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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절거림

선생님, 선생님, 나의 선생님!

by 발비(發飛) 2005. 8. 4.

오후 5시쯤 핸드폰 벨이 울린다.

약속이 있는데, 그 전화 줄 알았다.

 

선생님이시다.

고2 때는 국어선생님

그리고 고3때 담임선생님.

이 분을 말씀드리자면, ㅎㅎ 나이부터 계산에 들어가야 한다.

고3의 나이는 모두 알다시피 19살이다.

그런데 나의 선생님의 연세는 그 보다 다섯살 많은 24. 많으면 25. 그래도 그때는 하늘같은 선생님이셨다.

지금 생각해보면 그 구도가 참 우습지만, 그 때는 선생님도 심각, 우리도 심각한 때였다.

첫 담임을 맡으셨는데, 고3

(그만큼 능력이 있으시다는 이야기겠지.)

아주 아주 큰 행운이었다.

고 2때 무지 헤맸다. 한마디로 바닥을 치고 있었다.

고 3.

행복한 시간이었다. 오죽하면 한 달만에 성적 60% 향상자로 교단에 서서 상를 받았을까?

난 필이 꽂히면 그 때도 물불을 가리지 않았었다.

선생님께 배운 국어는  국어와 고문... 일주일 내내 선생님의 수업이 있었고,

야간 자율학습시간까지 무지 오랜시간이다.

 

하지만 하늘을 우러러 딴 생각은 한 번도 한 적이 없다.

난 예나 지금이나 좀 정신연령이 낮아서 선생님은 선생님이었다

방학에 편지를 보냈을때,

선생님은 황동규시인의 "바퀴를 보면 굴리고 싶다'는 시를 답으로 보내주셨다.

그게 무슨 말인지, 뭔 이야기인지 몰랐지만,

그 시는 내가 처음 접한 시였다.

그렇게 시를 만났다.

그리고 시화전에서 간간이 만나는 선생님의 습작시들을 보면서,

그 하늘같은 시를 내 주위에서도 쓰는 사람이 있구나 생각했었다.

그건 마치 특별한 일 같았다. 특별한 것의 중심에 선생님이 계셨다.

 

......

 

집에 가서 다시 계속.. 많이 이야기 하고 싶은데 나가야 한다.

 

(덕수궁미술관 갔다가, 서울광장에서 기웃거리다가,,,, 인사동에서 기웃거리다가

 잠시 떠돌다보니,,,, 다시 사무실에서 이야기 하게 되네요)

 

시인이라는 사람이 등단을 해야 한다는 것을 몰랐던 나는 내가 아는 최초의 시인으로 선생님을 꼽은 것이다.

우리 3학년 9반은 아수라장 그 자체였다.

첫담임인 너무 어린 총각선생님과 고 3 여학생.. 나처럼 착한 학생들만 있었던 것은 아니니깐

하지만 지금 생각해보면, 무지 골수 농땡이들도 진실한 선생님께는 순한 양이었고

예쁜 여동생이었던 것 같기도 하다.

남들은 지옥이라는 고3이 내겐 일생중 가장 행복한 시간들이었다.

 

이야기1

 

그때도 난 밤에 잠을 자지 않는 올빼미였다. 그리고 수업시간엔 잤다.

일주일에 매일 국어시간은 있었고, 내가 맘놓고 잘 수 있는 시간이기도 했다.

책을 읽으시며 슬그머니 옆으로 오셔서 엎드려 자고 있는 내 책상을 지휘봉으로 탁탁 두드리는

것으로 저를 깨우시던 ....

야간자율학습시간에 모두들 졸고 있을 때 난 그때만은 초롱초롱 빛난 눈으로 공부란걸 하고 있었다.

어느날 선생님의 호출이 있었다.

"넌 학력고사를 밤에 친다고 생각하냐? 낮에 친다고 생각하냐?"

"......?"

"밤에 머리를 굴리면 밤에만 머리가 돌아가고, 낮에 머리를 굴리면 낮에 머리가 잘 돌아가는거야."

"근데..."

그 이후에도 나의 올빼미체질은 바뀌지 않았고, 지금도 그리 살고 있다.

혹 새벽녘 즈음에 자야하는데.. 하고 생각한 즈음에는 선생님의 그 말씀이 생각난다.

그건 혼내는 것이 아니라, 타이르는 것이고 걱정하는 것이었다.

내가 느낄 수 있을만큼

 

이야기2

 

학력고사를 치르고, 아이들은 모두 들떠 있었다.

