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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겨듣는 曰(왈)

그가 말했다.2

by 발비(發飛) 2005. 9. 9.

그가 말했다. 2

 

"나는 낙서라 하는데, 너는 그림이라 한다"

 

 

 

왜 낙서하냐고 물었다

그냥 그림을 그린다고 대답했다

 

여백 많은 시집을 읽다가 앞에 놓인 사각상자를 그리기 시작했다

시집의 여백에다

선을 그린다

손날이 까매지도록 선을 그려 면을 메꾸고 있다

 

왜 낙서를 하느냐고 물었다

그냥 난 그림을 그리는 거라고 대답한다

 

사각상자를 그리면서 옆에 앉아있는 그의 얼굴을 본다

그가 내가 그리는 사각안에 들어갈 수 있을까

내가 그리는 사각상자는 그를 담을 수 있을까

보아뱀같은 상자를 하나쯤 그릴 수는 없을까 싶어

한 면을 펑 뚫린 상자를 만들기 위해 지우개로 사각하나를 지웠다

그 속으로 편히 들어앉아야 할 그를 위해 상자 한 면을 열었다

시집 여백에 상자를 그렸다가 사각하나를 지웠다

 

그는 왜 자꾸 낙서만 하느냐고 묻는다

그리고 또 말한다

"나는 낙서라고 말하고 너는 그림이라고 한다."

 

어긋남이 하나 둘 일까?

이런 어긋남 속에서도 우린 같은 공간에 담겨지려하고 담으려 한다

어긋남

낙서와 그림의 차이

농으로 지껄이는 바람과 로맨스의 딱 그 차이겠지

그렇게 어긋난다

 

 

 

"나는 낙서라 하는데, 너는 그림이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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