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읽히는대로 詩

[신용선] 불면 1.2.3.

by 발비(發飛) 2005. 9. 27.

불면1

 

신용선

 

세상이 마구잡이로 흘러가버려도

모르고

곤히 잠들고 난 자들은

얼마나 개운할까.

 

여우가 파먹고 들쥐떼가 뜯어가는

거친 들판의

잠 속에

홀로 남겨졌다가

해골이 되어 돌아오는 자들은

 

화해하고 용서한 날처럼

머리가 맑으리라

 

 

요즈음은 잠을 좀 잔다.

아니 많이 잔다. 이상하다... 잠을 많이 잔다.

자지 않으면 몸이 붓는 이상한 병때문에, 난 잠을 자야지 싶었다.

근데 자꾸 잔다.

그래서 불면증은 이제 나의 말이 아니게 되었다.

이 시를 불과 한 두달전에 읽었을때와 지금 읽는 느낌이 다르다.

그 때 나는 불면과의 전쟁중이었고, 지금은 좀 아니다.

갑자기 이 시가 왜 떠올랐을까?

 

어제밤 잠을 자려고 누웠다가 문득 신용선시인의 불면 시리즈가 생각이 났다.

몽롱한 정신으로 불면을 두드려놓았다.

참 생산적인 불면이로군!

불면의 밤에 그냥 머리 띵하게 보내는 것이 아니라.

시 3편을 생산한 불면이로군...

신용선님의 불면!

아마 그의 불면은 생명연장이었으리라.

누구나 가지는 시한부생명이지만, 그의 시한부를 생각한다면 그의 불면은 생명연장이리라.

이제 그는 시한부의 틀에서 벗어났다.

시한부에서 벗어난 그는 생명연장의 불면이 더이상 필요치 않을 수 있을 것이다.

 

이제 머리 맑은 개운한 아침을 맞고 있을까?

머리 개운함

행복이지... 물론 행복이고 말고... 그보다 더한 행복이 어디있을까?

아침에 눈떠서, 창가로 비친 햇살을 보고, 그리고 맑아진 내가 깨어나고...

그 보다 더한 행복은 없을 것이다.

 

난 어제 분명히 잤는데.

지금 이순간 행복하지 않은 걸 보면, 아마 수면중 불면이었나보다.

 

불면2

 

고래심줄보다 더 질긴 이놈의

잠과의 실랑이를

끝내게 해다오

 

재깍거리는 시계소리처럼 잘들지 않는

사람들, 사시장철 시퍼렇게

깨어 있는 사람들 틈에서

누가 나를 좀 끄집어 내다오

 

끄집어 내다가

깃털처럼 가벼워질 때까지

북어패듯 나를 좀 두들겨다오.

 

안다. 니 맘 안다.

북어패듯 패고 싶은 자신을 안다.

무거워서 눌려서 잠들지 못하는 니 맘을 안다. 감히 안다고 말한다.

온 몸 늘씬하게 두드려 맞고 싶은 니 맘을 안다.

 

누구 나 좀 늘씬하게 패주오.

온 몸 구석 구석 터지고 뭉개져서, 내 몸 거풍 좀 시키게 날 좀 늘씬하게 패주소!!!

 

불면3

 

우리가 온갖 악조건을 이기며

잠을 청하고

있을때

 

사랑으로 미친 이들의

아무 잠도 없는 사랑은

얼마나

아름다운가.

 

이 말은 하고 싶지 않다. 그렇지만 , 얼굴이 빨개질 것이지만,  말한다.

세상은 얼마나 공평하지 못한가

또 얼마나 공평한가.

언젠가 하루는 그런 날이 있었으리라...

잠을 청하지 않고도,

잠을 자지 않고도 내가 없고 세상도 없이

오직 그만으로 세상이 꽉 차 있었던 그런 날이 있었으리라.

세상이 온통 그인 그런 밤에 잠이 오지 않은 날,

그날은 얼마나 아름다웠으며, 얼마나 행복한 날이었던가.

 

不眠?

不可能眠?

가지 가지다.

 

시인은 시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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