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벽
복효근
어둠을 밀어내느라 풀잎은 바람에 얼마나를 울었는지 모른다 냇물이 제 몸 바위에 부딪고 벼랑길 뛰어내리며 목메이지 않았다면 밤도와 나무들은 또 바위틈 더듬는 뿌리의 피울음으로 제 깊이의 눈물 퍼 올려 붉고 하얀 꽃잎을 빚지 않았다면 나 또한 그 한 고비를 앓고 있는 그리운 것들의 숨소리에 어깨를 들썩이지 않았다면 밤새워 운 저 풀벌레에 면목없다 이윽고 산아래 마을에 하나 둘 등이 켜지고 누군가는 밤새 흐느껴 부은 눈을 부비며 쌀을 씻어 안치고 있으리라
울어라 울어라 부추길 일도 아니지만 울지 마라 울지 마라 애써 다독일 일 아니다 밤새워 눈물 삼킨 저 유정무정들의 울음들이 지리산 너머 해를 길어 올리고 있으니 어둠의 이 한 순간을 곡진한 다음에야 또 한 세상의 새벽은 눈시울에 온다
잘 읽혀지지는 않았다.
낱말들이 모여다니며 이리저리 쿵쿵하고 머릿속을 박는다.
그저 맡긴다. 내 손에게 내 가슴에게 .....
며칠 전에 본 마타리가 생각난다.
가을이면 지천으로 깔리는 노란 꽃이 생각났다.
지리산 중턱즈음에 마타리가 피어있었다.
노란 색 마타리, 작고 작은 꽃송이들이 다닥다닥 붙어 노란 대궁하나 만들어놓은 마타리다.
산이 깊어 검은 아침을 오르다보면,
마타리가 그 가운데 있다.
검은 아침의 노란 마타리.
아스팔트에 놓인 정지선이다.
마타리가 피어있는 검은 트래킹로드를 지나다보면, 마타리는 내쪽으로 몸을 기울인다
기울이기만하는 것이 아니라, 내 옷에 마타리의 눈물을 닦는다.
밤새 얼마나 울었는지, 마타리 노란 눈들은 통통 부어있다.
눈들 마다 눈물 한 웅큼씩을 얹어놓고 있다.
지나가는 내 옷에다 얼굴을 부비며 눈물을 닦고 있는 마타리
손도 발도 없어 그냥 눈물 흘리고 있었던 마타리.
내가 그녀의 눈물을 닦아주었다고? 그건 아니다.
나는 그냥 지나갈 뿐이다.
울고 있는 그녀를 그냥 스쳐지나간다.
손도 발도 없는 그녀가 나를 붙잡을 수는 없다.
깊은 산 검은 아침 지나면, 그저 마를 날이 있겠지
닦지 않아도 될, 그런 날이 있겠지.
난 그저 마타리를 스쳐지나갈 뿐이다.
노랗게 다닥다닥 붙어 눈물 머금고 있는 마타리 옆을 그저 지나갈 뿐이다.
우연히 내 옷 깃이 스쳐 마타리의 눈물을 훔쳐 주었다면,
내가 그녀를 지나갔었구나. 마타리...
내가 너를 만난 적은 없는 것 같다. 마타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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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리산 마타리는
대학로 마로니에 공원 앞 아스팔트 가로수 옆에도 앉아 피어있었다.
밤없는 이른 아침, 키 작은 모습으로 피어있기도 하다.
마타리는 서울에서도 피고 있다.
마타리가 세상에 딱 한 송이가 피어있지 않듯,
온 산하에 가을이면 널려 피어있듯,
그 이름이 그리도 근사하지만, 어느 누구도 눈길이 머물게 생기지는 않았듯
가까이 가서 쳐다보면, 별처럼 아름다운 노란 꽃들이 모여 있듯
그리고 그 아래 잎이나 뿌리에서 구린내가 나듯
그 구린내가 사람의 체증을 가라앉혀 주는 약으로 쓰이듯
그런 지천으로 깔린 마타리가 서울에서도 있다
나도 마타리다
가까이 들여다보면, 수많은 별이 모여있듯, 내 안의 별들이 또 수없이 반짝이듯
들여다보면 더 할 수 없이 예쁜 노란 색을 가졌듯
그런데 지천으로 깔려있는 마타리 사이에 난 그냥 이름없는 들꽃이고 들풀이듯
그렇게 산다.
혹 내가 이른 아침 서울길을 나서면서
정말 혹 눈물을 흘렸다면,
전철 안에서 부딪히는 어떤이의 어깨에 매달려있던 눈물이 떨어지기도 하고
내 어깨에 서울의 또다른 마타리의 눈물이 떨어지기도 하고
하지만 모른다.
나도 모르는 일이고 그도 모르는 일이다.
이른 새벽 눈물 머금지 않은 마타리가 어디 있을까?
마타리 아닌 사람이 어디 있을까?
어느새
노란꽃이 햇빛에 반짝인다. 밝은 해가 내 머리위로 뜨면...
노랗게 반짝인다.
다닥다닥 붙은 노란 꽃송이 만큼 반짝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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