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지에서 건진 말이다.
다구에 대한 책인 듯 싶기도 하고, 사보같기도 하고...
파지가 난 좋다. 이런 말이 갑자기 떨어져 있어서
길바닥에서 500원짜리 동전을 줍는 기분이다
工欲善其事 必先利其器
- 善는 착하다는 의미가 아니라, 잘한다는 의미이다.
- 利는 이롭다는 의미와 예리하다는 의미를 함께 가진다
- 器는 그릇의 의미와 도구(연장)의 의미를 모두 가진다.
-
해석1 : 장인이 그 일을 잘 하려면 반드시 먼저 그 기구를 이롭게 해야한다.
파지에 적힌대로의 해석이다
이 파지에는 다도나 다기에 대해서 나오는데, 그래서 이렇게 해석한 듯 하다.
해석2 : 일을 잘 하고자 하려면 연장을 날카롭게 해야한다.
인터넷 검색에서 어느 회사 홈피에 있는 해석이다.
이건 자신의 회사에서 일하고 있는 사원들의 독려차원에서 하는 해석인 듯 하다.
주절거림 하나
뭔가를 제대로 하기 위해서는 적당한 도구나 그릇의 사용이 필수이다.
그리고 그것을 고르고 사용할 수 있는 예리함이 필요하다.
이렇게 말하면 둘이 조합이 되는 건가?
같은 말을 두고, 자신들이 할 일이나 생각에 따라 말을 자기 방향으로 당긴다.
마치 고무줄과 같아서, 그건 어느 정도까지는 가능하지만, 그 말이 가지는 본래의 성질에서
멀리 벗어나지는 않는다.
그것이 가라사대 말들의 특징이다.
명언이나 명구는 반드시 여러가지로 해석된다는 특징이 있는 듯하다.
성경이 그렇고, 논어가 그렇고, 도덕경이 그렇고... 그리스신화가 그렇다.
유추해서 어느 범주안에서 해석이 가능한 것.
그것이 명문이기는 하다.
그런데 사람의 입장이란데 문제가 있는 듯하다.
서로가 자신의 입장에서 그 말을 끌어다 쓰고,
어느 순간 말은 없어지고, 생각만 남아있는 순간을 경험하게 된다.
그것은 중용에 이탈하는 것이겠지.
두가지 해석이 분명 다르다.
같은 고무줄안에 있지만, 하나는 동쪽으로 하나는 서쪽으로 갔다.
만들어진 그릇을 잘 끌어다 사용하는 것과 도구를 예리하게 만드는 것은 분명 다른 것이다.
하지만 한자를 놓고 본다면 둘 다 맞는 뜻이다.
그 한자의 생각에서 벗어나지 않아야 한다.
난 해석을 알려고 하지 않고, 공자가 말한 그 원문을 기억하고자 할 것이다.
그냥 말 그대로를 기억하고자 할 것이다.
이렇게 工欲善其事 必先利其器
주절거림 둘
제대로 갖춘다는 뜻으로 오늘은 주절거리고 싶다.
제대로 ... 정말 제대로 갖추고 싶다.
그릇이라면, 밥을 먹는 그릇이 아니라.
난 내 삶을 닮는 그릇을 제대로 갖추고 삶을 담아가고 싶다.
아까 두드리다가 다른 일을 하고 다시 오니...
다른 일을 하면서 생각했다.
난 왜 아직도 내가 담길 그릇에 연연하는지...
아직도 내 그릇의 모양을 모르고,
모르면서 답답해하는지...
뚝딱뚝딱...나무 깍아서 만든 그릇
주물럭 주물럭... 흙 빚어서 만든 그릇
쨍그렁 쨍그렁... 쇠 달구어서 만든 그릇
이렇게 이렇게 만들어지는 나의 그릇을 가지고 싶다.
목그릇이든 도자기인든 주물그릇이든 상관없이 그냥 내 몸에 꼭 맞는 그릇 하나 입고 싶다.
하루에도 몇 번이나 다른 삶을 넘나들지 말고 그냥 한 그릇에서 그렇게 담겨 있고 싶다.
다르겠지?
어떤 그릇이냐에 따라...
난 내가 나무그릇이 되면,
그리고 나무그릇인 것을 알면,
난 나를 절대 불가까이에는 닿게 하지 않을 것이다.
되도록이면 산채를 담도록 할 것이다.
내 그릇과 아주 잘 어울리는 산채를 담을 것이다.
난 내가 도자기가 된다면,
난 그 도자기에 차를 한 잔 담을 것이다.
뜨겁지도 차갑지도 않는 따뜻한 차 한 잔을 항상 채워둘 것이다.
도자기의 유황이 흙을 감싸고 있더라도,
오래도록 차를 담아 놓아 아니 매일 차을 담아
도자기에서 어느샌가 차향이 배어나게 할 것이다.
난 내가 주물그릇이 된다면,
부뚜막에 올려놓고 소죽을 끓일 것이다.
매일 길 가에 자라는 잡초를 뽑아다가 소에게 줄 여물을 푹 끓일 것이다.
누구보다 일찍 일어나 이슬 묻은 풀들을 낫으로 잘라,
한 지게 짊어지고 주물그릇에 담아 뜨겁게 오래도록 끓일 것이다.
소들이 되새김을 반복하지 않아도 될 만큼 아주 푹 끓일 것이다.
새벽이 되면 난 나의 그릇에 풀을 담으로 일어날 것이다.
내가 있을 나의 그릇이 정해지기만 한다면,
난 그렇게 살고 싶다. 온갖 그릇인 척 ,
어디에 쓰이는 그릇인지도 모르고,
나무그릇을 불위에 올리지도 않을 것이고,
다기에 소여물을 끓이지도 않을 것이고,
쇠죽끓이는 주물그릇에 산채나물을 올리지도 않을 것이다.
내가 무슨 그릇인지 알기만 한다면...
언제쯤 알 수 있을까?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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