무라 난 사랑스럽습니다.
나의 사랑스러운 눈으로 나무를 담습니다. 난 그저 나무가 더욱 사랑스럽습니다.
뽐낼것도 없는 그저 한그루의 나무이지만, 내 발로 다가서서 내가 담아온 것이어서 참 좋습니다.
저 나무는 세상입니다.
세상은 언제나 말이 없고, 잘 나지도 않고, 그저 가만히 있습니다.
내가 다가갑니다. 나무라는 세상에 내가 다가가서 내 안에 세상을 들입니다.
앞이 잘 보이지 않는 세상에서
내가 다가서서 만난 보잘 것 없는 나의 세상이 내게는 때로 참 좋습니다.
정상에 올랐습니다.
무지 막지한 계단들! endless 계단이 정말 징하게 이어졌습니다.
"난 너 계단을 사랑할거야.. 사랑해"
하고 말을 하면서 올라갑니다.
무지 사랑하고 싶은 계단, 그래서 계단을 오르며 행복하고 싶었는데.. 그래서 우겨보는데
아,,, 힘들어.
계단은 무지 힘듭니다.
그래서 사랑할 거라고 우기지만, 결국 사랑할 수는 없었습니다.
사랑할 수 없는 것을 사랑한다고 우긴다고 좋아질 수는 없는 것...
너무 힘든 것은 사랑이 아닙니다.(김광석의 노래가 생각나는 군)
하지만 힘든 계단은 나를 정상가지 데려다 주었습니다.
정말 이런 것은 짜증나는 일입니다.
꼭 힘든 것들이 있은 후에 우린 감동을 느낄 수 있다는 것.
그건 정말 싫은 일입니다.
하지만 어쩌리...
정상에 올라 사방이 하얀 세상을 보는 순간,
나를 힘들게 하던 계단의 사랑조차 의미있었던 한 순간이 되는 것을..
정말 이해 안 되는 삶입니다.
뾰안 세상에서 같이 계단을 오르던 나의 동료들을 찾습니다.
숨은 그림찾기 하듯, 얼굴 아는 이들을 찾아다닙니다.
사방이 안개여서 비여서 구름이여서 누군에게든 가까이 가야 알아볼 수 있습니다.
다가가서 알아보는 것, 다가가서 찾아내는 것.
그 곳에서 내가 얼굴 아는 이들을 찾아 그 옆에 붙어앉아 떨어지지 않습니다.
공감합니다.
각자을 힘들게 했던 계단을 생각하며
"그래 이해한다. 너도 힘들었니? 나도 힘들었다." 그러며 붙어있습니다.
정상언저리에 말라가는 들풀이 있었습니다.
'애 이름은 뭘까? 미안하다.. '
이름을 불러줘야 하는데...
들풀은 꽃 진자리만 남겨두었습니다.
하지만 꽃 진자리에 물방울들이 대신하고 있습니다.
간간히 비치는 햇빛에 반짝이며 꽃대신 물방울들이 그 자리를 대신하고 있습니다.
이제 가을이 지나고 겨울이 되면 하얀 눈꽃이 저 자리를 대신 할 것이고,
봄이 되면 초록 싹이 저 자리를 대신 할 것이고
또 좀 시간이 지나면 다시 분홍꽃이 와 제 자리에 피어있을 것이고...
그렇게 저 자리를 비지 않고 누군가가 항상 대신할 것입니다.
그러고보니, 저 자리의 주인인 꽃은 잠시이고, 대신하는 것들이 더 긴 시간을 채우고 있습니다.
그래도 우린 저 꽃의 이름을 불러줍니다.
우길 일이 없네요.
'지금의 나는 내가 아니야!'
'난 분홍색 이쁜 꽃이야!'
하고 우길일이 없네요.
지금의 나는 나의 진짜 모습을 대신해주고 있는 물방울이고 눈꽃입니다.
그렇게 생각하니, 맘이 좋군요.
꽃 진 자리에 물방울이 대신하고 있었습니다.
정상을 내려오는 길,
잠깐 맑아집니다. 나무들이 선명히 제 모습을 드러냅니다.
저런 모습이었구나.
튼실한 근육을 가진, 그리고 좀은 퇴색해가고 있지만, 분명한 생명인 나무가 그 곳에 있었습니다.
나무 사이를 지나갑니다.
선명한 나무사이를 지나가는데, 나도 너무 선명해집니다.
"안돼!"
선명해지면 안됩니다. 왜?
내가 선명해지면, 내 얼굴에 붙어있는 기미 주근깨도 같이 선명해집니다.
'가려야지... 감춰야지... 창피해...'
옆에 선 나무가 나에게 깊은 눈길을 줍니다.
나무를 보니, 나무에 깊은 옹이가 동그랗게 패여 있습니다.
옹이는 뱅글도는 무늬를 가지고 길고 심심한 나무 둥치에 무늬 하나로 파여있습니다.
옹이가 있었습니다.
잠시 숙였던 내 얼굴...나도 옹이를 가졌습니다.