난 선생님을 위해 조끼를 뜨기 시작했다.

계란 노란자색..지금 생각하면 무지 촌스러운 색깔이기는 하다.

실력은 또 얼마나 가관일까?

아마 길이가 좀은 짧았던 것 같기도 하다.

치수를 재어보지도 못하고 그냥 눈대중이었으니깐.

완성을 하고 선생님께 드렸던 2월.. 졸업식이 있던 며칠 전이다.

그 때부터 난 내가 뜬 조끼를 매일 볼 수 있었던 것 같다.

짝사랑하는 선생님? 그건 분명 아니었다.

정말 그 어린 선생님을 존경하고 믿었던 것이 틀림이 없다.

좋은 사람에게 좋다고 표현하는 것. 난 표현을 해서 오해를 받기도 한다.

 

-그건 때로는 존경이고, 때로는 고마움이고, 때로는 아끼는 모습인데 사람들은 그것을 한 모양으로만 생각한다. 그건 지금도 변함이 없는 것 같다. 그래서 고마운대도 고맙다는 표현을 하지 못할 때가 많기도 하다. 그건 정말 아닌데....

 

어쨌든 그 불완전한 조끼를 입어주셨던 선생님께 다시 또 감사하다...

한창 멋부릴 나이였을텐데, 스타일 구겼을텐데... 지금 생각해보니 그렇다.

 

이야기3

 

졸업 후, 선생님을 만났다.

왜? 사촌언니를 소개해주려고... 선생님과의 인연이 끝나는 것이 싫어서...

근데 선생님은 대면대면해하셨다.

난 그렇게 물불을 못 가리고 생각하면 생각하는대로.

그래도 그렇게 넉넉한 웃음으로

"아이고, 야~야~ " 만 연발하셨다.

어른이 되어서 카페에서 만난 그 모습 또한 나에겐 추억이다.

 

이야기4

 

아주 오랜 시간이 지난 즈음이다. 내가 24살즈음

길에서 우연히 선생님을 만났다. 그동안은 뵙지 못했다.

선생님께서 학교 문집이라시면서 교지를 한 권주셨다.

거기에는 문예반 지도선생님이신 선생님의 시가 실려있었다.

그 시를 읽었다.

그 사이 결혼을 하시고 아이가 생기신 선생님은 아이에 대한 시를 써두셨다.

그런데, 난 왜 그리 속이 상하던지, 약이 오르던지...

편지를 썼다.

-선생님 시가 왜 그러냐고... 실망했다고...

 한낱, 아이의 아버지로서 그냥 주저앉으시는 선생님이 너무 약이 올랐다. 나에겐 멋진 우상이었는데, 그리고 세상에서 처음 만난 시인이었는데.

그러고 편지를 썼다. 24살짜리가 ... 맙소사. 철이 안들어도 너무 안들었다.

우연히 며칠 수 선생님을 또 마주쳤다.

난 그 사이 나의 경솔함에 반성하던 즈음이었는데, 너무 부끄러웟다.

선생님.. 아무 일 없다는 듯 웃으신다.

 

이야기5

 

불과 2년 조금 전의 일이다.

몸이 너무 많이 안 좋았다. 그래서 부모님께 잠시 머무르고 있었다.

우연히 내가 다닌  학교 앞을 지나게 되었다. 선생님이 생각났다.

무작정 운동장으로 들어갔다.

운동장 한 가운데 서서 전화를 한다.

114에 학교 번호를 물어서 교무실로 전화를 .. 그리고 선생님을 바꿔달라고 했다.

선생님이 받으신다.

나라고 했다. 기억하시냐고 했다. 9회 기억한다고 하신다. 어디냐고 하셨다.

교무실 창으로 내다보시라고 했다.

그리고 선생님은 내려오셨다. 운동장 귀퉁이에서서 한참을 이야기 했다.

첫말씀은

"쌀이 없냐? 왜 그리 말랐냐?" -----하지만 지금은 무지 살이 쪄서 미칠지경인데...해결입니다.

"니가 짜 준 조끼는 그러고도 몇 년을 입었다. 따뜻해서 좋았다."

내가 편지에 대한 미안함을 이야기하자

"세상에 보낸 것에 대해서는 너의 것이 아니므로, 걱정하지 말아라."

딱 그 모습으로 ...

이제는 같은 세대의 모습으로 ...

