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읽히는대로 詩

[한하운] 목숨

by 발비(發飛) 2005. 9. 2.

내 생각에 50년 정도의 차이를 두고 아픈 시인 두 사람이 목숨에 대한 시를 썼다.

 

한하운의 시집 [보리피리].. 내가 시집을 보고 울었던 처음이자 마지막...

 

보리피리를 매일 가슴에 얹어두고 읽다가 자다가 울다가 했던 기억이 있다.

 

스무살에 왜 그 시를 읽고 울었을까?

 

모를 일이다. 

 

사춘기도 아니고, 인생을 알았을 나이도 아니고...

 

에고 늦된 것인지 설 된 것인지.. 

 

지금도 알 수가 업다

 

내가 가장 많이 읽었던, 그리고 많이 속상했던 시 '나는 문둥이가 아니올시다'

 

나는 문둥이가 아니올시다

                           한 하 운


아버지가 문둥이올시다
어머니가 문둥이올시다
나는 문둥이 새끼올시다
그러나 정말은 문둥이가 아니올시다

하늘과 땅 사이에
꽃과 나비가
해와 별을 속인 사랑이
목숨이 된 것이올시다

세상은 이 목숨을 서러워서
사람인 나를 문둥이라 부릅니다

호적도 없이
되씹고 되씹어도 알 수는 없어
성한 사람이 되려고 애써도 될 수는 없어
어처구니없는 사람이올시다

나는 문둥이가 아니올시다
나는 정말로 문둥이가 아닌
성한 사람이올시다



책이라는 것을 읽으면서 울었던 첫 기억이 있는 시다.

 

한하운...  그 분이 '목숨'이라는 시를 썼었다. 우연히 오늘 내 눈에 띄었는데,

 

다시 읽는 순간,

또 몇 달전에 읽었던 박진성 시인의 시집 [목숨]이 생각났다.

 

두 '목숨'을 나란히 둬 본다.

 

시차는 50년정도 일것이라 생각된다.

그렇지만 이 시를 쓴 연배는 비슷하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도 든다.

시대는 다르지만, 그들이 살았을 나이는 비슷했을 ....

 

한 사람은 나병이라는 병을 앓고 있는 사람이고,

한 사람은 잘은 모르지만, 정신적으로 많이 아픈 사람 같고, 아픈 사람이 보는 목숨이라는 것.

 

건강한 사람의 목숨과는 분명 다른 시각일 것이다.

그들에게 목숨은 짐일 수도 , 비상구일 수도 있을테니까...

 

목숨은 하늘에서 내려주는 것이다.

하지만, 지독히도 아픈 사람은 그것을 자신이 선택할 수도 있다고 생각한다.

무지 아프면서도 목숨을 이어가고 있는 사람

목숨을 버릴 수도 있으면서, 목숨을 버릴만한 이유(?)를 가지고 있으면서도

그것을 유지해 나가는 사람의 목숨이야기...

그들의 목숨이야기를 듣는다.

아프지만, 아파서

그들만이 할 수 있는 목숨이야기이다

 

 

 

목숨

 

한하운

 

쓰레기통과

쓰레기통과 나란히 앉아서

밤을 새운다

눈 깜박하는 사이에

죽어 버리는 것만 같았다.

 

눈깜박하는 사이에

아직도 살아 있는 목숨이 꿈틀 만져진다

 

배꼽 아래 손을 넣으면

삼십칠도의 체온이

한마리의 썩어가는 생선처럼 뭉클 쥐어진다

 

아 하나밖에 없는

나에게 나의 목숨은 아직도 하늘의 별처럼 또렷한 것이냐,

 

 

 

목숨

 

박진성

 

1

 울 할머니 목 위로 숨이 넘어오던 그 해 십일월, 만수위에 도달한 물길처럼 위태로운 호흡이 몸을 견디지 못해 몸부림할 때, 금강으로 내 달리던 나의 열아홉도 목에 숨이 가득 출렁이던 것이었는데

 그날 새벽에는 올 할머니 숨결이 잔잔해져서 물고기 몇 마리 지느러미가 보일만큼 맑은 물살이었다 나는 조용히 강변 버드나무를 매만지며 어떤 상감으로 금강에 뜬 달의 일가족이 무리지어 이사 가는 것을 보앗다 물결에 숨결 내맡기고 터지려는 울분 가득 금강의 몸을 자세히 들으려고 눈을 감았다

 

2

 산다는 일이 숨결 곳곳에 구멍을 내어 설움도 가난도 비루함도 숨쉬게 해줘야 하는 거라지만

어쩐지 숨 쉬는 일이 뻑뻑해서 숨을 닫아버리고 싶을 때 나, 부족의 제사장처럼 금강에 서곤 하였는데

 

 시집 속에 몰래 묻어둔 울 할머니, 顯妣孺人 海州崔氏 신위로 남은, 그날 새벽 고운 숨결을 몰래 금강에 부린지도 몇 해가 지났는데

 격렬함으로 들이마셨다가 고요로 내뱉는 스물일곫의 내 숨결 속으로, 음복하다 취한 사람처럼 낮달이 제 몸부림을 들이미는 거였다

 

3

내가 현비유인(顯妣孺人)을 하면 울 할머니는 천수대비(千手大悲)

강은 스스로 제 목숨을 닫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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