내가 가진 옹이는 한 때 아픔이기도 상처이기도 부끄러움이기도 하지만,
길고 큰 나무에 깊이 파인 옹이는 그 나무의 아름다움이기도 합니다.
잠시 선명해진 숲 길, 그 곳에서 나와 나무의 옹이가 나란히 서있었습니다.
옆을 지나가는 이들의 옹이도 보입니다.
옹이가 많은 나무, 옹이가 많은 사람....
월정사로 내려왔습니다.
짧은 시간이 주어졌습니다. 모두들 월정사로 갑니다.
저와 죽이 맞는(?) 부부는 같이 월정사를 포기하고 전나무길로 방향을 돌립니다.
때로 main보다는 option을 선택하기도 합니다.
option은 때로 나에게 더 깊은 감동을 주기도 하니깐요.
그건 죽이 맞는 사람들때문에 가능한 일이기도 합니다.
혼자서는 할 수 없는 일- 그것은 모든 것이 검증된 main을 선택할 때보다 과감히 option을 선택할 때 - 그런 경우죠.
그들때문에 향한 option의 길, 성공이었습니다.
월정사 전나무길,,, 내가 좋아하는 길,,, 아름다운 길,,,기억할 길,,,
사람에게는 누구나 그런 길이 있습니다.
열 몇 살때 걸었던 길, 스무 몇 살때 걸었던 길, 그리고 지금 걷는 길..
몇 번째 이 길을 걸으면, 그 때의 생각이 그대로 떠오릅니다.
그리고 지금의 생각과 그때의 생각이 도열을 합니다. 내가 이렇게 바뀌어가고 있구나.
마치 나라는 박물관에서 연대기를 보듯 내가 쭉 보입니다.
이 길을 좋아하는 이유는 몇 번 걸었던 그 순간들때문입니다.
또 걷고 싶겠지요.. 어제 걸었던 전나무길에서의 그 순간을 생각하기위해서..
전나무길을 좀 걷자,
여지없이 전나무들은 일제히 제 몸으로 계곡 물가를 가리키고 있었습니다.
우리는 전나무가 가르쳐준대로 계곡으로 갑니다.
전나무가 일러준 계곡은 그림입니다. 아니 달력그림입니다.
딱 달력 그림 하나가 그 곳에 펼쳐져있었습니다.
물안개 피어오르는 곳,
2005년 10월 1일 이라는 달력그림에 내가 턱하니 그려집니다.
순식간에 모델이 되었습니다.
마음을 맡기고 의심없이 몸이 시키는 대로 가는 길.. 그 곳에 길이 있습니다.
'여기를 갈까? 여기엔 뭐가 있을까? 여기서 내가 뭘 얻지?'
그런 거 말고.... 그런 거 말고...
'그저 나무가 가라네... 가자'
그러면서 따라간 길에 그림이 있었습니다.
그 그림에서 모델이 되는 횡재도 합니다.
내 안량한 판단보다는 내 몸이,내 본능이 훨씬 똑똑합니다.
이제 어제의 산행이 끝이 났습니다.
뒤를 돌아보았습니다. 오대산이 그 곳에 있었습니다.
똑 같은 모습으로 그 곳에 있었습니다.
난 그 곳을 헤집고 들어가
나무를 만나고, 시들어진 꽃을 만나고,
사람들이 만들어놓은 계단을 만나고, 정상을 만나고, 사람들을 만났습니다.
난 산에게 초대받는 적이 없습니다.
환영받는 적도 없습니다.
내가 넘어졌을때 손을 잡아준 적도 없습니다.
목이 마르다고 물 한 잔을 건네준 적도 없습니다.
그저 산은 입을 앙다물고 그저 가만히 있습니다.
그 곳으로 내가 내 발로 들어가 힘들다고, 숨차다고 목마르다고 헤집고 뜯다가 산을 내려옵니다.
한번도 나를 아는 척하지 않는 그런 산에 안겼다가 나옵니다.
그럼 딱 저 모습으로 잘 가란 말도 없읍니다.
또 오란 말도 없습니다.
산은 또 나무와 같이 세상이입니다. 삶입니다.
세상이 나에게 오란 적도 없고, 삶이 나에게 오란 적도 없고,
그런 적 없으니 날 보듬어주지도 않습니다.
그저 세상 속으로 삶 속으로 내가 들어갔다가 나오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 싸늘한 곳에 한 번 다녀오면, 그렇게 한 고비의 산을 넘고 나면
그러고나면....
다른 산이 또 보입니다.
그리고....
그 산에 들어가면, 단련이 되어 힘이 덜 들기도 합니다. 호흡이 고르게 되기도 합니다.
아주 험한 산만 아니라면, 가지런한 모습으로 하산하기도 합니다.
상원사 적멸보궁 사리탑 옆에 있는 돌담입니다.
부처님의 진신사리를 모신 사리탑이지만, 작고 소박합니다.
그 옆을 차곡히 쌓인 돌담이 지켜 서있습니다.
지난 번 이 곳을 왔을 때 점 찍어둔 돌 위에 다시 점하나를 더 찍고 왔습니다.
내 돌이 사리탑 옆에 잘 놓여져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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