 

그리고 얼마전부터 선생님께 책을 몇 권 보내드렸다.

묵묵부답...

그게 좋았다. 아무런 댓구없이 가만히 계신 모습이 선생님의 모습이니깐..

하지만, 내가 보내 드린 책을 보시면서 엷은 미소를 지으실 선생님을 생각하는 것만으로도

그것으로 대만족이다.

좋아한다는 것은 그것도 존경한다는 것은 반대급부가 없는것이니까....

 

그 선생님께 전화가 온 것이다.

"아이고.. 너는 무슨 책을 그리 보냈냐??"

'그냥요"

바로 전화하시지 못한 것에 대한 변명이 한참이시다. ㅎㅎ

난 전혀 신경쓰지 않았는데, 다만

선생님 덕분으로 오랜 시간이 지난 후지만, 책을 좋아하고 시를 좋아하는 제자로 살고 있다는 것이 감사해서니깐.. 정말 감사한 일인데..

단지 그것 뿐인데.

감동...

아주 오래전 선생님이 보내주신 시엽서 한 장으로 시라는 것을 접하게 되었고,

선생님이 쓰신 시를 몇 편을 읽는 것으로 시인이 세상에 존재한다는 것을 알게 되었고,

그것은 오랜 시간동안 내 속에 있다가,

분수에는 맞지 않지만, 시를 좋아하는 나로 만들어진 것이 너무 감사하니까... 고마우니까...

 

내겐 그런 선생님이 계신다.

 

안동 길원여자고등학교 기영주선생님. (우리는 기서방이라고 불렀다.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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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시 주절거림.

 

좋아한다는 것

만난다는 것

이어간다는 것

관계라는 것

 

사람들은 정의 내리기를 좋아한다.

그것도 꼭 자신의 잣대로 정의내리려고 한다.

누구를 진정 사랑해 본 적이 없다. 단호히...

그것은 내가 갖고 있는 따뜻한 감정의 종류가 많기 때문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선생님의 이야기를 쓰면서 그런 생각이 들었다.

만약 내가 이렇게 말하면, 몇 살 차이나지 않는 선생님을 좋아한 것이 아니냐고 생각할런지 모른다. 그게 어쩌면 상식적인지도...

하지만 절대 아니다. 그 분에 대한 온화한 마음은 감사함이고 존경이다.

 

누군가를 만났다.

그 사람은 외로움을 타는 사람이다. 그 사람의 짧은 글을 몇 편 읽고 생각했다.

내가 뭐 도와줄 일이 없을까? 말동무를 해 줘야겠다.

그건 사랑(일반적으로 말하는 그런 사랑)하는 것이 아니다.

 

어떤 할아버지를 만났다.

손등에 검버섯이 무지 많이 끼인.. 삶이 고달펐을 것이다.

그 분의 살가죽을 늘여보면서 천천히 내려가던 살가죽을 보면서 마음이 아렸다.

그래서 그 분의 어깨를 주물러 드렸다.

그건 사랑하는 것이 아니다.

 

나보다 어린 동생을 만났다.

아직은 좀 불안해 보이는 , 하지만 난 그 과정을 좀은 지나왔으므로 보이니깐 이야기 한다.

걱정하지 말아라. 그리고 지켜본다. 이야기를 한다. 힘내라고 어깨를 두드려준다.

그 동생을 보면서 내가 지나온 날들이 대견하다 싶어 더욱 친근하게 느껴진다

그건 사랑하는 것이 아니다.

 

그런 만남을 가지고 산다.

친구들은 이야기 한다. 그렇게 하면 안된다고.. 오해를 한다고...

그건 사랑하는 것이 아니라, 삶을 살아가고 있는 수고로움을 나누는 것인데.

그렇다고 내가 착하다거나 박애주의라서가 아니라, 내가 그들의 힘듬을 만나고 접촉함으로

나만이 힘든 것이 아니라는 사실에 안도하고 앞으로 살아갈 힘을 얻는 것인데...

만남이라는 것은 나에겐 적어도 그런 것인데.

내가 가장 좋아하는 친구들은 그런 생각을 가진 내가 위험하다고 한다.

 

사회의 통념 속에서 옴싹 달싹 하지 못할때 나는 몸과 마음이 무지 아팠다.

하지만, 지금 좀은 자유롭게 내가 마음이 시키는 대로 움직이고 있는 지금은 난 많이 건강해지고 있다,

아니 너무 건강해서 탈이다.

 

잠시의 주절거림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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