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과 지성 시인선 300호 기념으로 [쨍한 사랑 노래]라는 시집이 나왔다.
사랑에 관한 시들이다
출근길 쭈루룩 넘기며 읽는데, 처음으로 걸린 시.
뼈아픈 후회
황지우
슬프다
내가 사랑했던 자리마다
모두 폐허다
완전히 망가지면서
완전히 망가뜨려놓고 가는 것; 그 징표 없이는
진실로 사랑했다 말할 수 없는 건지
나에게 왔던 사람들
어딘가 몇 군데는 부서진 채
모두 떠났다
내 가슴속엔 언제나 부우옇게 이동하는 사막 신전;
바람의 기둥이 세운 내실에까지 모래가 몰려와 있고
뿌리째 굴러가고 있는 갈퀴나무, 그리고
말라가는 죽은 짐승 귀에 모래 서걱거린다
어떤 연애로도 어떤 광기로도
이 무시무시한 곳에까지 함께 들어오지는
못했다. 내 꿈틀거리는 사막이
끝내 자아를 버리지 못하는 그 고열의
神像이 벌겋게 달아올라 신음했으므로
내 사랑의 자리는 모두 폐허가 되어 있다
아무도 사랑해본 적이 없다는 거;
언제 다시 올지 모를 이 세상을 지나가면서
내 뼈아픈 후회는 바로 그거다
그 누구를 위해 그 누구를
한번도 사랑하지 않았다는 거
젊은 시절, 내가 自請한 고난도
그 누구를 위한 헌신은 아녔다
나를 위한 헌신, 한낱 도덕이 시킨 경쟁심;
그것도 파워랄까. 그것마저 없는 자들에겐
희생은 또 얼마나 화려한 것이었겠는가
그러므로 나는 아무도 사랑하지 않았다
그 누구도 걸어 들어온 적 없는 나의 폐허;
다만 죽은 짐승 귀에 모래의 말을 넣어주는 바람이
떠돌아 지나갈 뿐
나는 이제 아무도 기다리지 않는다
그 누구도 나를 믿지 않으며 기대하지 않는다
당신이 사랑한 자리는 폐허라구요
아직도 폐허라구요
"너는?" 하고 혹 물어보신다면요....
"흐음" 하고 생각을 하겠지요
이젠 폐허조차 아니라고 속으로 생각할래요.
아무 대답도 하지 않고 폐허도 아닌 내 사랑자리를 생각해 보겠어요.
어느 어린 날 집을 지었지요.
혼자서 아니라 둘이서 처음 집을 지었지요.
모래성처럼 작은, 그리고 쉬운 집 한 채를 지었지요.
아주 작은 손에 어울릴만한 딱 모래성이었지요
그 성에서 우린 들어가 살 수는 없었지요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이란, 모래성의 양쪽을 뚫어두고 손 하나씩을 집어넣고
꼼지락 거리며 두 손을 잡는 일이었지요.
작은 모래성은 두 손이 안에서 꼼지락 꼼지락 거리며 들썩거리며 금이 갔지요.
이내 허물어졌지요.
허물어진 모래성을 뒤로 하고 난 자랐지요.
아마 저 바다가 쓸어갔겠지요.
어느 또 어린 날 집을 지었지요.
집을 지은 것이 아니라 여름날 수양버드나무 아래가 집이 되었지요
수양버드나무아래 앉아있으면 그늘이 있었고
바람이 있었고, 기대어 앉을 곳이 있었지요.
우린 그 곳이 집이라 생각하고
매일 그렇게 커다란 둥치의 수양버드나무에 기대어 앉아 있었지요.
어깨를 대고 앉아 서로의 옆모습을 보고,
때로는 몸을 살짝 돌려 서로의 얼굴을 마주 보기도 하고
얼굴이 발갛게 달아오를 즈음이면 바람이 불어 우리의 얼굴을 식혀주었지요
여름 내내 수영버드나무 집에서 살았지요.
여름이 지나고 가을 겨울이 되자,
그러니까 시간이 흐르자 그 집은 집이 아니라 그냥 바깥이었지요
시간이 흐르지 않았다면, 아직도 집이었을 그 곳이 .... 집이 아니었지요.
그 집을 떠났습니다.
어느 날 이젠 어리다고는 할 수 없는 날 집을 지었지요
커피라는 재료로 지은 집.
커피라고 붙여진 곳이면 어디나 우리의 집이 되었지요.
음악이 더불어 나오는 커피가 있는 곳,
그런 구석진 곳, 푹신한 소파에 앉아 그 곳이 집이라고 생각했지요.
그 곳에서 들려오는 음악소리는 전부 우리들의 이야기라고 생각하며,
쌉쌀한 커피를 마시며, 우리들의 마음이라고 생각하며,
커피로 지은 카페라는 집에서 우린, 살았지요
카페라는 집은 우리들만의 집은 아니었지요.
옆집 앞집 뒷집... 수많은 집들이 카페라는 집속에 오밀조밀 모여있었지요.
떠나야 하는 집들이 모여있었던 것이지요
모두들 어쩌면 떠나야 한다는 것을 알기 때문에 더욱 꽉 붙어 앉아있었던 집이었겠지요.
그 중 몇몇은 그 곳에서 다른 집을 지을 궁리를 했을지도.
그랬을지도 모르겠군요....
어느 날 진짜 집을 지어야겠다는 생각을 했지요
진짜 집.
그때 진짜 집을 뭐라고 생각했을까요?
그런 생각이 드는 순간 벽돌이 필요하고 시멘트가 필요하고 페인트도 필요하고...
어찌나 필요한 것이 많던지....
온 힘을 모아 그것들을 준비했지요.
같이 하자 . 같이 하자. 같이니까 괜찮아 그러면서...
집이 완성되어가고 있었지요.
순전히 내가 지어 내가 살 집이 완성되어가고 있는 것이지요.
그런데요... 너무 많은 것을 쏟아부어서요.
그 집에 들어가 살아야 할 때즈음에는요
난 그 집이 싫어졌어요. 왜냐하면 집만 있었고, 그는 없어졌어요.
집을 짓다보니, 그가 없어진 것도 몰랐지요.
집은 필요없게 되었지요. 난 다시 그 집을 나왔어요.
다시
모래성을 쌓기도 하고,
나무그늘에 앉아보기도 하고,
카페에서 커피를 마셔보기도 하고
내가 지었던 집 자리에 가보기도 하고
자리는 남아있더라구요.
그 자리가 모두 남아있더라구요. 빈자리로 남아있더라구요.
너도 없고, 나도 없는 그냥 빈 자리
이제 폐허라고 말 할 수도 없는 그냥 빈자리가 남아있어요.
그 자리에 뭘 하겠냐구요.
그럼 이제 난 말하지요.
그냥 빈자리라고... 아무것도 아닌 빈자리라고... 누구나 와서 있다가 가는 빈 자리라고...
아무도 집을 지을 수 없는 빈자리
그 자리는 누가 집을 짓든, 무엇으로 집을 짓든 그냥 빈자리가 되어버린다니깐요.
당신?
빈 자리에서 쉬고 싶냐고... 그럼 쉬세요!
하지만, 집은 짓지는 말아라~ 없어지거든... 하면서 난 속으로만 생각하네요.
나도 사랑, 그것에 대해 뼈아픈 후회를 하고 있는 것일까요?
그런가? 그런 것 같기도 하고
아닌가? 아닌 것 같기도 하고
시인처럼 뼈아픈 후회,,, 그래도 좋다.
시인은 나를 안심시키거든요.
시인도 그랬구나~ 하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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