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얼거리려고.6
-<햇빛이 비치는 문 앞*>에서
유수연
네 옆에 눕고 싶었어 우리가 헤어진 그때 햇빛이 집 앞마당을 쓸어 모아 등나무줄기처럼 벽을 타오르고 있었는데 나는 햇살이 등꽃처럼 집을 타고 오르는 열린 문 안 쪽에 어두운 그늘로 혼자 앉아 있었지
그때 등꽃그늘처럼 사, 랑, 이라고 말했으면 이 꽃그늘 아래 햇살의 알몸처럼 사랑을 나눌 수 있었을까 몇 번의 이별 그때 등꽃 줄기 타오르던 덩굴처럼 손 내밀었더라면 햇살이 등꽃 위로 집을 불태우듯 사랑을 태울수 있었을까 네 옆에 눕고 싶었어
많은 길들이 이 뜰을 지나 돌아 나가는 것이 보여 네 옆에 누울 수 있는 여러 길이 있었으나 그 길마다 땅 밑으로 흐르는 수맥이 네 혈관을 대각선으로 자르고 지나가곤 했지 네 숨결을 노랗게 틀어막는 세상 쪽으로 흐르는 숨은 물길들 하얀 빈혈처럼 말라죽는 등꽃덩굴들이 나를 휘감았어 백년 전이거나 천년 전, 어느 길로 되돌아나가도......
네 옆에 눕고 싶었어 잠깐의 영원성을 발하던 저녁 시간이 붉은 물감처럼 밀리는 열린 문, 햇빛이 비치는 문 앞에 나는 오래 서 있었지
*앙리 마르탱의 그림
Gabrielle at the Garden Gate" (1910)
이 말이 [햇빛 비치는 문앞] 이 맞겠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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