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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절거림

그녀 2

by 발비(發飛) 2005. 6. 25.

그녀의 이야기입니다.

 

그녀는 친구를 종일 기다렸습니다.

핸드폰으로 문자를 보내고,

메일을 보내고

그리고 전화도 하고.

 

"미안해, 하지만 오늘만은 나를 좀 도와줘, 난 정말 무섭워"

 

그렇게 보냈지만, 친구에게는 답이 없었습니다

그녀는 친구를 종일 기다렸습니다.

퇴근시간이 지나고 그녀는 지하철역 주위를 맴돕니다.

아마 친구는 오지 않을 듯 합니다.

그럼 누구에게 전화를 걸어야 하나... 그녀는 생각 또 생각합니다.

그녀도 압니다.

물고기 한 마리때문에 그녀가 괴로워하고 무서워한다는 것이 그녀의 나이로서는

너무나 어처구니가 없는 일이라는 것을 그녀는 압니다.

그래서 선뜻 누구에게도 전화를 하지 못합니다.

그녀는 자신을 감추고 싶습니다. 떨고 있는 모습을 감추고 싶습니다.

세상사람들이 아무도 모르게 하고 싶은 것입니다.

지하철역에 쭈그리고 앉아 전화주소록을 검색하고 있습니다.

그때 전화가 옵니다.

친구입니다.

사실 그 친구한테는 항상 잘 난 척만 했었습니다.

그리고 밥맛이라고 구박을 했었습니다. 그 친구입니다.

종일 기다렸던 그 친구입니다.

 

"고마워! 전화해줘서. 고마워! 야! 오늘만 내 부탁 좀 들어줘라. 나 이상한 거 알거든. 꼭 와줘야 돼. 꼭!"

"나 지금 멀리 있어. 앞으로 두시간은 더 걸릴거야. 아무튼 알았어."

 

항상 인정머리가 없어서 자기 밖에 몰라서 밥맛인 친구가 온답니다.

그 친구에게만 그녀는 그녀의 약점이 왠지 부끄럽지 않습니다.

그녀는 집 근처 서점으로 가서 친구를 기다립니다. 무지 오랜 시간동안 기다립니다.

그러면서 미안했습니다.

너무 멀리 오게 한 것이 미안했습니다.

늦은 시간 그 친구가 왔습니다.

 

"어공은 어디있니? 내가 장례식 치러 줄께, 좋은 세상에 가라고..."

"고마워! 진짜 고마워"

 

그리고 친구는 물고기를 처리해주었습니다.

전 어떻게 했는지 모릅니다.

아직도 대견하게 살아있는, 친구의 주검옆에서도, 주검이 썩고 있는 물에서도 살아있는

한 마리의 물고기에게 물을 갈아주었습니다.

대견했습니다.

 

친구는 갔습니다.

정말 이해할 수 없다는 표정으로 , 그렇지만 너를 어찌하랴 하는 표정으로

그리고 너를 별로 보고 싶지 않다는 표정으로...

인사를 하고 갔습니다. 미안했습니다. 그리고 고마웠습니다.

 

그 친구는 정말 밥맛인 친구인데,

때론 그런 밥맛이 그녀를 살려주기도 한다는 생각을 하고, 그녀는 씁쓸히 웃었습니다.

아마 다시는 만날 일이 없겠지만, 그래도 평생 잊을 수 없는 구원자로서의 친구가 될 듯 합니다.

 

그녀의 이야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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