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읽히는대로 詩

[함민복] 서울역 그 식당

by 발비(發飛) 2005. 6. 27.

서울역 그 식당

 

함민복

 

그리움이 나를 끌고 식당으로 들어갑니다

그대가 일하는 전부를 보려고 구석에 앉았을 때

어디론가 떠나가는 기적소리 들려오고

내가 들어온 것도 모르는 채 푸른 호수 끌어

정수기에 물 담는데 열중인 그대

그대 그림자가 지나간 땅마저 사랑한다고

술취한 고백을 하던 그날 밤처럼

그냥 웃으면서 밥을 놓고 분주히 뒤돌아서는 그대

아침, 뒤주처럼 쌀 한바가지 퍼 나오시던

어머니처럼 아름답다는 생각을 하며

나는 마치 밥 먹으러 온 사람처럼 밥을 먹습니다

나는 마치 밥 먹으러 온 사람처럼 밥을 먹고 나옵니다

 

 

드라마 한 편이 12행 시에 들어앉아 있다.

 

누가 알까?

내가 그를 사랑하고 있다는 것을... 누가 알까 그런 것 따위에는 관심이 없다.

그는 알까?

내가 그를 사랑하고 있다는 것을 ...그가 알까 하는 것은 사실 문제가 아니다.

그가 알아서 내게서 멀어지지 않는다면

그가 알아서 지금처럼 그 거리에 있다면,  사실 문제가 아니다.

 

그를 사랑하는 것은 그가 사랑하는 것이 아니라, 내가 사랑하는 것이니깐

그가 알아서 바뀌지 않을 거라면 그런 것은 문제가 아니다.

가끔은 아주 가끔은 그래도 지금처럼 아무것도 모르는 것보다는 알았으면 하는 마음이 있지만,

아마 그럴 것이다.

내가 그를 사랑하는 것을 그가 안다면, 아마 그럴 것이다.

나에게서 뒷걸음을 치던지

아니면 나를 향해 앞으로 걸어오던지 아마 그는 그럴 것이다.

난 아무도 모르게 그를 좋아한다.

사실 그것은 문제도 아니지만, 아무도 모르게 그를 사랑한다.

 

시인은 나같은 사랑을 하나보다.

시인은 그렇게 밥만 먹는다. 나처럼

시인은 그렇게 밥만 먹고 나온다 . 나처럼

그리고 인사를 한다. 잘 먹었다고.. 밥만 잘 먹었으니깐...그러고도 가슴은 뻑뻑해질것이다.

밥만 먹고 나오는데도 가슴은 뻑뻑해질 것이다.

마치 가슴이 밥을 먹은 것처럼 그렇게 뻑뻑해진 가슴으로 문을 밀고 나오는 것이다.

뻑뻑해진 가슴이 풀어질 즈음 다시 요기를 하러 식당으로 갈 것이다.

뻑뻑함을 채우러 시인은 식당으로 갈 것이다.

 

우린 때로 그런 사랑도 하는 것이다.

살면서 오는 사랑의 모양이 그렇기도 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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